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수 신부의 사제로 살며 생각하며]

간절한 소망이야 있지만 희망이 안 보이던 지난 대선 때처럼 이번 국회의원 선거 역시 나의 희망과는 관계없이 결말지어지리라 예견하며 투표장엘 갔다 왔다. 선거할 때면 떠오른다. 1970년대 초 군에서 했던 선거의 첫 경험. 대통령 선거에서 나는 내가 찍고 싶은 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남의 손에 이끌려 기표해야 했던 투표를! 그리고 그 후의 독재를.

투표 후에 신자들 몇몇과 같이 가까운 산에 갔다 온 후 이 글을 쓴다. 같이 갔던 사람들 역시 이번 선거에 대한 느낌이 비슷하다. 하긴 했지만 한나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차지할 거고, 그리되면 그 힘으로 법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대운하 공약이나 의료보험 민영화 같은 공약들이 시행 될 것이라는 거다. 생각하니 점점 암담해 온다. 자신에게 해가 될 그런 공약들이 내 걸렸는데도 그런 선택을 한다?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차라리 남의 손에 이끌려 기표한 선거라면 책임이라도 없는데, 이건 뭔가?

어떤 사람은 말한다. 설마 그런 공약들을 시행하려면 큰 저항에 부딪힐 텐데, 시행할 수 있겠느냐고. 그러나 저들이 누군가? 상식이 통하던 사람들인가? 온갖 술수와 위장으로 속을 감추고 은밀히 자신들의 목표를 이루는 정치9단들이 아니던가! 없는 법도 만들어 독재를 영구화할 수 있었던 사람들의 후예가 아닌가! 이래저래 별의별 상상을 다 해 본다. 부당한 저 공약들 시행을 막으려면 옛날처럼 몸으로 저지해야 하는 건가? 허리 띠 단단히 동여매고 두 손에 힘을 불러 모아야만 하는 건가? 아! 제발 그런 일은 다시없기를 바라는데, 어떻게 될 런지!

어떤 신자가 나보고 이런 말을 했다. “신부님은 정치적인 사안에 관심이 많으신가 봐요! 전에 계시던 신부님들은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별로 안 하셨는데, 신부님은 많이 하시니까요.” 그래서 그 신자에게 되물었다. “그런 게 싫으세요?” 그러자 그분 대답이 재미있다. “우리를 위해 하시는 말씀이니 우리야 괜찮은데, 혹시 반대하는 사람이 신부님을 모함할까봐 걱정이 돼서요.” 하지만 나는 그런 모함을 당할 만큼 강하지도 못하고 말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다. 그런데도 날 걱정하는 신자가 있으니 그만큼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민감한 모양이다. 그런데 정말 앞으로 옛날로 돌아간다면 저 신자가 걱정할 사안들을 더 많이 말할지도 모르는데, 그때는 어떻게 하지? 이래저래 세상이 황사 낀 하늘처럼 답답하게만 보인다.

친구 호신부와 나는 똑같이 운동을 좋아한다. 그가 좋아하는 운동은 movement의 운동이고 내가 좋아하는 운동은 sports의 운동이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운동은 덜 좋아하고 난 그가 하는 운동을 잘 못한다. 그래도 우리는 자주 만나 같이 하는 운동이 있다. 목운동이다. 입산할 때와 정상에서 그리고 하산해서 꼭 그 운동을 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덧 거나해져 이런 저런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눈다. 오늘 같은 날 목운동하기 딱 좋은 날인데! 지금쯤 스페인에서 한참 땀 흘리며 열심히 걷고 있겠지! 단단히 체력단련하고 오너라. 네가 돌아와 만날 울 나라는 너의 운동을 더 필요로 할 것 같다.

호신부가 첫 번째 시화전을 열 때였다. 근 30년 전 일이다. 그때에 이미 그의 시 속에는 저항의 냄새가 났다. 그런 그에게 난 놀리느라고 아주 독한 혹평을 했다. ‘읽을거리보다 볼거리가 더 많다.’고! 물론 그도 내가 놀리는 줄 알고 깔깔 웃었다. 지금 다시 시화전을 연다면 이젠 좋은 평을 해야지! ‘30년 동안 많이 변했네. 볼거리보다 읽을거리가 많아졌네!’라고. 그런데 그는 이미 그걸 열었다. 그가 시작한 우리 신학 연구소가 바로 그것이다. 살아 움직이는 연구소가 바로 볼거리요 거기서 나오는 많은 글들이 읽을거리다. 30년 전 시화전보다 더 큰 시화전을 그는 이미 하고 있다. 볼거리와 읽을거리 둘 다를 만족시키는 일회성이 아닌 지속적인 시화전이다. 잘 되기를 빈다. 친구가 하는 일에 하느님의 축복이 있기를! 하느님! 호신부는 후원회원도 모집할 줄도 모른답니다. 하느님이 도와주세요.

송병수(시몬) /수원교구 평택 비전동 성당 주임신부
                     2008-04-16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