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아버지가 여섯 달 사이로 돌아가신지 벌써 4년이 지났다. 처음엔 너무 슬프고 허전해서 못 살 것 같더니 해가 거듭되면서 그럭저럭 감성이 무뎌진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눈물 콧물 범벅이던 조카 녀석들은 바쁘다는 핑계로 이젠 제 아비 따라 성묘도 가려 하지 않는다. 세상은 애고 어른이고 다 그렇고 그렇게 사는 건가보다.

나는 다른 사람보다는 비교적 자주 부모님 산소를 찾는 편이다. 멀지 않고 교통도 불편하지 않아 다행이다. 건방진 생각인지는 몰라도 나는 우리 부모님이 확실히 천당 가셨다고 믿는다. 그래서 연도를 안 한다. (명색이 사제인 내가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지만 왜? 내 생각이 뭐가 어때서?) 성호 긋고 조부모님, 부모님께 차례로 절을 올리고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고 비닐 자리를 깔고 산소 앞에 벌렁 누워 팔베개하고 하늘을 보다가, 살아생전 그분들의 모습도 그려보다가, 그리운 얼굴들도 떠올리다가 나도 모르게 잠이 들면 한 잠 자기도 하고.... 그렇게 한 시간 쯤 지내는 게 전부다. 고맙게도 묘원 관리소에서 “사제들의 부모님은 우리 부모님”이라며 때맞춰 벌초를 해주니 낫질이 서툰 내게는 더없이 고마운 일. 그저 가끔 인사치레나 한다. 이거 다 사제된 덕(?)을 보는 거지.

추석 명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대선이 석 달밖에 안 남았으니 거기에 목맨 사람들에게야 장장 닷새나 되는 연휴가 할 일이 태산 같은 황금의 날들이겠지만 내게는 아니다. 이번 대선주자들은 하나같이 다 산뜻하지가 않다. 성묘는 벌써 며칠 전에 늘 하던 같은 방식으로 다녀왔다. 내 동생 내외가 부모님을 모시고 살던 집에는 추석 당일에 형제들이 모여 기도하고 차례만 지내면 그뿐, 처갓집이다 어디다 끼리끼리 서둘러 흩어진다. 그렇다고 본당 교우들에게 넌지시 눈치를 줘서 나를 자기네 집에 모시게 하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다. 말로야 “신부님이 오시면 영광이지요”, “수저 하나만 더 놓으면 되는 걸요”라고 하지만 속은 적잖게 부담스러우리란 것을 다 안다. 올 명절에도 지난해처럼 딱히 갈 곳 없는 친구들끼리 등산이나 가자. 산이 좋아 산에 간다면 누구에게도 청승맞게 보이지는 않겠지.

문득 얼마 전에 만난 여교우 한분이 생각난다. 그분은 내게 이렇게 물었었다. “신부님은 은퇴하시면 어디 가서 뭐하며 사실 겁니까?” 난데없이 은퇴는 무슨?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도시는 떠나 살고 싶다는 내 대답에 그는 간곡하게 이런 당부의 말을 했다.

“신부님은 독신이라 처자식은 없지만 항상 주변의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계시니까 실제로는 혼자 사시는 게 아닙니다. 지금이야 언제든 누구에게든 가실 수 있고 부르시면 오겠지만 일단 은퇴하시고 1년만 지나면 그게 아니랍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혼자서 즐겁게 사시는 연습을 하십시오. 대책 없이 어느 날 은퇴하시면 진짜 혼자가 되시는 겁니다. 제가 몇 년 전에 은퇴하신 신부님을 한분 아는데 그분은 책도 쓰시고 취미도 다양하셔서 늘 자신감이 넘치는 분이셨습니다. 그러던 분이 가끔 느닷없이 전화하셔서 오시겠다고 하시고 보자고 하시니 제가 당황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분을 이해를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구차하고 초라해 보여서 가슴이 아픕니다. 주머니 사정도 어렵다 하시고 무엇보다 외로움을 견디기가 어려우신 모양입니다.”

나는 그분의 말을 돈을 챙겨두라는 뜻으로 듣지 않았다. 내가 은퇴할 즈음해서 자본주의(더군다나 신자유주의)가 무너지는 이변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돈에 나의 노후를 몽땅 거는 건 정말 나답지 못한 처사일 터이다. 물론 그럴 능력도 마음도 없다. 그런데, 아- 그런데 과연 나는 지금 무엇을 나답다고 하는 것인가? 나라고 그 은퇴한 선배와 같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나? 나는 성묘를 하면서 그걸 두려워하고 있었다.

호인수 2007-9-27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