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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불을 지피려면 가장 밑으로 들어가는 게 순리이춘욱(스테파노) 평신도 선교사

 

   

‘○○ 본당 열성적 선교 운동으로 새신자 △△△△명 입교’, ‘□□교구 2020년까지 신자비율 ○○% 목표’.... 교회 언론에 등장하는 선교 관련 기사 가운데 가장 자주 접하는 기사 제목 가운데 하나다. 새로 입교하는 신자수는 점점 감소하고, 기존 신자들의 미사참례율은 떨어지고 냉담율은 증가하는 교회 위기의 현실 속에서 이런 사례는 교회가 처한 문제 해결의 실마리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자주 기사거리가 되는게 아닐까! 2007년 긴 여름의 한 가운데 일어난 아프간 피랍사태는 신자, 비신자 구분 없이 온 국민이 ‘선교’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했지만 비싼 대가를 치르고 우리 사회와 교회는 무얼 배웠는지 돌아볼 일이다.

10월 전교의 달과 전교 주일(21일)을 맞아 복음 선교의 참 뜻을 되새겨 본다는 의미에서 평신도 선교사 한 분을 만나고 왔다. 그와는 지난해 <예수살이공동체>의 제자교육에서 교육생으로 처음 만났는데, 제주도 공소에서 선교사로 살고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같은 교육생 신분이어서 많은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인터뷰를 겸해서 만난 두 번째 만남은 지난 10월 17일 오후 그가 일하고 있는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에 위치한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에서 있었다.

절망의 끝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다

1977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문화부와 경제부 기자를 거친 뒤 1980년 신군부의 등장과 함께 해직의 아픔을 거쳤던 이춘욱(스테파노) 선교사는 삼성전자에 입사해 홍보이사까지 올랐으나 구제금융사태와 함께 옷을 벗었다. 이후 1998년 경기도지사 후보로 나선 임창열씨를 만나 언론특보로 선거를 도왔고 임씨가 당선되자 경기도 공보관을 거쳐 2001년 7월에는 경기개발연구원 사무처장을 마지막으로 공직을 그만두었다.

실직의 아픔, 원망, 분노를 극복하려고 운동을 무리하게 하다가 늑막이 터질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던 그가 결정적으로 새로운 삶의 비전을 찾게 된 계기는 아내의 권유로 시작한 성서 공부였단다. 내친김에 교리신학원까지 마친 그는 2004년 졸업과 동시에 선배 선교사의 요청으로 제주교구 화순공소에서 선교사의 삶을 시작했다. 3년간의 공소 생활을 마친 그는 최근 경기 수원시 이목동에 있는 정신지체 장애아 보호시설인 ‘마리아의 아들’ 수도회에서 봉사의 길로 나섰다. 50여명의 정신지체 장애인을 보호하는 이곳에서 그의 직함은 사회복지법인의 대외협력이사다. 홍보 업무로 잔뼈가 굵은 그의 전문성과 사회 경험을 이곳에서 나누고 있었다.

숫자 늘리기 보다는 누룩의 역할이 더 중요

아프간 피랍사태를 통해 공론화 됐던 이른바 ‘공격적인 선교’는 개신교의 대표적인 선교방식으로 여겨졌는데 요즘은 천주교 안에서도 많이 시도되고 있고 신자수를 늘리는데 어느 정도 효과를 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선교운동이 교회의 사명을 실현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일까? 선교사의 직함을 갖고 있는 그에게 한국 교회의 선교에 대한 생각을 물어보니 세력을 확장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가두선교 보다는 쉬는 교우들을 회두시키고 기존에 나오는 신자들이 보다 영성적인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일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신자 양성을 제대로 하고, 예수의 삶을 따라 살고자 하는 ‘예수살이’가 잘 되면 선교는 저절로 되지 않겠느냐고…….

