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여름 지금여기가 추천하는 책-문양효숙]

7월이다. 어떤 이는 바삐 달려온 자신의 삶을 재충전하기 위한 모종의 계획을 세울 테지만, 그것도 모든 이들에게 허락된 여유는 아닐 것이다. 하긴 어딜 가도 사람으로 북적대고 대한민국 모든 산과 바다가 지쳐 있는 성수기에 휴가란, 재충전의 의미라기보다 '나 휴가 다녀왔다'는 자기 위로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여기, 나름 괜찮은 휴가 매뉴얼을 제안한다.

일단 혼자여야 한다. 친구도, 가족도 없이 오롯이 혼자. 그런 다음 자신이 편안하고 안락하게 느낄 수 있는 공간을 찾는다. 혼자 있을 수 있다면 집도 나쁘지 않지만, 이왕이면 아담하고 조용한 동네 카페가 좋겠다. 커피를 좋아한다면 금상첨화. 자고로 커피는 인생을 풍요롭게 해주는 동반자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공간을 찾았는가?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하나. 읽고 싶은 책을 들고 카페에 앉아 독서 삼매경에 빠져 보는 것이다. 최소의 에너지로 누리는 최대의 재충전이 되어 줄 것이니 나쁘지 않은 휴가다.

그 재충전의 시간에 동반자가 돼 줄 만한 책을 몇 권 소개한다. 사람들이 가진 고유의 취향을 꽤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는 작가 편력이 심한 편이다. 영혼의 한 조각이 닮았으리라고 생각되는 작가를 만나면 그의 궤적들이 궁금해서 과거의 작품을 살피고,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음 작품을 기다린다. 물론 작가들과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그것은 읽는 주체인 내가 변하거나 읽히는 대상인 작가가 변하거나 해서다. 연애와 비슷한 면이 있다.

여기 소개하는 책들은 나름 그런 '취향'의 산물이다. 때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시각으로, 때로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곳을 보여주는 통찰로, 때로는 간지러운 곳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 명쾌함으로, 책은 일상을 환기시키고 깊은 숨을 쉬게 해 줄 것이다.

 

<두근두근 내 인생>, 김애란, 창비, 2011 (소설)

젊은 소설가 김애란은 좋은 이야기꾼이다. 조용하고도 찬찬히 동시대인의 삶을 들여다볼 줄 알고 따뜻한 시선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을 문장에 담아낸다. <두근두근 내 인생>은 <달려라 아비>(창비, 2005), <침이 고인다>(문학과지성사, 2007) 등 주로 단편집을 내왔던 그의 첫 번째 장편소설로 조로증에 걸려 80대 노인의 몸을 가진 열일곱 살 아름이의 시선으로 바라본 세상에 관한 이야기다.

아름이는 이웃집 예순 살 할아버지가 유일한 친구이고 인생의 많은 날을 병원에서 보내야 했지만, 무척 성숙하고 사랑스러운 캐릭터다. 세상을 비관하지도, 원망하지도 않고 오히려 34세의 젊은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싶어 한다. 아름이는 그 이유를 "마음보다 몸이 빨리 자라서 그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마음을 빨리빨리 키워놓아야 했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책의 프롤로그 중 일부다.

아버지가 묻는다. 다시 태어난다면 무엇이 되고 싶으냐고.
나는 큰 소리로 답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버지가 묻는다. 더 나은 것이 많은데, 왜 당신이냐고.
나는 수줍어 조그맣게 말한다.
아버지, 나는 아버지로 태어나, 다시 나를 낳은 뒤 아버지의 마음을 알고 싶어요.
아버지가 운다.
이것은 가장 어린 부모와 가장 늙은 자식의 이야기다.

극작을 전공한 김애란의 소설은 대화의 비중이 높고, 마치 옆에서 등장인물이 말하는 듯 리듬감이 살아 있다. 그의 작품 속 대화는 가히 '아름답다'고 표현하고 싶다. 병실에서 죽음을 향해 가는 아름이와 아버지가 나누는 나지막한 대화의 일부분이다.

