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중미 동화작가]

<괭이부리말 아이들>, <종이밥> 등 소설과 동화를 통해 가난한 동네 아이들의 삶을 이야기해온 김중미 작가가 이번에는 제주 강정마을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올해 1월부터 월간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강정마을을 배경으로 한 동화 <너영나영 구럼비에서 놀자>를 연재하고 있는 김중미 작가를 초여름의 정동 길에서 만났다.

▲ 김중미 작가는 1월부터 월간 <개똥이네 놀이터>에 강정마을 동화 <너영나영 구럼비에서 놀자>를 연재하고 있다.  ⓒ한수진 기자

김중미 작가는 2010년 결혼 20주년 기념으로 가족들과 갔던 제주도여행에서 처음 강정마을을 알게 됐다. 마을 곳곳 ‘해군기지 결사반대’ 노란 깃발이 나부끼는 광경이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김중미 작가는 공부방 ‘기찻길옆 작은학교’ 아이들과 함께 인형극 공연을 준비해 강정마을을 다시 찾았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공연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 때 구럼비 바위를 걷고, 강정천에 발을 담그면서 ‘강정앓이’가 되었다. 이제야 강정마을을 알게 되고 찾게 된 것이 미안했다. 그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바로 글을 통해 사람들과 강정마을 이야기를 나누기로 결심했다. 마침 <개똥이네 놀이터>에서 제안이 들어와 흔쾌히 동화를 연재하기로 했다.

그 동안 주로 아이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썼던 김중미 작가지만 <개똥이네 놀이터>의 주 독자층인 초등학교 저학년의 눈높이에 맞춰 글을 쓰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너영나영 구럼비에서 놀자>에 삽화를 그리는 ‘창작집단 도르래’의 그림 작가들이 어른 김중미 작가와 초딩 독자들 사이의 가교역할을 하고 있다. ‘기차길옆 공부방’ 출신의 대학생과 청소년 4명으로 구성된 삽화 팀은 김중미 작가가 글을 쓰면 함께 의견을 나누고 그림을 그린다. 김중미 작가는 “4명의 그림체가 다 달라 잘 어우러질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공동 작업으로 연대의 의미가 더 살아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정마을 주민들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 대단해
얼마나 살기 좋은 마을이었는지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


월간 <개똥이네 놀이터> ⓒ보리
이렇게 한 명의 글쟁이와 네 명의 그림쟁이가 의기투합해서 만든 동화의 원고료는 강정마을 연대활동에 쓰인다. 작년 7월부터 거의 매달 강정마을에 다녀오는데, 경비를 아껴 쓰고 남은 돈은 꼬박꼬박 모았다가 촛불문화제 때 마을회에 전달한다. 강정앓이가 된 이들에게 강정마을과 구럼비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큰 기쁨이다.

“강정은 땅이 좋고 물이 좋아서 아주 가난한 사람도, 아주 부자도 없는 동네였대요. 누구나 노동한 만큼 먹고 살았던 곳이죠. 강정마을 주민들은 마을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이 대단해요. 이것이 바로 오랜 싸움을 이끌어온 힘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강정마을이 그 자체로도 얼마나 살기 좋은 마을이었는지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었어요.”

<너영나영 구럼비에서 놀자>에 등장하는 미리내와 은지, 보미, 용환, 은수, 우민이도 자신이 나고 자란 강정마을을 좋아한다. 미리내는 누우면 별이 총총 보이는 구럼비를, 보미는 강정천이 시작되는 냇길이소와 500년 된 나무가 서 있는 냇길이당을, 우민이는 물고기 잡고 멱도 감는 남방지소를, 은수는 모든 강정 아이들이 처음으로 수영을 배우는 통물을, 용환이는 은어가 올라오는 은냇가를 좋아한다.

그런데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오는 것을 두고 서로 생각이 다르다. 다른 생각은 아이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을 긋는다. 아이스크림을 살 때에도 찬성하는 아이들은 나들가게로, 반대하는 아이들은 코사마트로 간다. 구럼비를 그린 그림이 찢겨나간 사건을 두고 은수는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보미를 의심한다. 미리내와 은지는 해군기지 공사장 앞에서 신부님들을 따라 절을 하고 구럼비를 다시 보게 해달라는 ‘게똥말발은붉이꽁맹이뱅새비럼구’ 주문을 외운다.

“강정 아이들은 항상 긴장상태에 노출되어 있어요. 사이렌이 울리면 어른들이 뛰어 나가고, 마을에는 항상 경찰이 상주하고 있잖아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도 아이들 안에 상처가 남아 있을 거예요. 교실에서도 아이들은 찬성과 반대로 편이 나뉘고, 둘 중 작은 편에 속한 아이들은 소수가 되어 위축될 거고요.”

