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의 마을에서 살아남기-9]

살인 더위라 일컬어지던 지난 여름을 군소리 한 마디 없이 물에 발 한 번 담그지 않고 묵묵히 보낸 이가 있었으니, 바로 우리 신랑이다.

“폭염 경보가 울렸으니 낮 열두 시부터 네 시까지는 절대 야외에서 일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을 스피커에서 이런 내용의 방송이 몇 번씩 흘러나와도 그러거나 말거나, 비지땀을 흘리며 사랑방 공사를 했다. 추워지기 전에, 그리고 농사일이 바빠지는 가을걷이 철이 되기 전에 사랑방 공사를 마쳐야만 한다는 굳은 일념에 더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모양이었다.  

▲ 상량(기둥에 보를 얹고 그 위에 마룻대를 올림)을 끝내고, 지붕을 만들고 있는 신랑. ⓒ정청라

그 덕분에 ‘저게 집이 될까?’ 싶었던 사랑방 터가 날이 갈수록 그럴 듯해지고 있다. 지붕이 생기고, 구들이 깔리고, 벽체가 올라가고, 내가 그토록 바라던 툇마루가 놓이기까지! 정말이지 어느 날부터인가는 볼 때마다 한두 가지씩 달라져 있으니 기적이 일어나고 있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이 모든 과정을 다른 이의 도움 없이, 틈틈이 농사일까지 하면서 혼자 힘으로 해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집 짓기 전 과정을 함께 보고 겪어 온 사람으로서 지난날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

지금의 사랑방 터에 원래는 콘크리트 벽돌로 지은 창고가 있었다. 처음 사랑방을 짓자고 의논할 때부터 신랑은 굳이 창고 한 칸을 헐고 그 자리에 짓자고 했다. 나는 있는 건물을 부수는 게 엄두가 안 나서 그건 그냥 창고로 쓰고 사랑방은 집에 딸린 밭에 새로 지었으면 했는데, 신랑은 밭이 아깝다며 고집을 부렸다. 아는 분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방식으로 압력을 넣었는데도 소용이 없었다. 집을 짓는 주체가 신랑이니 할 수 없이 내가 두 손을 들 수 밖에!

결국 창고 한 칸을 헐어 냈다. 시멘트 자르는 기계를 빌려 와서 그걸로 벽면을 자르는데 소리가 굉장히 요란할 뿐더러 시멘트 가루가 하얗게 뿜어져 나왔다. 시멘트 먼지가 안 좋다며 나와 다울이는 얼씬도 못 하게 하고 혼자 온몸에(심지어 눈썹까지) 하얀 가루를 뒤집어쓰고 일하는데, 그 모습이 얼마나 안쓰러웠는지 모른다. 혹시나 기계를 다루다가 다치는 건 아닌가 불안해서 기계 소리가 날 때마다 신경이 곤두서기도 했다.

그렇게 어렵사리 건물을 헐어 내고, 거제도까지 가서 폐목을 사다가 다듬고, 나무 기둥을 세우고, 돌을 주워 나르고, 황토를 퍼오고……. 정말 일이 무진장 많았다. 남들이 집 짓는 걸 몇 번 본 적은 있지만, 그때는 전 과정을 본 것이 아니라서 집 짓는 일이 이렇게 수고스럽다는 걸 몰랐다. 가까이서 지켜보니 이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닌 것이다.

▲ 구들을 깔기 시작한다. ⓒ정청라

그럼에도 이 남자, 쉽게 지치지 않는 모양이다. 구들을 깔고 있는 과정에서 갑자기 이런 얘길 꺼냈다.

“아랫목에 가마솥 오븐이 있으면 어떨까요? 아랫목 구들장 자리에 가마솥을 하나 걸어 놓으면 될 것 같은데.”
“방바닥에 오븐이라고요? 그럼 바닥이 불쑥 솟아 있다는 거예요?”
“방바닥 높이는 일정해요. 가마솥 위에 나무 뚜껑을 얹어 높이를 맞추면 되니까 일상적으로는 그냥 방바닥이에요.”

방바닥에 깔린 오븐이라,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그러다가 구들이 잘못되면 어쩌나 못 미더운 마음도 있었지만 기발한 생각을 꺾을 수는 없었다. 꺾는다고 꺾이거나 말린다고 포기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너무나 잘 아니까. 그리고 방바닥 오븐에 고구마나 빵을 구워 먹을 생각을 하면 절로 군침이 도니까.

“그럼 한번 마음대로 해봐요.”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20만 원이나 되는 무쇠 가마솥을 주문하더니 구들장 옆에 자리를 잡아 얹었다. 그렇게 하여 구들 공사를 끝내고 바닥에 흙을 바르고 있었는데, 갑자기 방바닥 가마솥에 물을 넣은 채 아궁이에 불을 때보란다. 가마솥 화력을 시험해 보자는 것이었다.

시험 결과는 실패! 물이 끓는 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궁이 바로 위에 자리를 잡으면 화력이 너무 셀까 싶어 그 옆에 얹었는데, 그랬더니 온도가 높게 올라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실망스러워 하는 신랑에게 나 는 오븐 대신 보온 솥으로 쓰면 되지 않겠느냐고 위로의 말을 건넸다. 신랑은 구들장이 무너지면 그땐 솥을 제대로 한번 걸어 보겠다며 이를 갈았다.

▲ 아랫목 보물단지, 가마솥 오븐! ⓒ정청라

그렇게 말하고 나서 1시간이나 지났을까? 점심밥을 먹자마자 부랴부랴 사랑방으로 달려 나가는 그를 뒤쫓아가 보았다. 그랬더니 글쎄, 애써 발라 놓은 바닥을 들어내고 가마솥이 있는 부분의 구들을 새로 놓고 있는 게 아닌가. 아궁이 바로 위에 자리를 잡아 가마솥을 다시 얹겠다고 말이다. 그렇게 하여 우여곡절 끝에 오븐 시험 성공! 실패했으면 구들을 또 뜯어냈을지도 모른다. 정말 못 말리는 남자다.

 

▲ "아직도 짓고 있나?" 옆집 어르신이 날마다 시찰을 나오신다. ⓒ정청라

▲ 아빠의 일터가 다울이에게는 놀이터다. ⓒ정청라

정청라
귀농 6년차, 결혼 4년차 되는 산골 아낙이다. 유기농 이웃들끼리만 사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 살다가, 몇 달 전 제초제와 비료가 난무하는 산골 마을 무림으로 뛰어들었다. 왕고집 신랑과 마음 여린 아들 다울, 이렇게 세 식구가 '알콩달콩 투닥투닥' 뿌리 내리기 작전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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