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민은 집으로, 김석기는 감옥으로.."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터. 사람들이 촛불과 국화를 들고 3년 만에 다시 모였다. 무대 앞 나란히 앉은 유가족들도,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이라는 피켓의 문구도, 무전기를 들고 참가자들을 주시하는 경찰도 3년 전과 똑같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남일당 건물이 사라지고 그 자리가 주차장으로나 쓰이는 빈 공터가 되었다는 것이다. 남일당 옥상 망루에서 목숨을 잃은 고 이상림 씨의 처 전재숙 씨는 울먹이며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렸다.

▲ 용산 남일당 터 앞에서 3년 만에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한 유가족들 ⓒ한수진 기자

“정말 살고 싶었던, 대화가 하고 싶어 이 자리에 왔던 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나라 공권력은 하루아침에 학살을 저질렀습니다. 3년 동안 아무 것도 밝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용역들 배불리기 위한 주차장을 하고 있습니다. 주차장을 하려고, 용역들 배불리려고 그렇게 급하게 철거민들을 죽였는지 다시 한 번 물어 보고 싶습니다.”

유가족 전재숙 씨, 구속 수감 중인 철거민 8명 가석방 요구
용산 참사 다룬 영화 <두 개의 문> 관객 5만 넘어서
 

전재숙 씨는 또한 용산참사의 책임을 뒤집어쓴 채 구속 수감되어 있는 철거민들을 8·15 특별사면으로 가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전재숙 씨의 아들 이충연 용산4구역철거민대책위원장을 비롯해 8명의 철거민은 남일당 건물 옥상에 올라 망루를 지었다는 이유로 특수공무방해치사혐의로 기소돼 4~5년형을 선고받고 3년 째 감옥에 수감 중이다. 최근에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오랜 병원치료를 받고 있던 용산참사 생존자 철거민 2명에 대해 추가로 구속하겠다고 해 시민 5천명이 탄원서를 모아 법정에 보내기도 했다.

3년 간 변한 것이 없지만, 이제라도 다시 사람들이 남일당 앞으로 모일 수 있게 된 것은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두 개의 문>의 공이 크다. 지난 19일 영화 두 개의 문은 극장관객 5만 명을 넘었고 주말 동안 6만 관객에 다가서고 있다.

<두 개의 문>을 공동 연출한 김일란 감독은 “우리가 증인이 되어, 우리가 또 다른 당사자가 되어 진실을 규명하자. 우리가 들고 있는 촛불과 국화가 진실과 남일당을 잇는 끈이 될 것이다”라고 호소했다.

▲ 영화 <두 개의 문> 을 계기로 용산 남일당 앞에서 3년 만에 용산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 문화제가 열렸다. ⓒ한수진 기자

초등학생 딸과 함께 집회에 참여한 라라 씨는 “영화 <두개의 문>을 보고 이전에 돌아가신 철거민들이 순천향 병원에 있을 때 못 가본 것이 마음에 걸렸다”면서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사람들이 죽었는데도 또 다시 같은 방식으로 쌍용차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은 우리가 정권을 향해 더 크게 외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목소리를 더할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고 말했다.

경찰, 유가족 풍등에 소화기 발사해 충돌 빚어
용산참사 진상규명 위원회, 책임자 처벌 요구하는 '시민 고발인 운동' 시작


촛불 문화제를 마친 유가족과 참가자들은 예전 남일당 터에 모여 풍등을 날렸다. 참가자들의 마음을 담은 풍등이 하나, 둘 떠올라 남일당 터와 철거민들이 운영하던 가게 터를 지나 하늘로 올랐다.

그 때까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던 경찰은 기어코 3년 전의 상황을 완벽하게 재연했다. 경찰은 풍등을 날리던 의식을 진행하던 중 갑자기 참가자들을 밀고 들어와 유가족이 들고 있던 풍등의 불씨를 소화기로 꺼버렸다. 유가족들은 방패로 무장한 경찰을 따라가 “감히 너희가 어떻게 풍등의 불을 꺼뜨릴 수 있느냐”며 강하게 항의했다. 몇 분의 소란 뒤 경찰은 철수했지만 유가족들은 쉽게 분을 삭이지 못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촛불집회 자리를 끝까지 지킨 성가소비녀회 수녀들은 “공권력 앞에 개인은 나약하지만 함께 모인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수녀들은 남일당 터에 초와 국화를 남겨두고 자리를 떠났다.

한편,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 제도 개선위원회'는 7월 20일부터 한 달간 김석기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한 용산참사 책임자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민 고발인단 운동’을 진행한다. 웹사이트(http://mbout.jinbo.net)에서 고발장 양식을 다운받아 작성 후 우편이나 팩스로 보내면 된다. 문의는 전화 02-3147-1444 / 이메일 mbout@jinbo.net .

▲ “공권력 앞에 개인은 나약하지만 함께 모인다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한수진 기자

▲ 용산참사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풍등을 날리는 참가자들 ⓒ한수진 기자

▲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남일당 터에 초와 국화를 바쳤다. ⓒ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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