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수 신부의 사제로 살며 생각하며]

지난 4월 27일 주일날 미리내 성지에서 마라톤 대회가 있었다. 많은 본당 마라톤 동호회원들과 신자들이 참가하여 성황을 이뤘다. 나도 본당 동호회원들과 함께 참가하여 10km를 뛰었다. 내가 달리기를 좋아하게 된 것은 7년 전 금연을 하면서 부터였다. 지금도 주 2 -3회 정도 늘 건강 달리기를 하곤 한다. 난 지독한 골초였다. 하루에 거의 3갑 가까이 피우던 골초였다. 그러니 당연이 금연이 힘들었다. 얼마나 금단 현상이 심했었는지 정신이 혼미하여 거의 실성한 사람처럼 보였다고 했다. 그럼에도 금연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나에게 한 약속을 지켜갔기 때문이다. 그 약속은 바로 담배 생각이 날 때마다 물 한 컵을 마시기였다.

금연을 하니 몸이 점점 불어가는 느낌이었고, 실제로 체중이4-5kg 늘어갔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달리기였다. 이렇게 물마시기와 달리기가 합쳐져 취미가 되었고 몸의 건강도 지키게 되었다. 지금은 많이 줄였지만, 2시간 정도 편하게 달리기가 제일 좋다. 차 없는 넓은 대로를 마음껏 달리는 기분은 대회에서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여러 번 대회에도 참가해봤고, 안식년 때는 춘천에서 풀코스 완주도 했었다.

이번 미리내 대회를 앞두고 난 보좌 신부와 내기 약속을 했다. 지난 11월 달이니 대회 6개월 전 일이다. ‘우리 같이 뛰어보자! 지금부터 연습하면 충분히 가능하니 할 수 있겠니? 만일 네가 하프코스 완주하면 네가 제일 좋아하는 비싼 요리를 사주마. 대신 완주 실패하면 네 차 팔아 내 헌차 바꿔주기다?’ 술잔을 들고 한참을 고민하던 보좌신부는 좋다고 흔쾌히 약속을 했다. 불평등한 조건을 내기로 건 것은 꼭 지키라는 뜻이었다.

내가 이런 내기를 건 것은 보좌신부에게 운동을 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이제는 부임해오는 보좌 신부들이 모두 아들 벌이다. 왜냐하면 아버지 연세를 물어보면 거의 나와 같거나 적으니 나이 차이로 봐서 그렇다. 함께 사는 보좌신부는 몸이 좀 비대하다. 부임하여 3- 4 개월 함께 살아보지만 운동하는 것을 거의 못 봤다. 그래서 더욱 그런 내기 약속을 한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운동하는 기미가 안 보인다. 일할 때 말고는 거의 ‘방콕’이 많다. 쉬는 월요일에도 나가는 날보다 안 나가는 날이 더 많아 보인다. 어떻게 할 건가 지켜만 보고 있었다.

2달이 다 지나가는데도 보좌신부는 운동을 시작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하루는 약속을 상기시키며 날이 좋으니 함께 운동하러 가자고 하여 같이 하게 되었다. 부제와 내가 한 시간 10km를 뛰는 동안 보좌는 5km도 채 못 걷는다. 저래가지고 21km 하프를 어떻게 뛰게 될 런지! 그날 후로 자극을 받았는지 운동을 시작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몇 날 못 가 그만두고 만다. 또 두 달이 흘렀다. 남은 기간은 두 달. 그때 보좌신부는 내게 새로운 제안을 해왔다. 10km로 바꾸면 안 되겠냐고. ‘좋다, 단 조건이 있다. 10km 경우 한 시간 안에 완주하기다.’ 그렇게 약속을 바꿨고 내기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런데 대회 한 달 앞두고 약간은 걱정하는 표정이더니 급기야 대회참가를 포기하는 선언을 하고야 말았다. 그렇게 약속은 깨졌고 내기도 무산 됐다.

내가 너무 무리한 제안을 했나? 운동하는 습관을 갖게 해 보려고 했던 내 뜻이 나만의 욕심이었나 보다. 하기야 나도 젊었을 때 건강은 으레 무상으로 주어지는 것이고 아무리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 같은 것으로 생각했었으니까. 그래서 건강을 위해 운동이 필요하다고 느끼지 못했었으니까. 아마 보좌 신부가 약속을 하고도, 내기를 걸고도 포기한 것은 그런 마음에서였을 거라 짐작해 본다.

송병수(시몬)/수원교구 평택 비전동 성당 주임신부
                    2008-05-08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