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살던 부천 상동 성당 근처에는 성주산과 소래산이 있어 좋았는데 이곳 고강동으로 이사 온 후로는 마땅한 운동거리가 없다. 나이가 들수록 운동을 소홀히 하지 말라니 아쉬운 대로 걷기라도 하자고 나섰다. 동네 골목길부터 시작해서 차들이 쌩쌩 달리는 8차선 오정대로, 분명히 사람은 염두에 두지도 않고 만들었을 김포공항 담 옆의 2차선 도로, 논밭 사이의 농로와 농수로 둑방길 등,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 10km~12km쯤 걷는다. 혼자 부지런히 걸으면 대강 두 시간 반쯤 걸리니까 거리가 그 정도는 되지 않나 싶다. 집에 전임 신부가 두고 간 러닝머신(이걸 우리말로는 뭐라고 하지?)이 있기는 하지만 뛰고 걷고 한두 달 하다가 지루하고 싫증이 나서 그만뒀다.

내가 요즘 열심히 걷는 이유가 또 하나 있다. 내년 봄에 친구 3명과 함께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꼼포스텔라 2천리 도보 성지순례를 약속한 것이다. 순례여정에 대하여 쓴 책을 몇 권 읽었다.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겁이 났다. 그러나 더 나이 먹기 전에 해봐야겠다는 강한 의욕이 두려움을 압도했다. 순례자들의 말처럼 정말 세상과 사람을 보는 눈이 달라질까 하는 호기심이 발동했다. 우리들 4명은 다들 각자 나름대로 준비훈련을 하는 중이다. 나는 지금 그 고행길을 내 일생에 더는 없을 단 한 번의 대 피정 기회로 생각하고 덤벼들고 있는 것이다.

내 친구 원공 스님은 비행기를 타고 외국에 가거나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는 것 말고는 차를 타지 않는다. 언제고 어디고 늘 걸어만 다닌다. 기름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차타기가 미안하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걷는 것이 자기에게는 면벽좌선보다 좋은 수행 방법이기 때문이란다. 내가 이제 겨우 몇 달 운동 삼아 조금 걸으면서 걷기 수행을 하는 원공 스님까지 들먹이며 사방에 나팔을 불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누가 봐도 우스운 꼴이겠지만 작심삼일이 되지 않기 위한 작전의 하나라고 봐주면 좋겠다. 부끄러운 고백인데 나는 워낙 끈기가 없는 편이라 무엇 하나 제대로 끝을 보는 게 없으니 하는 말이다.

성급한 단정인지는 몰라도 나의 걷기는 적어도 작심삼일은 되지 않을 것 같다. 달리기는 너무 힘들고 무릎이 아파서 싫고 자꾸만 핑계거리를 찾게 되는데 걷는 건 그렇지가 않다. 싫증이 안 난다. 게다가 혼자 걷는 게 좋다. 혼자 할 수 있으니 굳이 동반자를 구할 필요가 없어 좋고, 방향이나 속도를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 좋다. 농로의 흙길이 좋고 뺨을 스치는 바람의 감촉이 좋고 출렁이는 황금빛 논과 재잘거리는 참새 떼가 좋다. 유행가를 흥얼거리는 것도 좋고 두 시간이 넘으면서 살살 아파오는 다리의 피로까지 감미롭다. 사제인 덕분에 낮 시간에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자체가 평범한 직장인들에게는 허용되지 않는 나만의 행운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나는 걸으면서 참 많은 일을 한다. 복음 말씀을 되새기며 강론 준비를 하고 써야 할 글을 머리 속에 그린다. 크고 작은 일들을 설계하고 판단하고 결심한다. 나의 걷는 길은 내 방보다 훨씬 좋은 서재요 기도실이다.

그러나 나의 걷기에도 훼방꾼이 있다. 자동차다. 인도가 없는 좁은 2차선 도로는 무섭다. 흙먼지를 일으키며 나를 둑방 끝으로 몰아붙이는 고급 승용차도 적지 않다. 농로 드라이브인가? 바싹 비켜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내게 미안하다는 눈인사 한번 주는 법 없다. 주일미사에 만큼은 제발 걸어서 오라고 누차 강조하지만 엎어지면 코 닿는 아파트에서 굳이 차를 타고 오는 사람들과 같은 부류일 게다. 자동차 중독자들. 밉살스럽다. 가다가 빵꾸나 나라! 한비야는 어떻게 이런 길을 걸어서 우리 땅을 다 섭렵했을까? 도법 스님은 또?

호인수 2007-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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