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눈이 하루 종일 푸짐하게 왔다. 아침에는 교통대란이었다. 본당 직원들도 10시가 넘어서야 겨우 출근했다. 그날 저녁에 나는 미사를 보좌신부에게 맡기고 인천 기차길옆작은학교의 인형극단 <칙칙폭폭>이 공연하는 인형극을 보러 갔던 것이다. TV화면이나 영화를 통해서가 아닌 공연장의 인형극 구경은 생전 처음이다.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애기들이나 좋아하는 인형극을 재밌게 볼 수 있을까? 그것도 궁금했다. 영등포 <하자센터>의 넓은 마당엔 치우지 않은 눈이 그대로 쌓여 있었다. 누군가가 눈사람도 만들어 놓았다. 날씨가 이래서 혹시 공연장이 썰렁하지 않을까 염려했지만 그건 순전히 기우였다. 공연장 입구에는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이 벌써부터 뛰어 놀고 있었다.

최근에 이름을 바꾼 ‘기차길옆작은학교’는 1987년에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빈민지역인 만석동에서 문을 연 공부방이다. 그때, 지금은 부부인 최흥찬, 김중미씨 등이 거기 들어와서 학교가 끝나면 딱히 갈 곳도 없는 아이들을 모아 ‘기차길옆공부방’이라 간판을 달고 오늘까지 함께 살아온 터전이다.(http://gichagil.saramdl.net 참조) 김중미씨가 쓴 동화책 <괭이부리말 아이들>은 바로 그 동네 이야기다. 아이들과, 아이들이 삼촌 또는 이모라고 부르는 교사들은 1년에 두 번씩 꼭꼭 내게 카드를 만들어 편지를 보냈는데 그 내용이 너무 좋아 나는 성탄과 부활 대미사 강론 때 교우들에게 그것을 읽어드리곤 했다. 내가 한 일이라고는 겨우 방학 때 한번 씩 그들을 데리고 하인천 중국인촌 식당에 가서 짜장면을 함께 먹는 게 고작이었다. 얼마 전에 들으니 벌써부터 만석동에 재개발 붐이 일어 이제는 기차길옆작은학교가 거의 문을 닫을 지경에까지 이르렀단다. 가슴 아픈 일이다.

인형극의 줄거리는 단순했다. 재개발이 한창인 산동네에 사는 가난한 아이들이 더 이상 쫓기지 않고 마음껏 춤추고 노래하며 살 수 있는 세상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가면서 비슷한 처지의 동무들을 만나 함께 어울린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기네가 찾는 희망의 세상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시 전에 살던 산동네로 돌아온다. 더 이상 헤맬 게 아니라 여기를 아름다운 동네로 만들자고 다짐하면서.(http://chicpok.saramdl.net 참조) 나는 공연을 보면서 내내 가슴이 뭉클하고 콧등이 싸~했다. 온 몸을 온통 검은 천으로 휘감고 공연에 열중하는 초딩, 중딩, 고딩 출연자들이 바로 가난한 말썽꾸러기 ‘괭이부리말 아이들’이란 말인가! 내 옆 의자에 앉은 젊은 엄마는 칭얼거리는 아기에게 서슴없이 젖을 물렸다. 그 모습이 하나도 볼썽사납거나 이상하지 않았다.

인형극의 백미는 공연 막판에 ‘기차길옆...’ 공동체 식구들이 모두 한데 어울려 인형극을 준비한 과정과 지난 해 춘천인형극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던 광경을 담은 영상을 급조된 화면에 올릴 때였다. 영예의 대상이 발표되는 순간 ‘칙칙폭폭’의 모든 스태프와 출연진은 함성과 함께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동생들로부터 언니들, 교사에 이르기까지 수상소감을 말했다. 모두 하나같이 똑똑하고 대견했다. 김중미씨는 한마디로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들 가운데 누구 하나 인형극의 전문가는 없었다. 그러니 여기에 오기까지 얼마나 큰 어려움과 아픔을 겪었을까? 나는 확신한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다. 자그마치 20년을 공들여 세운 탑이다. 20년 동안 ‘기차길옆...’을 드나든 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희망과 믿음과 사랑이 뭉쳐진 결실이다. 그들의 꿈은 소박하다. “우리가 유랑극단을 만들어서 우리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아이들이 있는 곳을 찾아 공연하고 함께 어깨동무하는 것입니다.” 나는 최흥찬씨에게 부천의 변두리인 우리 동네에도 와서 공연해주기를 간곡히 청했다.

호인수 2008-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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