[프란치스코와 함께 30일 기도하는 법]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아마도 서구사회에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만큼 영적 상상력을 발휘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도 그가 이룬 정도로, 그가 취한 방식으로, 종교와 문화의 벽을 무너뜨리지 못했다.

이 특이한 인물에 온 세계가 전례 없이 호감을 보이고 있거니와, 여러 세기에 걸쳐 그는 “작고 가난한 사람”(the little poor man)으로 불리었다.

세계 각처의 정원과 공원에 그의 동상들이 서 있다. 키가 크고 조용하고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표정으로, 더 친절하고 더 온유한 세상을 희망하며, 자기 어깨 위에 앉아 쉬려고 날아오는 새들을 향해 팔을 공중에 들어올리고, 숲의 짐승들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다.

실제로 프란치스코는 새들에게 설교하고 벌레들을 가엽게 여기고 돌들 위로 얌전히 걷고 해와 달과 별을 형제자매로 대하였다.

그러나 그의 영혼이 우리에게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으려면, 그가 어떤 값을 치르고 어떤 각오로 얼마나 애를 써서 우리를 매혹시키는 그 깊은 평온을 얻게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프란치스코는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낭만적인 산책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거칠고 엄격하고 혁명가다운 영혼의 항해자였다. 그는 감상적인 구원과 값싼 은혜를 전하는 사람도, 재치 있고 친절한 얘기꾼도, 서로 다투는 영혼들을 화해시키는 조정가도 아니었다.

그는 가난이라는 은유(metaphor)를 말하며 안이하게 사는 쪽이 아니라 실제로 거칠고 가난하게 사는 쪽을 선택하였다.

그가 세상 모든 피조물을 사랑한 까닭은 그것들이 예쁘고 귀여워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들 안에서 공동의 창조주를 비추는 거울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세계적이고 다양한 수준의 영성가족을 설립하고 이끌고 보충하고 운영한 실천의 사람이었다. 스스로 마음을 속이는 자들에게는 등을 돌렸고, 자기 자신과 영적 도반들에게 요구한 문자 그대로의 실천적 가난을 가벼이 여기는 자들은 돌려보냈다.

프란치스코는 1181년 무렵 아시시의 한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스물다섯이 될 때까지는 부잣집 도령답게 으스대며 장난스러운 행실로 젊은이들의 영웅이 되었다. 또한, 모험심에 부풀어 전쟁터에 나갔다가 거기서 포로가 되기도 했다. 고향인 아시시로 돌아왔지만 예전의 삶으로 복귀할 마음이 없었고, 젊은 날의 꿈이었던 군대로 돌아가지도 않았다.

전기 작가들에 따르면, 그의 인생을 크게 뒤바꿔놓은 세 가지 사건이 있다. 아버지와 오랜 친구들을 등진 대가로 그는 황폐해진 시골 교회를 재선하고 극빈한 삶을 선택한다. 그 무렵 나환자들을 만나는데, 자기 속에 있는 뿌리 깊은 혐오감을 극복하고 그들을 껴안는다. 그리고 어느 주일 미사에서, 지닌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나를 따르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에 감동받아 평생을 그렇게 살기로 결심한다.

그대는 이 책에서, 진정한 가난과 그에 수반되는 겸손을 에누리 없이 강조하는 문장들을 읽게 될 것이다. 가난과 겸손이 프란치스코 영성의 열쇠인 때문이기도 하지만, 프란치스코―그리고 복음서―의 눈으로 볼 때 그것들이 기독교의 열쇠요 예수의 바탕 메시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대는 이 책에서 영성에 관한 조직적 이론과 그 실현을 위한 단계적 프로그램을 읽을 수 없을 것이다. 이따금 시를 짓고 기도문을 작성하기도 했지만, 프란치스코는 신학자도, 학자도, 저술가도 아니었다. 그는 한 영성가족의 아버지로서 규율과 행정으로 그 가족을 꾸려나갔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는 자기의 비전(vision)을 그대로 살아낸 사람이었다. 하느님을 만나 그분을 섬기는 게 어떤 것인지를, 그의 말보다 삶이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 책에 수록된 [밝아오는 아침에]의 글은 성인의 선종 직후에 토머스 첼라노가 쓴 <프란치스코의 생애>에서 발췌한 것들이다. 여기서 우리는 행동하는 프란치스코를 본다. 또한 그가 도피하려 했지만 결코 거절하지 않았던 세상으로 그의 영성이 빛을 비추는 것을 본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13세기에 세상을 향해 보여준 반응으로 오늘 21세기 세상에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 그 방법과 동기를 보여주는 특별한 인물을 만난다. 그는 가난한 사람으로 살기를 선택하였고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항상 부러워했다. 그의 가난은 오늘 노숙자들의 가난만큼 아프고 가혹했다.

[하루를 마감하며]의 저녁 기도는, 프란치스코가 좋아했던 형식을 좇아, ‘주님의 기도’와 성경구절에 대한 묵상이다. ‘사제의 기도’로 알려진 민수기(6, 24-26)의 한 구절을 매일 하루를 마감하는 기도 끝에 첨부했다. 한때 프란치스코는 가까운 도반 레오 형제에게 개인적인 축복의 말로 이 구절을 사용하였다.

프란치스코와 함께 가는 이 여정은 가난과 겸손뿐 아니라 오늘 모든 영성생활인들이 마땅히 회복해야 할 연민과 자비(compassion)를 보여주는 점에서도 탁월하다. 프란치스코 영성은 오늘 이 시대에 필요한 영성의 전형이 될 만하다. 그는 정책적으로 요구되고 지도적으로 실천되어야 할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였고 실제로 그렇게 살았다. 가난과 겸손에 뿌리내린 연민과 자비의 영성을 문자 그대로 살았던 것이다.

