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 일이 없는 한 우리(신품 받고 첫 발령을 받아 우리 본당에 온 새 보좌신부와 나)는 오전 7시에서 7시 반 사이에 아침을 먹는데 메뉴는 늘 누룽지다. 아주머니가 출근하기 전이므로 전날 저녁에 준비해둔 누룽지를 끓여 김치하고 같이 먹는다. 누룽지는 죽하고는 달리 벌써 몇 년을 넘게 먹는데도 물리지 않는다.

오늘 아침에는 김태영 신부가 누룽지에 김치를 씹으며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 저녁에 예비신자 한 분이 제게 면담을 요청하셨는데요.” 신자들을 만나 사정 이야기를 듣는 일이야 우리에겐 다반사니 나는 시큰둥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2년 반 전에 그분의 부인이 병으로 죽었답니다. 엄마가 죽은 다음부터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 툭하면 사고를 치고 속을 썩이더라는 거지요. 생각다 못해 아버지는 딸을 뉴질랜드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 처제에게 보냈답니다. 어찌 된 일인지 딸은 거기서 마약 소지죄로 경찰에 붙잡혔다가 겨우 경고를 받고 풀려났는데 이번에는 아예 가출을 해서 지금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대사관에 연락했더니 찾아보겠다고는 했지만 말이 그렇지 그게 어디 쉽겠냐며 땅이 꺼질 듯 한숨을 쉬었습니다. 요새 외국에 보낸 아이들 중에 그런 아이들이 많다는데요.”

그 사람은 지금 뭐하는 사람이며 나이는 얼마나 되었냐고 묻자 김 신부는 누룽지가 식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계속했다. “신장이 안 좋아서 이틀에 한번 꼴로 병원에 가서 투석을 해야 한답니다. 게다가 눈은 점점 실명 되어 가고요. 그런 처지니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딸을 찾으러 뉴질랜드에 간다는 건 꿈도 못 꾸지요. 나이는 물어보지 않았지만 언뜻 보기에 쉰은 넘은 것 같았습니다.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니까 지금은 개신교 신자인 친구 집에 대책 없이 얹혀살기 때문에 천주교에서 전화했다고 하면 공연히 눈치가 보이니 전화는 하지 말아달라고 하던데요.” 나는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 예비신자를 빙자해서 돈이라도 뜯어내려고 온 사람 아닐까 하는. 신부들이 세상 물정 모르고 어수룩해서 쉽게 당한다는 이야기를 더러 들은 때문이었다. 눈치 빠른 김 신부는 “저도 혹시 돈이나 달라는 거 아닌가했는데 그런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예비신자 교리반에는, 투석하러 다니는 병원의 봉사자가 몇 번을 권하기에 오게 된 거랍니다.”

김태영 신부도 답답했나보다. 그를 그냥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한계가 못내 아쉬웠나보다. “제가 그분을 위해서 해드릴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더라구요. 그래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랬겠지. 그럴 수밖에 없었겠지. 이해가 되었다. 내가 김 신부라 해도 별 도리가 없었을 게다.

그런데 갑자기 목이 메고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섬광처럼 번쩍하는 날카로운 그 무엇이 내 가슴을 치고 지나가는 것을 나는 느꼈다. 들고 있던 숟갈을 내려놓았다. 그렇구나! 나야말로 수십, 수백 번 그런 사람들을 만났지만 아무 말도, 아무 것도 못 하고 그렇게 수십 년을 살아왔구나. 김 신부야 이제 갓 사제가 된 신출내기니까 그렇다 쳐도 사제생활 30년을 훌쩍 넘긴 나도 그렇다니! 30여년의 세월이란 나에게 무엇이었나. 이게 말이 되나. 이런 사람들을 허구한 날 성당에 불러 모아놓고 나는 도대체 무엇을 믿고 바라고 사랑하며 살라고 나도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걸까. 그 사람들이 과연 위로와 평안을 얻었을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착하고 어수룩한 사람들만 골라 등쳐먹고 사는 야바위꾼인지도 몰라. 책장을 뒤져 내가 사제 새내기였을 때 썼던 시를 찾아 읽어보았다. “나를 보고 사람들은/ 예수 팔아먹고 사는 놈이라 했네” 그래. 내가 전에는 미숙하지만 그런 시라도 썼는데...

호인수 2008-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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