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타리나의 주말 영화] 로드리고 코르테스 감독, 8월 23일 개봉

일상의 도처에서 레드 라이트를 만난다. 횡단보도에서, 초고층 건물의 꼭대기 혹은 마루턱에서, 품절을 알리는 자판기 앞에서. 어떤 홍등은 택시의 ‘빈 차’ 표시등 같아, 우리를 유인한다. 그 빛에 동승하라고 속삭이는 것 같다. 이렇게 레드 라이트를 해석했던 이가 백수광부였는지도 모른다. 그는 “그 물을 건너지 말라”는 아내의 레드 라이트를 무시했고, 그 결과 비극적인 가사 <공무도하가>의 주인공으로 남게 되었다.

영화 <레드 라이트>는 레드 라이트를 과학적으로 뭔가 안 어울리는 어색한 상황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마가렛 매티슨 박사(시고니 위버 분)는 30년간 초자연적 현상에 과학적으로 접근한 결과, 기적이 하나도 없었다는 경험치를 신봉하는 심리학자다. 아무런 대가 없이 그녀를 수행하는 물리학 박사 톰 버클리(킬리언 머피 분)는 그녀에게 수호천사 같은 존재. 그녀가 “나 혼자였다면 계속 못했을 거야. 너는 어디에서 튀어나왔지? 왜 나랑 일해?” 하고 물어도 신비로운 미소를 머금을 뿐이다.

이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는 것은 30년 전 은퇴했던 심령술사 사이먼 실버(로버트 드 니로 분)가 활동을 재개하면서부터다. 실버는 뉴스의 중심에 다시 화려하게 등장하여 대중을 홀리고 거액을 챙긴다. 버클리는 실버를 다시 조사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매티슨은 이를 불필요한 짓으로 치부한다. 그녀의 완강한 태도 아래에는 실버에 대한 공포가 숨어 있다.

매티슨은 젊은 시절 실버를 조사했고 토론장에서 격렬하게 대립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 실버는 매티슨의 가장 약한 지점, 아들 데이빗을 언급해 그녀를 공포에 몰아넣었다. 이의 여파로 초자연적 세계에 대한 신념이 흔들렸던 일은 그녀에게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다. 그녀는 상대의 약점을 건드려 심리적 우위를 점하는 실버에게 버클리까지 휘둘릴까 두렵기만 하다.

<레드 라이트>는 배우의 앙상블로 기본 점수는 따고 들어가는 작품이다. 특히 로버트 드 니로, 시고니 위버가 한 프레임 안에 있다는 상상만으로 아, 가슴이 마구 쿵쾅거린다. 허나 이들의 대면은 과거지사로, 또 대사로만 처리되므로, 기대는 재빨리 접는 게 좋다.

▲ 30년만에 활동을 재개한 사이먼 실버(로버트 드 니로 분)는 뉴스의 중심에 다시 화려하게 등장하여 대중을 홀리고 거액을 챙긴다.

복귀한 로버트 드 니로(사이먼 실버)를 상대해야 하는 것은 킬리언 머피. 이들의 만남이 과연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는지 회의적이다. 로버트 드 니로야 존재만으로 일정 수준의 성취를 낳는 인물. 변용된 <햄릿> 대사를 읊는 카리스마 넘치는 심령술사를 기대치만큼 보여주었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서서히 팬덤을 굳히고 있는 킬리언 머피에게 <레드 라이트>는 다소 아쉬운 작품이지 않을까 한다.

킬리언 머피는 내러티브를 위한 기능적 역할을 행할 뿐 특유의 매력을 거의 보여 주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출연진 모두가 그렇다. 배우들은 제 몫의 이름값을 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은 연출되지 않는다. 킬리언 머피가 아쉬운 쪽이고 로버트 드 니로는 본전치기, 인간적인 갈등을 가장 많이 보여 주는 시고니 위버가 상대적으로 나은 배역을 따냈다는 생각이다.

감독 로드리고 코르테스는 배우들이 지금껏 구축한 이미지 위에 무언가를 플러스할 의지가 크게 없는 것 같다. 그 결과 너무나 뛰어난 캐스팅이고 무리수가 하나도 없어 보이지만 딱히 두드러지는 무언가도 없는 영화가 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관객들이 기대만 부풀리지 않는다면 나쁘지 않은 선택이 될 터이다.

▲ 마가렛 매티슨 박사(시고니 위버 분, 왼쪽)와 그녀를 수행하는 톰 버클리(킬리언 머피 분)

캐스팅에 관해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패셔니스타로 유명한 쌍둥이 자매 올슨의 막내 엘리자베스 올슨(셀리 오웬 역)이 킬리언 머피의 연인으로 등장한다. 매티슨 박사의 학생인 그녀는 촌철살인의 대사를 내뱉는다. “심령술이 사이비라면 그냥 내버려두면 되는데, 왜 굳이 파헤치려 하나요?” 사르트르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지식인은 자신과 무관한 일에 쓸데없이 참견하는 사람이다.”

말하자면, 세계사적 문제들을 자기가 당면한 일인 것처럼 고민하는, 오지랖 넓은 사람인 것. 우리 같은 범인이 백수광부처럼 눈에 뻔히 보이는 위험에 현혹되는 사태를 자신의 일처럼 여기고 고통스러워 하는 존재가 지식인이라는 것이다. 이들이 이렇게 골치 아프게 사는 이유가 뭐냐고? 답은 단순하다. 그것이 자기 구원과 통하는 길이니까. <레드 라이트> 역시 유사한 답을 보여주는 것 같다.

 
 

진수미(카타리나)
시인, 한국문학과 영화를 전공으로 삼고 있다. <달의 코르크마개가 열릴 때까지>, <시와 회화의 현대적 만남>을 썼다. 가톨릭청년성서모임 출신. 작은형제회 <평화의 사도> 편집위원으로 일하면서 가톨리시즘이 담긴 시를 같은 지면에 소개했다. 덧붙여, 시는 영혼이고 영화는 삶이다. 펄프 향 풍기는 ‘거기’서 먼지와 정전기 날리는 ‘여기’로 경로 이동 중. 덕분에 머리는 산발이지만 약간 더 명랑해지고 조금 덜 외로워졌다고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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