엄격하고 영감에 찬 사람이 조용한 자신의 정원에서 나와 번잡한 세상의 우리에게 완벽한 안내자가 되고, 그의 영성생활이 굶주리고 탐욕스런 세대에 어떻게 살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모범이라는 사실이야말로, 어쩌면 가장 절묘한 역설이라 하겠다.

이 책으로 기도하는 법

▲ 다미아노 성당에서..태양의 찬가 ⓒ 김용길 기자
이 책의 목적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라는 세계적 영성교사의 체험과 지혜로 문을 열어주는 데 있다. 그냥 읽기 위해서 만든 책이 아니다. 30일간 매일 그날의 글과 함께 명상하고 기도하기 위한 책이다. 그대의 영적 여정을 위한 핸드북인 셈이다.

이 책과 더불어 영적 여정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대의 영을 제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롭게 하기 위해서 이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 만약 어느 날의 내용이 별 감동을 주지 않거든, 마음에 와 닿는 다른 구절을 찾아 읽어도 좋다. 성령이 그대 영혼에 들려주시는 말씀을 찾을 때까지 어느 하루의 내용을 반복하여 읽는 수도 있다.

여기, 그대의 기도를 위한 모퉁이 돌로 이 책을 사용할 한 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밝아오는 아침에]

날이 밝아올 때 조용한 곳에서 잠시 마음을 정돈한 다음, 아침 명상을 위한 글을 읽는다.

긴 글이 아니다. 하지만 얼마 안 되는 짧은 문장에 그날 하루 동안 중심에 묻고 명상해볼 내용을 조심스럽게 담았다. 그대의 하루가 영적 차원에서 시작되고 마무리될 수 있도록, 그대의 영적 동행이자 스승인 이 책의 주인공과 함께 하루를 살도록, 이 책은 설계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여기 수록된 글의 목적은 그대가 하루를 사는 동안, 매순간 그리고 바로 이 순간, 당신 안에서 당신과 함께 살기를 한결같이 권하시는 하느님의 현존 안에 살고 행동하는 데 있다.

충고 한 마디 한다면, 천천히 읽으라는 것이다. 아주 천천히 읽기 바란다. 그래서 한 줄 또 한 줄, 조심스럽게 행간을 조절하였다. 빨리 마지막 줄을 읽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한 구절씩 의미를 곱씹으며 음미하라. 어느 구절 또는 어느 단어가 그대 영혼의 방아쇠를 당길는지 모를 일이다. 단어들에 기회를 주어라. 무엇보다도, 그대는 지금 책을 읽는 게 아니라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옹근 하루를 밝고 평화롭게 살기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중이라는 얘기다. 서두를 게 무엇인가?

[온종일]

아침 명상을 위한 글 바로 다음에 힌두교에서 ‘만트라’[呪文]라고 부르는 짧은 문장이 있다. 그대가 바쁜 하루를 보내는 동안 영적 동반자로 삼으라고 있는 것이다.

이 만트라를 카드나 일기수첩에 적어두고 틈틈이 꺼내어 읽어보라. 조용히 혼자 되풀이하여 읽는데, 그러기 위해서 따로 시간을 내거나 하던 일을 멈출 필요는 없다. 다만, 하느님이 그대 있는 자리에 현존하심을 상기시키고 그에 조화되는 반응을 보이도록 도우려는 것일 따름이다.

[하루를 마감하며]

이제 하루를 놓아 보낼 시간이다.

조용한 장소를 찾아 마음을 가라앉힌다. 들이쉬고 내쉬고, 천천히 깊게, 몸의 긴장이 풀릴 때까지 심호흡을 한다.

하루를 마감하며 돌이켜보기 위한 질문들에 천천히 대답한다. 근사한 답을 찾으려고 신경을 쓰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건 없다. 시험을 치르는 게 아니라 하루를 마감하며 마음을 한 곳에 모으려는 시도일 뿐이다.

질문에 답하기를 마쳤으면, [밤 기도]를 천천히 읽는다. 아침 명상을 위한 글이나 만트라의 한 구절이 문득 떠오를 수도 있다. 밤 기도를 드리면서, 아침에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하루를 열었듯이 하느님 품 안에서 하루를 마감한다.

지금은 요약하고 정리하고 마감하는 시간이다.

사랑으로 품어달라고, 밤새도록 지켜달라고, 하느님께 기원하면서 잠자리에 든다.

[이 책을 읽는 몇 가지 다른 방법]

1. 무엇보다도, 그대의 영이 인도하는 대로 읽는 게 중요하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그날의 명상을 위한 글이 마음에 감동되지 않으면 다른 날로 넘어가고, 마음에 와서 닿는 구절을 며칠 반복해서 읽어도 좋다. 영성생활이 하루 만에 성숙해질 수는 없는 것이고, 어쩌면 평생 지속될 과제라고 하겠다. 그러니 자신에게 시간을 넉넉히 주고, 주님과 함께 참고 기다려라. 특히 자신에게 참아주어라.

2. 이 책을 읽으면서 경험한 바를 일기 형식으로 적는다. 그날 명상을 위한 글이나 만트라 가운데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중심으로 떠오르는 느낌과 생각들을 기록하며 자신의 명상을 창조하라.

3. 깊은 영성생활을 추구하는 이들과 작은 그룹을 만들어 한 주일에 한 번 또는 적어도 격주로 한 번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기도한다.

시리즈 편집인

존 커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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