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대권 도전을 포기하고 백의종군하겠다고 선언한 김근태 의원이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가 떨어질 줄 모르는 여론조사를 보고 우리 국민들이 노망들었나보다, 고 해서 한 때 일부 언론과 한나라당이 발끈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의 내 심정이 꼭 김근태 의원과 같으니 어쩌면 좋으랴. 이 글이 발표될 때쯤이면 이미 대선이 끝나서 특별한 이변이 없는 한 이명박씨는 후보라는 꼬리를 떼고 당선자가 되어 표정관리에 여념이 없을 것이다. 지난 12월 5일 검찰의 ‘이명박 후보 무혐의’ 수사발표는 대통령 당선증이나 다름없었으니 어차피 19일 투표는 확인 절차를 위한 요식행위였는지도 모른다.

국민의 시선은 오로지 경제살리기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돈에 집중되어 있다. 이제까지의 모든 선거에서 후보자 검증의 가장 중요한 잣대로 쓰이던 도덕성이 이번 대선에서는 더 이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먹고 사는 일만 해결된다면 도덕적인 결함쯤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태도다. 그래서 국민은 경제를 살릴 유일한 사람으로 이명박씨를 택했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우리의 어려운 살림살이는 경제성장이 안돼서가 아니라 공정한 분배가 안 되는 데 그 원인이 있다. 정의로운 분배는 반드시 높은 도덕성을 요구한다. 이명박씨가 걸어온 행로로 보아 그에게 정의로운 분배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터, 분배가 정의롭지 못하면 아무리 경제가 눈부시게 성장한다 하더라도 양극화 현상만 심화될 뿐 실질적인 우리의 살림은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돈이면 안되는 게 없다고 믿는 졸부들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그날그날 겨우 벌어먹고 사는 가난한 서민들까지 집단 최면에 걸린 우리나라의 이 이상야릇한 현상을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노무현 정권의 독선과 오만을 더 이상 탓하지 말자. 내 책임이 크다. 내가 입으로는 돈이 최고가 아니고 그보다 더 높은 자리에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인 인간이 있다고 설교하면서 몸으로는 믿음이 없는 사람들과 똑같이 돈 많고 웅장한 도심의 성당을 동경하고 경제력으로 사람을 판단하며 너, 나 할 것 없이 부자 되는 은총을 주십사 기도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 같은 이들이 적지 않아서 그 세세한 영향력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와 사회 구석구석까지 미친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과 맘몬을 함께 섬길 수 없다는 진리를 믿고 그리스도만이 왕이라고 고백하는 신앙인들까지 도덕성을 제치고 돈을 선택하는 데 일조한 것이 아닐까? 내 탓이오!

나는 줄곧 <사는 이야기>를 쓰고 있다. 내가 반대하는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돼도 세상은 하루아침에 망하지 않을 것이고 나는 계속 <사는 이야기>를 쓸 것이다. 그러나 막상 가상이 현실이 되고 보니 지금까지 내가 철석 같이 믿고 몸바쳐온 하느님 나라 운동, 복음화 사업도 전략수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수적으로 많지만 가진 것 없는 변두리 인생들에게 쏟던 정성을 적지만 영향력이 막강한 주류 엘리트에게 쏟는 쪽으로.

교회와 사회는 소수의 주류와 다수의 비주류가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2:8 정도라던가?)을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주류는 늘 권력을 이용해 돈을 벌고 가진 돈으로 권력을 사서 다수의 비주류들을 지배해 왔다. 이번 대선은 한 손에 돈을 움켜쥔 주류의 다른 한 손에 칼을 쥐어준 셈이다. 어찌 해야 하나? 나도 주류에 편승해서 복음화율 20%를 달성하는 데 그들의 돈과 권력을 이용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닐까? 나도 이젠 골프를 배워볼까?

이거 헷갈린다. 아, 나야말로 노망이 들었나보다. 갓난아기 예수님은 마구간 구유에 누워계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상징되는 주류를 두고 갈릴래아로 달려가셨는데......

호인수 200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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