"네가 뭘 해야 좋을지 나도 모르지만, 네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좀 알지."
"그게 뭔데요?"
"미안해하지 않는 거야."
"왜요?"
"사람이 누군가를 위해 슬퍼할 수 있다는 건……."
"네."
"흔치 않은 일이니까……."
"……."
"네가 나의 슬픔이라 기쁘다, 나는. …… 그러니까 너는……."
"네, 아빠."
"자라서 꼭 누군가의 슬픔이 되렴."

설렘과 위태로움을 동시에 나타내는 단어인 '두근두근'을 통해 사랑과 삶의 신비를 이야기하는 <두근두근 내 인생>을 추천한다. 7월 20일 출간되는 새 단편집 <비행운>(문학과지성사)도 함께.

 

<행복하기란 얼마나 쉬운가>, 앤소니 드 멜로, 이현주 옮김, 샨티, 2012 (에세이)

세상에 태어나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그러나 매 순간 자신이 진정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원하는 사람은 많지만 누리는 이는 적은, 시공간을 초월해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의 바람이었던 '행복'을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동서양의 영적 전통과 고금의 지혜를 두루 꿰고 있는 영성가 앤소니 드 멜로 신부는 행복이 우리의 '선택'에 달려있다고 말한다.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많이 즐기느냐에 있다. 상실을 겁내지 않을 때 비로소 인생을 즐길 수 있다. 하지만 지금보다 더 행복하거나 남들보다 더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불행해질 수 밖에 없다. 행복이란 비교될 수 없으며 그런 욕망은 아무리 채워도 만족할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 편에서)

그는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불행해지기로 작정한 사람'처럼 살아왔다며, 행복을 선택하기로 결정했다면 약간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연습의 내용은 '열여덟 가지 연습'이라는 제목으로 책의 말미에 소개되어 있다. 이현주 목사의 번역으로 나온 이 책은 환상, 침묵, 평화, 사랑, 기도, 행복 등의 주제로 삶에서 예기치 못한 어떤 것이 오든지 그것과 자기를 일치시키지 않는 자유인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어떻게 내가 나를 화나게 만들 힘을 다른 누구에게 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행복할 것인지 불행할 것인지를 결정할 힘을 어떻게 다른 누구에게 줄 수 있단 말인가? 내가 그런 힘을 누군가에게 주었다면, 그 결과로 생기는 일을 나 말고 누구 탓으로 돌릴 것인가? 자연에는 보상도 형벌도 없다. 오직 결과들이 있을 따름. 당신이 성숙해져서 그것들을 대면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전부다." ('기도' 편에서)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토마스 프랭크, 김병순 옮김, 갈라파고스, 2012 (에세이)

이 책은 작가 취향이라기보다 주제 취향의 산물이다. 저자는 '대체 왜 가난한 사람, 사회적 약자들이 부자 증세를 반대하고 기업의 이익을 늘이는 보수정당에게 투표하는 것일까?' 하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캔자스 지방 정치가와 풀뿌리 운동가들을 하나하나 만나 인터뷰했다.

저자는 공화당이 기독교 우파를 중심으로 낙태 반대, 진화론 교육 반대, 동성대 반대 등 이데올로기 싸움을 벌여나가며 갈 길 잃은 민중의 분노를 문화 영역으로 돌리는데 성공했고, 이는 경제 · 정치적인 문제를 윤리적 문제로 치환하는 것이었다고 분석한다. 이런 '문화 전쟁'이 민주당의 대선 전략 실패와 맞물리면서 공화당을 노동자, 농민을 위한 정당으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대선을 앞두고 미국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의 정치 현실를 돌아보게 하는 책이다. 왜 진보 세력이 매번 선거에서 패배하는지를 언어학적 프레임에서 조명했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조지 레이코프, 삼인, 2006)를 함께 추천한다.

