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그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90년대 중반, 내가 인천 제물포본당에 있을 때 석탄일을 맞아 성당 입구에 예쁜 연등을 달고 “봉축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쓴 리본을 달아놓았다. 아마 우리나라에서는 제일 먼저 시도한 일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주일미사 때 교우들에게 그것을 설명하는데 갑자기 교우 한 분(전에 사목회장을 역임하신 분)이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던 것 같다. “당신이 주교가 되고 싶어서 그러느냐? 성당을 절간으로 만들겠다는 거냐? 차라리 성당을 팔아먹어라.” 등등. 나는 갑자기 할 말을 잃었다. 현기증이 일었다. 그분이 한참 삿대질을 하며 열을 올리자 곁에 있던 한 분이 “옳소!”하며 박수를 쳤다. 성당 안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가슴은 방망이질을 했다. 미사 후, 성당 마당의 광경은 더욱 가관이었다. 그분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만면에 웃음을 띠고 교우들과 하나하나 악수를 나누는 것이었다. 나는 도망치듯 사제관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청주의 금천동본당에서 최근에 있었던 일이다. 김인국 주임신부님(정의구현전국사제단 총무)이 사제단 일로 서울 가고 보좌신부님이 미사를 주례하면서 요즘 힘겹게 싸우고 있는 사제단과 우리 주임신부님을 위해서 기도해달라고 교우들에게 부탁했던 것이 화근이 된 모양. 본당에서 중책을 맡고 있다는 40대 중반의 남성 교우 한분이 분기탱천해서 벌떡 일어나 고함을 치기 시작했단다. 주임신부와 사제단에 대한 그의 질타는 끝이 없어서 보다 못한 교우들 몇이 겨우 성당 밖으로 데리고 나갔는데 마당에서도 흥분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단다. 마침 그때 본당에 돌아온 김 신부님이 그 광경을 보았다는 것이다. 전혀 예상치 못한 사태에 직면한 신부님은 얼마나 황당하고 기가 막혔을까? 보좌신부님과 교우들은 제 정신으로 미사나 제대로 드렸을까?
나중에 그 소란의 주인공은 “내가 정신이 어떻게 됐나보다. 그러나 순수한 뜻에서 그랬다.”고 하더란다. 소식을 듣고 전화를 건 내게 김인국 신부님은 본당 사목회 임원들이 자기에게 했다는 말을 전해주었다. “신부님, 우리 본당은 배운 사람, 부자, 젊은이가 많아서 신부님의 생각이나 말이 신자들 사이에 분열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그 점을 명심하십시오.” 더 이상 흉한 꼴 당하지 않으려거든 입 꼭 다물고 있으라는 말이렷다. 신부님의 한숨 섞인 한 마디. “그분들도 다 그 사람 편이더군요.” 동냥 안 주려면 쪽박이나 깨지 말지.

김인국 신부님은 평소 강론 중에는 현실 고발이나 비판적인 이야기는 잘 안 한단다. 그렇다면 그 본당 교우들은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자기들의 주임신부를 정도를 벗어나 외도하는 신부라고 일방적으로 매도할까? 하기야 정의구현사제단이라면 공연히 눈살을 찌푸리고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신자들이 있기는 하다. 김 신부님은 11월 26일 기도회 미사 강론에서 국민과 교우들의 지지가 있어 사제단에 큰 힘이 된다고 했다는데....

나를 반대한다고 미워하는 건 사제의 도리가 아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나는 제물포본당에서 내게 대들었던 사람이나 금천동본당에서 소란을 피운 그 사람이 밉고 싫다. 내공이 턱없이 부족한 탓일 터다. 그러나 그들 버금가게 미운 사람이 또 있다. 주임신부가 당하는 것을 구경만 하던 교우들이다. 설마 그들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보다 자신의 손익을 약삭빠르게 계산한 건 아니겠지. 혹시 중용을 내세워서 결과적으로 대세에 편승하는 줏대 없고 비겁한 ‘군중’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사제는 누굴 믿고 옳은 일에 목숨을 걸고 나설 수 있을까? 사람에게보다 하느님에게 복종(사도 5,29)하는 순교자적인 절개를 지키기에는 우리 사제들은 인간적으로 너무나 약점이 많은 나약한 존재들이다. 다시 한번 물어보자. “사제는 신자들의 지지를 먹고 사는가?” “그렇다. 그러나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김인국 신부님과 사제단의 건투를 빈다.

호인수 2007-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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