▲ 김중미 작가가 월간 <개똥이네 놀이터>에 연재하는 동화 <너영나영 구럼비에서 놀자> ⓒ보리

김중미 작가가 누구보다 아이들의 상처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가족이 바로 어린이와 청소년 또래의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김중미 작가는 1987년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인 인천 만석동에서 공부방 활동을 시작한 이후 지금까지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원풍모방 노동자들 만난 후 빈민운동가의 길로
천주교 세례 받으며 “예수처럼 살고 싶다” 다짐


김중미 작가는 이른바 ‘운동권’이 아니었다. 그의 첫 직장은 영등포 근처에 있던 대학병원 행정실이었다. 어느 날 병원 응급실로 부상을 당한 여성 노동자들 여럿이 실려 왔다. 원풍모방 노동자들이었다. 1982년 전두환 정권은 노동조합 활동을 탄압하기 위해 경찰과 회사 측 구사대를 동원해 원풍모방 노조 조합장을 감금한 채 사퇴를 강요하고, 이에 항의해 농성을 벌이던 노동자 600여명을 폭력적으로 진압하고 해고했다. 김중미 작가는 며칠 동안 큰 부상을 입은 채 들것에 실려 오거나 담요에 싸여 업혀오는 여성 노동자들을 마주하면서 왜 이런 일들이 뉴스나 신문에는 한 줄도 실리지 않는 것인지 바깥세상 일에 의문이 생겼다. 그러던 중 노동자들의 편에서 활동하고 있던 한 외국인 신부를 알게 됐다.

▲ 강정마을을 상징하는 조가비 장식을 머리에 쓰고 강정마을 연대행동에 참가한 김중미 작가 ⓒ한수진 기자
“천주교는 아직 썩지 않은 곳이구나, 저기에 가봐야겠다. 그래서 신부님을 찾아갔어요. 틀에 박힌 교리교육이 아닌 마태오 복음을 중심으로 교리를 가르쳐주셨는데, 지금 시대 예수는 누구인가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저에게 큰 공부가 됐어요.”

김중미 작가는 천주교 세례를 받으면서 “감히 예수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당시에는 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되기 전이라 병원에는 치료비를 내지 못하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김중미 작가는 도망간 환자들을 찾아 치료비를 받으러 구로, 봉천, 신림 빈민 지역 비좁은 골목을 다니면서 “나 혼자 잘 살 수 없다는 것을 명확히 깨달았다”고 했다.

김중미 작가는 다니던 병원을 그만 두고 천주교 도시빈민회 신입활동가 교육을 받았다. 5일 간의 지역조사를 거쳐 활동의 터전으로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빈민 지역인 만석동을 선택했다. 그는 “삶의 때가 묻어 있는 작은 골목이 마음에 들었다”고 처음 만석동에 찾아갔던 날을 회상했다. 가난에 찌든 삶이었지만 동네 사람들에게서는 노동하는 사람의 낙천적이고 순수한 힘이 느껴졌다. 만석동으로 이사 오던 날 새벽 제정구 선생은 “네가 이 지역에 산다는 것은 네가 빈민이 되고, 네 아이도 빈민이 되는 것이다. 그걸 두려워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운동가이기 이전에 그들의 삶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다짐은 여전히 김중미 작가의 삶을 지탱하고 있다.

처음 공부방을 열었을 때 동네 사람들은 ‘언제까지 할 거냐’고 물어왔다. 의욕을 갖고 와봤자 어차피 그만두고 동네를 떠날 거라는 의심이었다. 그러나 김중미 작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공부방을 떠나지 않고, 그런 공부방 이모와 삼촌들이 늘어나자 이제는 누구도 그런 질문을 꺼내지 않는다.

성공을 꿈꾸기 보다 혼자가 아님을 배우는 것이 중요
“함께 있으면 어떤 어려움이든 견딜 수 있어”


“지역운동을 하기 위한 기반으로 공부방을 열었던 선배 운동가들도 많았어요. 아이들이 공부방에 오면 부모들을 중심으로 어른들을 조직하기가 쉽거든요. 그런데 부모가 가난하면 아이도 가난해요. 어른들이 그렇듯이 아이들도 똑같이 가난 때문에 힘들어하고요. 이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면 노동자가 되고 빈민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한테는 이 아이들이 더 중요해요.”

김중미 작가는 공부방에서 만나는 아이들에게 열심히 해서 성공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도 그건 애초에 불가능하다. 그는 대기업에 들어가고 좋은 아파트에 사는 것을 성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혼자가 아님을 배우고 확인하는 것이다.

“나 혼자는 뭣도 아니지만, 함께 있으면 힘이 생긴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남을 누르는 것이 힘이 아니라 함께 할 수 있는 것이 힘이라는 것을요. 함께 있으면 가난이든 어떤 어려움이든 견딜 수 있어요.”

김중미 작가가 공부방 아이들을 데리고 평택 대추리나 용산 남일당, 제주 강정마을에 가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김중미 작가는 “공부방 아이들이 그들의 편이 되어주고, 그들은 아이들이 편이 되어주는 것이 희망”이라며 활짝 웃었다. 서로의 편이 되어줄 수 있기에 김중미 작가와 아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당당하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