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수 신부의 사제로 살며 생각하며 ]

벌써 6개월이 넘었다. 누군가가 성모상 발 앞에 500원짜리 동전 두 개를 봉헌하고 간다. 일주일에 서너 번 그것도 꼭 동전으로만.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누가 동전을 여기다 봉헌했군, 하고 거두어 자선함에 넣었다. 그런데 보니까 한 두 번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누군가가 봉헌하고 있는 것이었다. 난 지금 그것을 모아 놓고 있다. 다른 이는 아무도 모른다. 오직 그와 나만 아는 일이다. 누가 왜 봉헌하는지 속으로는 궁금하지만 알기 위해 난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저 지켜보며 봉헌 된 동전을 거두고 있다. 아마 동전으로 봉헌하는 것은 바람에 날리지 말라는 뜻으로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우리 성당 성모상은 성당 출입구 바로 옆에 모셔져 있어 신자들이 성당을 들고 날 때나, 지나갈 때 수시로 잠시 들러 인사하고 지나간다. 출근 할 때, 퇴근 할 때, 아이들이 하교할 때, 어른 어린이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들르곤 한다. 그러니 여러 사람이 그러는지 한 사람이 그러는지, 언제 누가 그러는지 알 수가 없다. 알려고 지켜보지도 않지만 볼 수도 없다.

난 혼자 상상해 본다. 누군가가 무슨 간절한 소망을 성모님께 비나보다.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것으로 보아 아주 어렵고 중대한 곤경을 맞았나 보다. 그러다가 어떤 때는 일주일 씩 끊어지는 때도 있다. 그러면 아, 기도를 마쳤나보다 생각한다. 그런데 그 다음 날 다시 놓여 있곤 한다. 날씨와도 상관이 없다. 눈비 오는 날도 언제 왔다 갔는지 동전이 놓여 있다. 언제까지 그럴 건지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계속되고 있다. 은연중에 익명의 그 사람이 자꾸 떠오른다. 기도 중에 자꾸 그 사람이 생각난다. 지극한 정성이고 간절한 비나리다. 그를 위해 기도한다. ‘그의 간절한 소망이 성모님께 받아들여 지기를!’

성모성월을 맞아 그동안 모아온 동전을 헌화회 자매님들께 넘겨주며 사연을 이야기 하고 성모상 앞에 놓을 예쁜 꽃 화분 하나를 장만하라고 했다. 그렇게 한 것은 그 동전이 그냥 동전이 아니고 그 동안 성모님께 바쳐진 한 송이 꽃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해서 금년 성모성월엔 예쁜 화분 하나가 성모님 발아래 놓이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그는 우리 모두를 위해 화려하지 않으면서 소박하고 상큼한 꽃을 성모님께 바친 셈이다. ‘맑은 하늘 5월은 성모님의 달’ 성모님, 당신 발 앞에 서서 기도하는 모든 이의 소리를 들으시고 어둠과 괴로움을 거두어 맑은 5월의 하늘처럼 되게 해 주소서.

성당의 성모상은 그 성당 신자들의 애환이 서린 거룩한 성상이다. 오래되면 될수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성상이 된다. 그래서 함부로 바꿔서는 안 된다. 비록 초라하고 예술성이 없더라도 신자들의 신심 속에 살아 있는 성상은 그 어떤 값으로도 비교평가 될 수 없다. 잘 보존되어야 한다. 그런데 간혹 그렇지 못한 경우를 본다. 전임이 해 놓은 것을 다 뭉개고 새로 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가자마자 성당을 뒤집어 놓는 사람이 있다. 꼭 요즈음 10년 만에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하는 짓처럼 다 바꾸려 든다. 어떤 젊은 신부는 가자마자 성모동산을 새로 만든다고 요란을 떠는데, 결국 있던 성모상을 치우고 새로 만들어 놓는다. 하지만 그동안 정들었던 신자들은 말은 못하고 속으로만 서운해 하는데도,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신부 되어 얼마 안 되었을 때 몇 년 만에 어쩌다 고향 성당에 가면 편안함을 느꼈었다. 그런데 성당을 새로 짓고 난 후 갔을 때는 모든 게 너무도 바뀌어 있어서 낯설었다. 옛날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만큼 모든 게 다 바뀌어 있었다. 요즈음 어쩌다 가 봐도 여전히 낯설어 옛 모습이 생각나서 아쉬워한다. 특히 마음의 피난처요 휴식처가 되었던 그 온화하고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커다란 성모상이 없어진 것은 더욱 아쉽다. 성당은 새로 지어도 성물들은 그대로 쓰면 안 되나! 생각해 볼 일이다.

송병수(시몬) /수원교구 평택 비전동 성당 주임신부
                      200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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