‘사실 효과적인 방법은 사제가 쇄신되면 해결될 문제가 대부분이라고 봅니다. 쇄신된 사제와 더불어 평신도들이 함께 힘을 보탠다면 아주 이상적이라고 봅니다. 하느님 나라는 누룩과 같아서 가시적이고 외형적인 성장을 추구하기 보다는 영성수련과 효과적인 양성을 통해 성숙한 신자들이 교회의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봐요. 실제로 이벤트성 선교 활동에 신자들은 피곤해 할 뿐 아무런 감동과 메시지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도하는 사목위원, 공부하는 사목위원들이 나온다면 우리 교회는 뒤집어 질 수 있다고 봅니다.’오랜 본당 활동과 길지 않은 선교 활동의 체험에서 나온 그의 한국교회 선교 현실에 대한 진단이다.

   

제주교구 화순공소에서 있었던 학부모 피정 '참부모가 되는 길'에서 나눔하는 장면


 
책임을 나눠 갖는 교회가 돼야

평신도들의 영적 성장과 양성을 위한 그의 제안이 설득력 있어 보이면서도 뭔가 구체화되기까지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고 물으니 그는 자신이 속한 일원동 본당의 사례를 들려준다.

‘저는 교회가 평신도들의 교회 활동 참여에 대한 시각과 개념을 바꿔야 한다고 봅니다. 평신도에 대한 신뢰가 없다면 권한 위임은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평신도들을 양성하고 양성된 평신도들이 교회의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평신도에 대한 신뢰가 전제 되어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제가 다니고 있는 일원동 본당의 경우는 성인 예비자 교리를 평신도 교사들이 주로 맡고 있는데, 주임 사제가 경험이 없는 평신도들에게도 역할을 맡겨서 교리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교사 자신도 양성이 되도록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이는 평신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의존해서만 가르치려고 하다가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하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선교지에서도 가르치는 선교사가 있는 반면 함께 사는걸 중요하게 생각하는 선교사도 있는데 결국 마지막까지 남는 분들은 삶을 함께하는 선교사들이 남는거 같아요. 복음의 불을 지피려면 가장 밑으로 들어가야지 머리 꼭대기에서 불을 때서야 되겠습니까?’

‘한 가지 덧붙인다면 평신도들에 대한 양성의 기회는 좀 더 확대될 필요가 있습니다. 사제들은 신학교 교육 외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양성의 기회가 주어지는데 저희 평신도 선교사들은 교리신학원 2년 과정을 마치면 거의 양성의 기회를 갖기 어렵고 하더라도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선교사 활동의 가장 어려운 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장 먼저 꼽았다. 실제로 공직을 떠난 후 7년간 그의 경제생활은 계속 내리막길을 걷고 있어 얼마 전에는 아파트를 팔아 일반 주택으로 옮겨 생활하면서 주택을 담보로 부족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고 한다. 또한 건강과 노후에 대한 보장이 없는 것도 선교사 활동을 지속하는데 어려움을 주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10년간 선교 활동을 전업으로 하는 평신도 선교사의 숫자는 계속해서 감소하는 추세이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자기 자신을 통해 활동하시는 하느님을 체험한 이들의 삶이 변하는 것이 선교 활동의 가장 큰 보람이라고 한다.

세상 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사는 공동체를 꿈꾸며

4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난 그는 한국전쟁 당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난 아버지 덕분에 태어났다며 자신의 삶은 거저 주어진 삶이라고 말한다. 부모님 밑에서 25년간 성장하고, 25년은 가족을 꾸려서 살아 왔으니, 남은 25년은 거저 주어진 삶에 대한 보답으로 자신을 위해 살기 보다는 남을 위한 봉사의 삶에 생을 바치고 싶단다. 이왕이면 비슷한 지향을 갖는 이들과 함께 공동체를 꾸리고 공동체를 통해 봉사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단다. 그의 말을 듣고 보니 지난해 <예수살이공동체>의 ‘제자교육’에 참여한 것도 남은 25년을 준비하기 위한 계획의 하나가 아니었나하는 생각이다.

/경동현 2007.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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