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새 간판을 달고 소매를 걷어 붙인지 한 달이 넘으면서 경제를 살리겠다는 당선자의 호언장담은 시나브로 빛을 잃어가고 대신에 불안감만 더해가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발표되는 정부조직 개편안이나 정책결정사항들을 보면 대부분 국가의 장래를 내다보기보다는 코앞의 문제에만 급급하고 매사에 무척 성급하다는 인상이 짙기 때문이다. 여타의 부서에 비해 상대적으로 미래지향적인 통일부 여성부 등의 폐지가 단적인 예다. 어떠한 간섭이나 통제에서도 자유로워야 하는 국가인권위원회나 방송위원회 등을 대통령 직속으로 두겠다는 결정도 미심쩍다. 신권(神權)을 대통령이 행사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대통령이 장악하겠다는 의도가 아닌가. 지금 당장 파헤치고 뒤엎어서 가시적인 성과를 내야 직성이 풀리는 토목 건설회사 사장의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것 같다.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을 파헤치는 일은 위헌

이명박 당선자는 한반도 대운하 건설이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국민의 지상 명령인 것처럼 서둔다. 1년 안에 착공해서 5년 임기 안에 완공을 보겠단다. 그 결과, 지도에 그은 금 주변으로 투기꾼들이 벌떼 같이 모여들어 땅값만 천정부지로 올려놓았다. 그는 서울시장 시절에 만든(엄밀한 의미에서 ‘복원’이 아니다) 콘크리트 청계천을 성공작이라고 생각하는 게 틀림없다. 얼마 전에 사석에서 만난 인하대학의 박영일 교수의 말이 생각난다. “노무현 대통령의 행정수도 이전 계획이 헌법재판소에서 이른바 ‘관습헌법’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위헌 판결을 받아 제동이 걸렸습니다. 우리 국민들 의식 속에는 서울이 수도라는 고정관념이 오랫동안 자리잡고 있다는 거지요. 그런데 이것은 겨우 조선 오백년의 역사를 근거로 할 뿐입니다. 오백년 간 이 나라의 수도였던 서울을 옮기는 것이 위헌이라면 오천년의 역사에 뿌리를 둔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을 파헤치는 일은 위헌도 보통 위헌이 아닙니다. 인공 운하를 이유로 반만년 역사의 척추를 훼손한다는 것은 행정수도를 이전하는 것에 비길 수가 없습니다. 한반도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이름으로 헌법소원을 내야 합니다. 이건 분명한 위헌적 범죄입니다.”

후퇴하는 역사는 없다지만 어쩐지 남북관계는 2000년 6월 이전으로 돌아가고, 점점 더 많은 어린 학생들이 자꾸만 해외로 빠져나가고, 사교육비는 부모들의 목을 옥죄고, 그래서 많은 가정들이 망가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극심한 사회의 양극화로 절망 속에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질지도 모른다. 천성산의 도롱뇽을 살리려고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은 지율 스님이 생각난다. 새만금을 위해서 목숨 걸고 삼보일배한 우리의 동료 문규현 신부가 생각난다. 그러나 이제 운하 건설공사가 시작되고 전 국토에 포크레인 소리가 진동하면 그때는 천성산이나 새만금이 문제가 아니다. 우리는 또다시 저 암울했던 시대를 되살아야 하나.

우리도 힘을 기르자, 그래야 희망이 있다

인수위원회를 통해 드러나는 이 당선자의 행보가 불안하다 해서 나까지 아직 출범도 안 한 새 정부에 부정적인 판단을 내릴 필요는 없고 내려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명색이 성직자인 내가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 또한 잘못된 처사인 줄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제만 하고 있을 수 없는 것은 그들이 걸어온 행로가 너무나 불투명하고 신뢰하기 어려운 구석이 많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에게 희망은 없는가? 천만에! 희망은 있다. 매우 역설적이지만 향후 5년이 바로 그 희망이다. 5년 간 그저 숨죽이고 눈감고 있을 것이 아니라 성찰과 인내를 배우고 열심히 두 팔에 힘을 기를 일이다. 5년이란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없이 긴 시간도 아니다. 내 말이 현실성이라곤 조금도 없이 너무 낭만적이고 관념적인가? 하고 보니 그렇긴 그런 것 같구나. 그러나 다행히 가톨릭을 제외하고 한번 집권한 사람이 스스로 사퇴할 때까지 권좌에 있는 그런 나라, 그런 제도는 이 세상에 없다.

호인수 2008-01-31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