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응급피임약, 꼭 필요한 경우 신속히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 제고 추진"
천주교와 낙태반대단체는 "다행"이라며 환영

보건당국이 추진하던 사전피임약과 응급피임약(긴급피임약)의 의약품 분류 수정이 취소되고 현행을 유지하게 됐다.

지난 6월 7일 식품의약품안전청(청장 이희성, 이하 식약청)이 발표한 의약품 재분류안에 따르면, 의사의 처방전이 필요한 전문의약품인 응급피임약은 처방전 없이 약국에서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으로 변경되고, 일반의약품인 사전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바뀔 계획이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장관 임채민)와 식약청은 의약품 재분류안 발표 이후에 의견수렴 기간과 중앙약사심의위원회 심의를 거쳐, 8월 29일 사전피임약은 일반의약품으로, 응급피임약은 전문의약품으로 유지하는 내용을 담은 최종 재분류 결과를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29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사전피임약은 일반의약품으로 유지하여 소비자 불편을 방지하되, 장기사용에 따른 부작용으로부터 여성건강을 보호하는 대책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피임약 구입자에게 약국에서 복용법, 사용상의 주의사항 등이 적힌 복약안내서를 반드시 제공하고, 피임약 대중매체 광고에 복용시 병·의원 진료, 상담이 필요함을 반영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한 “피임약 복용시 산부인과 전문 진료를 받도록 하는 문화가 정착될 수 있도록, 보건소 포괄보조사업 및 제약회사와 연계를 통해 한시적(3년)으로 처방전을 소지한 여성에게 보건소를 통해 피임약 무료 또는 실비 지원을 추진”한다.

보건복지부는 응급피임약에 대해 “오남용에 대한 우려가 있는 점을 감안, 전문의약품으로 유지하면서 꼭 필요한 경우에는 신속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제고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결정을 내놓았다. 보건당국은 “야간진료 의료기관 및 응급실에서 심야(22시~익일 06시)나 휴일에 당일분에 한해 (응급피임약의) 원내조제를 허용하고, 보건소에서 의사 진료 후 긴급피임약을 신속하게 제공하도록 할 계획”이며 “성폭력상담소, 청소년상담기관, 학교보건실 등에서 긴급피임약이 필요할 경우에는 연계된 의료기관 또는 응급실을 통한 진료·투약을 안내”할 방침이다.

천주교 생명운동본부 "응급피임약은 피임약이 아니라 낙태약 … 이번 결정 다행"

이번 결정에 관해 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본부장 이성효 주교)는 “다행으로 여긴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생명운동본부는 성명서에서 “응급피임약은 반착상(反着床) 작용을 함으로써 수정된 인간배아의 생명에 직접적이고도 심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단순한 피임약이 아니라 초기 낙태 결과를 가져오는 낙태약”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또한 “인간 생명은 그것이 시작되는 순간, 즉 난자와 정자가 만나서 수정되는 순간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존중되고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생명운동본부는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와 “성에서 쾌락만을 취하고 책임은 회피하는 자유방임적 성의식”이 만연한 한국 사회에서 “‘생명의 문화를 향하여’ 함께 지혜를 모으고 협력하는 것은 정부는 물론이고 사회 구성원 전체의 본분”이라고 주장했다. 이어서 “청소년의 성·생명·인성 교육을 성실히 실행하고,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며, 여성의 출산환경을 조성해 나가는 일 등은 모두가 함께 힘을 합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라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동안 의약품 재분류안에 대해 의견을 개진해 온 시민사회단체와 유관 단체들도 입장을 내놓고 있다. 낙태반대운동연합(회장 김현철)은 8월 29일 “응급피임약은 궁극적으로 여성에게는 항상 불리한 약”이며 “특히 남녀관계에 있어서 여성에게 불리하게 만들고 여성건강에도 좋지 않은 약”이라고 지적하며 “응급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유지하기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결정”이라고 밝혔다.

반면, 여성계의 여러 단체와 대학 총학생회 등이 참여한 ‘여성의 결정권과 건강권을 위한 피임약 정책 촉구 긴급행동’은 29일 발표한 논평에서 “정부가 피임약 문제에서 의약품 재분류에 그치지 않고 여성 건강을 위한 제도 보완 방법을 일부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번 결정안은 응급피임약을 전문의약품으로 남겨둠으로써 여성의 임신과 출산에 대한 결정권과 의료접근권이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지 못한 것은 유감”이라고 전했다. 또한, 이들은 “남성들의 피임 실천률은 여전히 낮고, 피임방법을 선택하고 실천하는 과정에서도 여성과 남성은 동등한 발언력을 가지지 못한다”고 지적하며 응급피임약을 하루빨리 일반의약품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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