써놓고 보니 꼭 무슨 선정적인 영화 제목 같다. 아무튼 어느 날 모처럼 만난 그분이 내게 한 고백은 사뭇 충격적이었다. “제가 지금까지 남편과 살아온 이야기를 다 하자면 소설을 열두 권 써도 모자랄 겁니다.” 내 친구가 올해 환갑이 되니 자세히 묻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부부로 함께 산지 족히 30년은 되었을 것이다. “신부님이 제 남편과 사귄지 아무리 오래 됐어도 신부님이 알고 계시는 건 단지 그의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그게 남편의 다가 아닙니다. 제 남편은 신부님이나 다른 많은 친구들이 알고 있는 그런 사람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당연하지.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했거늘 내가 아무리 그와 친하다 해도 어떻게 그의 모든 면을 샅샅이 알 수 있겠는가.

“남편은 욕심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다고 돈을 벌지도 못합니다. 그냥 욕심만 많을 뿐입니다. 제가 길거리 장사까지 했습니다. 이날 이때까지 안 해본 게 없을 정도로 제 몸을 혹사해가며 일했습니다. 육신이 고달픈 게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늘 남편과 시부모에게 달달 볶였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신부님께 이런 말까지 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지난 20년 동안 저희 부부는 단 한 번도 오붓한 둘만의 잠자리를 가져보지 못 했습니다. 늘 부모님과 아이들과 함께, 심지어는 시동생까지 한 방에서 자야 했습니다. 우린 말이 부부지 실제론 부부가 아닙니다. 아이들만 아니었으면 이혼을 해도 벌써 했을 겁니다. 부모고 자식이고 다 버리고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은 물론 시부모님도 다 미웠습니다. 빨리 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때는 막 소리를 지르며 미친 듯이 시부모님께 대들기도 했습니다. 주일날 성당에 안 간지는 이미 오래 됐고요, 기도해본 적이 언젠지도 모릅니다. 그런 저를 신부님은 상상도 못 하시지요?”

예전에 내가 초등학교 시절에 시골에 살던 우리 식구는 늘 한 방에서 한 이불 덮고 함께 잤다. 하나도 이상하거나 어색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즘도 그런 집이 있단 말인가. 믿을 수 없는 얘기였지만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지옥이 따로 없구나 싶었다. 그분은 도대체 그런 숨 막히는 분위기를 어떻게 견디며 살아왔을까? “이제 막내 하나 남았습니다. 그거 시집보내면 저는 당장 훌훌 털고 집 떠나서 꽃동네 무료 봉사라도 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습니다. 저 너무 못됐지요?”

화가 났다. 이럴 때 내가 뭐라고 해야 하나? 내 친구가 천하에 나쁜 놈이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낫겠다고 할까? 명색이 천주교 사제인데 그래서는 안 되겠다. 지금껏 용케 참고 살아왔으니 그저 주어진 십자가로 여기고 여생을 참고 살라고 해야 할까? 역시 안 될 말이다. 남 얘기라고 그렇게 쉽게 하는 게 아니다. 내가 무슨 권리로 그녀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분은 내게서 뾰족한 묘수가 나오리라 기대하고 고백한 건 아니다. 그냥 눈물 콧물 줄줄 흘려가며 자신의 한을 쏟아놓은 것뿐이다. 그러나 나는 무슨 말이든 꼭 해야만 될 것 같아 그분의 손을 덥석 잡고 기어드는 목소리로 더듬거렸다. “000 어머니는 훌륭한 분입니다. 조금도 모자라거나 잘못하신 게 없습니다. 잘 살아오셨습니다. 괜한 소리가 아닙니다. 당신은 훌륭한 며느리이고 아내이고 어머니입니다.”

언젠가 이름만 대면 누군지 금방 알만한 유명인사 모씨가 내게 하소연하던 생각이 났다. “내가 남편과 각각 딴 방을 쓴지 오래됐는데 남들은 알지도 못하고 우리를 멋진 부부라고 부러워해요. 사회적 체면 때문에 이혼은 꿈도 못 꿉니다. 그런데 유치원에 다니는 막내딸이 방학에 친구네 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돌아오더니 놀란 표정으로 내게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순희네 엄마 아빠는 참 이상해요. 한 방에서 같이 자요.’ 라고요. 가슴이 찢어져요.” 그분도 내게 눈물을 보였었다. 도대체 이 사회에는 이런 부부가 얼마나 많은가. 부부란 과연 무엇인가? 고백하건대 여전히 나는 모르겠다. 왜 이리 점점 모르는 게 많아지나. 

호인수 200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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