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분이 아니었다면 나는 지금 이 글을 쓰지 않을 것이다. 꾹 참고 가만히 있으려니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어 이 글이 실릴 때쯤이면 시사성이 한참 떨어져 진부한 이야기가 될 게 뻔한 글을 쓴다. ‘평화신문’, ‘가톨릭신문’에 관한 이야기다.

지난 주일 미사 후에 대부분의 교우들이 마당을 빠져나갔을 무렵, 낯선 부인 한 분이 내게로 다가오더니 공손히 인사를 하며 명함을 내밀었다. ‘평화방송• 평화신문 홍보위원 000’라고 박혀 있었다. 그분은 내게 우리 본당에서 신문을 홍보하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했다. 짐작했던 바였다. 교회 신문이나 잡지의 홍보 담당자들이 정기구독자 확보차 본당을 순회하는 모습은 여러 번 보아왔던 터다. 순간, 내 입에선 퉁명스러운 소리가 튀어나갔다. “글쎄요~, 고생은 하시는데 평화신문이나 가톨릭신문이 워낙 제 구실을 다하지 못 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썩 내키질 않으니.....” 평화신문만 따로 떼어 거론하기가 뭣해서 가톨릭신문까지 도매금으로 걸었다. 언뜻 그 얼굴에 스치는 당혹스런 표정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신부들한테서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듣는단다. 그분은 내키지 않는 미소를 지으며 의당 부족한 점은 고쳐나가야겠지만 독자층 또한 넓혀야 하지 않겠냐고 어렵사리 대꾸했다. 돌아서는 뒷모습이 내 가슴을 싸~하게 만들었다.

내 맘에 안 든다고 다 옳지 못한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지 않는다고 남도 좋아해서는 안 된다는 억지는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설령 평화신문이 아무리 내 맘에 안 들고 단점과 허점투성이라 하더라도 홍보하고 팔아서 먹고 살겠다는 것까지 못하게 막는 건 너무 몰인정하지 않은가? 신자들이 평화신문을 접할 기회까지 원천봉쇄하는 건 내가 생각해도 그들을 무지한 어린애로 취급하는 건방진 처사다. 내게 과연 그럴 권한이 있나? 돌이켜 보면 나는 본당신부의 직권을 내세워 그런 억지와 횡포를 부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렇다. 누가 내게 그렇게 따지고 대든다면 나는 할 말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보인 교회 신문과 방송의 태도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도 용납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삼성의 부정과 비리에 대한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고백을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폭로한 기자회견 이야기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은 사제단 기자회견 내용의 진위가 아니다. 로만칼라를 한 사제들이 기자회견하는 모습과 내용이 연일 중앙 신문과 방송에 톱뉴스로 실리는데 어찌하여 유독 우리 천주교회의 신문과 방송만은 이렇듯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교회의 신문과 방송 기자가 제기동성당 기자회견장에 가기는 갔나? 가서 취재는 잘 했는데 회사의 데스크에서 슬그머니 휴지통에 버렸나? 이른바 부자 신문들은 사제단 회견 내용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함으로써 삼성과의 물밑 연결고리가 있는 게 아니냐는 세간의 의혹을 사고 있지만 교회 신문에는 그나마 단 한 줄의 기사조차 찾아볼 수가 없으니 교회 신문과 방송은 도대체 삼성과 어떤 관계인가? 어느 신부가 은경축을 맞았다는 기사와 사진까지 실어주는 친절한(?) 신문이 우리 평화신문과 가톨릭신문이다. 이런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입도 벙긋하지 않는 이유가 뭐냔 말이다. 5공 때의 보도지침이 교회 안에는 여전히 살아있나? 이건 단지 재벌 삼성과 김 변호사 개인과의 문제가 아니다. 거기 인간적으로 외롭고 불안한 우리 사제들 여럿이 함께 있다. 그들이 성공회 사제들인가? 비록 성공회 사제들이라도 그럴 순 없다.

그래서다. 평화신문 홍보위원이 안쓰러웠음에도 불구하고 매몰차게 거절한 이유는. 또 그래서다. 우리가 가톨릭인터넷언론 <지금 여기>에 공을 들이고 어떻게든 신문으로 만들어보려고 안간힘을 쓰는 까닭은.

내 방엔 1997년에 김경배 화백이 그린 판화가 한점 걸려 있다. 거기 삽입된 글이 새삼 내 가슴을 찌른다.

“밖엔 바람 거세도 교횐 잠잠했다.”

호인수 200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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