 

<교양 노트: 유쾌한 지식여행자의 80가지 생각 코드>, 요네하라 마리, 김석중 옮김, 마음산책, 2010 (에세이)

지식 나열형 책을 좋아하지 않는 당신이라 해도 한 번쯤 권하고 싶은 요네하라 마리의 상식서. 어려서 부모님을 따라 프라하에서 살았던 요네하라 마리는 러시아어 동시통역가이자 작가로, 경쾌한 문체와 특유의 재기 발랄함으로 다양한 상식과 정의에 반문을 제기한다. 교훈에 대한 반전이다. 웃으며 배우는 교양 노트의 몇 구절을 소개한다.

"낮별은 밤별보다도 밝고 아름다운데, 태양의 빛에 가려져 영원히 하늘에서 그 모습을 확인할 수 없다." 러시아 시인 올가 베르골츠가 쓴 <낮별>의 한 구절이다. 현실에 존재하는데도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반대로, 압도적 현실로 인식되던 것이 그저 껍데기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 중에서)

"'나에게는 재능이 있는데 바보 같은 주위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는다'라고 늘 푸념만 하는 사람이 있다. 탤런트의 어원에 의하면 재능은 묻힐 리가 없다. 그 재능을 꽃피우는 힘도 재능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재능의 범위' 중에서)

"글을 쓸 때도 주제가 어느 정도 정해지고서야 비로소 주위를 관찰할 때도 그 주제의 시점으로 바라보게 된다. 지금까지 몰랐던 사물의 새로운 측면을 깨닫기도 한다. 자신의 틀이 넓어지는 것이다. …… 부자유한 편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자유로워야 하는데 결국 구별되지 않는 옷을 입고, 같은 말투를 쓰고 비슷한 방송 프로그램을 보고 비슷한 것을 먹는 젊은이들을 보고 있자면 특히 그런 생각이 든다. ('자유라는 이름의 부자유' 중에서)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김선우, 창비, 2012 (시집)

궁금했다. 두리반, 촛불, 희망버스, 강정마을 등 아픔이 있는 현장에 적극 동참하고 '연대'를 온몸으로 보여준 그의 시어가. 2011년에 했던 일 중 가장 잘한 일을 '희망버스를 타고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러 간 것'이라고 말하는 그가 세상에 내놓은 시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는 예상한 대로 꿈틀대는 에너지로 가득했다. 그는 "온몸으로 반응을 한 다음에야 시가 토해져 나온다"고 했다.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 영도에서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면서 쓴 그의 표제작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의 일부분이다. 이 시의 부제는 '2011년을 기억함'이다.

온몸에 얼음이 박힌 채 살아온 한 여자의 일생에 대해
빈 그릇에 담기는 어혈의 투명한 슬픔에 대해
세상을 유지하는 노동하는 몸과 탐욕한 자본의 폭력에 대해
마음의 오목하게 들어간 망명지에 대해 골몰하는 시간이다
사랑을 잃지 않겠습니다 그 길밖에
인생이란 것의 품위를 지켜갈 다른 방도가 없음을 압니다
가냘프지만 함께 우는 손들
자신의 이익과 상관없는 일을 위해 눈물 흘리는
그 손들이 서로의 체온을 엮어 짠 그물을 검은 하늘로 던져 올릴 때
하나씩의 그물코,
기약 없는 사랑에 의지해 띄워졌던 종이배들이
지상이라는 포구로 돌아온다 생생히 울리는 뱃고동
그 순간에 나는 고대의 악기처럼 고개를 끄덕인다
태어난 모든 것은 실은 죽어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말한다
살아가고 있다!
이 눈부신 착란의 찬란,
이토록 혁명적인 낙관에 대하여
사랑합니다 그 길밖에
(<나의 무한한 혁명에게> 중에서)

"살아있는 모든 존재는 근본적으로 혁명적"이라며 일상이 권태와 무기력에 잠식되지 않도록 내가 행복해지는 일을 만들어내고 친구들하고 즐기는 일, 그것이 혁명이고 연대였다고 말하는 시인의 뜨거운 시어들을 만나보자. 온몸으로 반응한 뒤 뱉어낸 충만한 사랑과 우정의 시어들 사이를 거니는 동안 지쳐 있던 영혼에 새 힘이 켜켜이 쌓일 것이다.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고미숙, 그린비, 2011 (에세이)

저자 고미숙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그린비, 2003), <나비와 전사> (휴머니스트, 2004),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그린비, 2007),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사계절, 2009) 등을 통해 한국의 근대성을 생기 있게 현재와 소통시켜 왔으며, 2011년까지 지식공동체 '수유+너머'에서 동학들과 함께 공부해 온 학자다.

인문학자인 그가 써내려간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는 '인문학과 의학', '몸과 삶과 생각'이 모두 하나라고 말한다. 자기 병에 스스로가 무지한 상태에서 벗어나, 결국 병과 삶이 하나라는 것을 깨닫고 몸과 우주가 연결되어 있다는 앎으로 나아가, 자기 삶의 구원자이자 치유자는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건강이란 병이 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병을 생(生)의 선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한의학이냐 서양의학이냐 혹은 대체의학이냐 이런 문제는 사실 부차적이다. 이미 우리는 이 모든 것들이 함께 뒤섞여 있는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 이전에 '앎의 의지'를 작동시키는 것이 더 우선이다. <동의보감>이 오늘, 우리에게 제시하는 최고의 비전은 바로 여기에 있다. 허준은 말한다. 이 책을 통해 스스로 자기 병을 알아 스스로 치유해 가라고, 또 양생술을 통해 요절할 자는 장수하고 장수할 자는 신선이 되라고. <동의보감>뿐이 아니다. 조선 한의학을 대표하는 또 하나의 저서, <동의수세보원>의 저자 이제마 역시 그렇게 말한다. "널리 의학을 밝혀 집집마다 의학을 알고 사람마다 병을 알게 된 연후라야 가히 장수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까 허준과 이제마, 두 거인이 꿈꾸었던 최고의 이상은 모든 사람이 '앎의 주체'가 되는 것이었다." ('에필로그: 글쓰기와 호모 큐라스' 중에서)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 여자 혼자 떠나는 걷기 여행 3 : 중국 라오스 미얀마 편>, 김남희, 미래M&B, 2006 (에세이)

마지막으로 대리 만족을 위해 추천한다. 당장이라도 비행기 티켓을 끊어 어디라도 떠나고 싶을 때, 그러나 항상 그렇듯 일상이 발목을 잡고 놔주지 않을 때, 다녀온 사람의 이야기라도 들어서 그 욕구를 충족시키고자 할 때 김남희의 여행기가 적격이다. 어떤 이들은 물 흐르는 듯 너무 밋밋하다 말하기도 하지만, 김남희의 여행기는 홀로 걷는 여행을 삶으로 받아들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움을 담고 있다. 무엇보다 "'소심하고 겁 많고 까탈스러운'이라니! 이것은 내가 아닌가!" 하고 느끼는 많은 이들은 소심한 여자 김남희의 사람을 향한 따뜻한 눈길에, 사라져가는 것들을 향한 연민에 위로받을 것이다.

'달이 걸린 곳'이라는 뜻의 라오스 수도 비엔티안에 대한 소개다.

"한 나라의 수도가 이렇게 소박할 수도 있다니 놀랍다. 고층건물 없고, 차량도 많지 않고, 가게도 없고 분수대 주변의 몇 개의 식당이 시대 중심부의 전부다. 신용카드도 없고 삐그덕리는 선풍기 아래에서 수기로 돈 계산하는 곳이 은행이다. 지구상에 이렇게 한 나라쯤은 성장과 소비의 문화에서 자유로운 모습으로 남아 있어도 좋지 않을까."

김남희는 국내를 시작으로 유럽, 산티아고, 네팔, 일본 등 많은 여행 책을 냈지만, 특별히 중국 라오스 편을 권하는 것은 라오스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 탓이다. 홀로 떠난 여행길에서 특별한 치유를 받는 공간들이 분명히 있다. 나에게는 제주도와 동남아시아의 깊은 산길들이 그런 곳이다. 이런 여행기를 읽는 것은 그저 대리 만족만을 위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는 나도 가야지'라는 열정의 불씨를 유지시켜주기 위한 장치다. 언젠가는 가방을 싸고 떠나야 한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