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명희의 행복선언]

"어서 오세요!" "아줌마! 여기!" 저녁 손님이 드는 시간, 24시간 문을 여는 감자탕집이다. 우람이 엄마를 찾으니 주인 아저씨가 주방 쪽을 가리킨다. 주방 안 개수대 앞에 낯익은 모습이 보인다. 우람이 엄마다. 물컵, 맥주컵, 가위, 국자, 집게 등이 산더미처럼 쌓인 개수대 앞에서 설거지 중이다. 바닥에는 까맣게 타버린 불판과 감자탕 냄비 수십 개가 큰 고무 대야에 담겨 있다.

“우람이 어머니! 고무장갑도 안 끼고 하세요?” 빛의 속도로 설거지를 하는 우람이 엄마를 불렀다. “만날 하는 건데요, 뭐.” 손을 만져보니 수세미 같다. 손등에는 주름이 가득하다. 삼십대 중반인데 노인의 손 같다. 손바닥도 손등처럼 거칠다. 주름이 너무 많아 손금을 구별하기 어렵다. 사람 손이 이렇게 촘촘히 거칠 수 있나 싶다.

“우람이 때문에 의논 좀 하려고 왔어요.” 그러나 홀에서 “아줌마!” 하고 호출하자 마자 용수철처럼 튕겨 나간다. 나도 홀로 따라 나와 구석에 앉아 우람이 엄마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시급 사천육백 원을 받고 감자탕집에서 일하는 우람이 엄마는 오전 9시에 출근하고 밤 10시가 되서야 집으로 돌아온다. 우람이가 엄마 얼굴을 보는 시간은 아침에 잠깐이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보호자 없이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초등학교 2학년 우람이에게는 공부방이 집이나 다름없다. 그 사정을 잘 아는 공부방 선생님은 우람이의 저녁밥을 꼭 챙겨 먹여서 집으로 보낸다.

우람이가 두 살 때 부모님이 헤어졌다. 그 후로 아버지의 소식은 끊겼다. 다섯 살 때까지 우람이는 시골 외할머니 집에서 살았다. 우람이 엄마는 짧은 학력에 이렇다 할 기술이 없어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일이 힘들기로 악명 높은 지하철역 부근 감자탕집에 취직했다.

며칠 전 우람이 담임 선생님이 공부방으로 전화를 했다. 우람이의 머릿니 때문이다. 우람이 머리에서 스물스물 기어나오는 머릿니에 아이들이 놀라서 교실이 발칵 뒤집어졌다. 사실 우람이의 머릿니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겨울 방학에도 우람이가 옮긴 머릿니 때문에 공부방 아이들이 단체로 머릿니 박멸 작업을 벌여야 했다. 담임 선생님은 머릿니를 없앨 때까지 우람이를 학교에 보내지 말았으면 했다. 아무래도 우람이 엄마와 상의를 해야 될 것 같아서 나는 감자탕집을 찾아갔다.

150평의 감자탕집 홀에서 혼자 서빙하는 우람이 엄마는 ‘달인’처럼 일했다. 요즈음 경기가 좋지 않아 직원 수를 줄였기 때문에 일이 더 고되다고 한다. 그래도 우람이 엄마는 잘릴까봐 조마조마한다. 뜨거운 물건을 마구 잡는 신공에서부터 공깃밥과 펄펄 끓는 누룽지 그릇을 한 손에 태연히 잡고 나른다. 뜨겁고 무거운 감자탕 대짜를 들고, 몸은 어느 순간부터 자동으로 움직인다.

손님이 오면 문쪽을 보고 인사를 한 뒤 물수건과 컵을 사람 수대로 챙겨 테이블로 안내한다. 주문을 받고 카운터에 와서 메뉴와 숫자를 알려준다. ‘딩동’ 하고 테이블 벨이 울리면 “네, 손님!” 하고 외친 뒤 해당 테이블로 달려간다. 주방에서 “음식 나가요!” 소리가 들리면 상을 치우다가도 달려가 음식을 서빙한다. “계산이오!” 소리가 들리면 또 카운터로 달려가야 한다. 모든 소리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뛰는 우람이 엄마는 자동 기계처럼 보였다. 저녁 7시, 몰려든 손님들의 주문으로 아수라장이다. 보다 못해 나도 일어서서 앞치마를 두르고 상 치우는 것을 도왔다. 드디어 전쟁은 끝나고 우람이 엄마는 화장실 청소로 일을 마무리했다.

감자탕집을 나오자 그제서야 허기졌다. 우리는 편의점에 들러 빵과 우유로 저녁을 떼우면서 마주보고 앉았다. 그러나 3개월째 하루도 쉬는 날 없이, 관절이 붓고 팔다리가 후들거리게 일하는 우람이 엄마에게 우람이의 문제를 차마 이야기할 수 없었다. 머뭇거리는데 우람이 엄마가 부탁이 있다며 꼬깃꼬깃 접은 오만 원권 한 장을 내민다. 어제 운이 좋아서 손님이 준 팁이라고 한다. 유난스럽게 땀을 흘리는 체질이라 불 앞에서 감자탕을 데우다 보면 손님들이 “아줌마, 힘들죠?” 하며 지갑을 연다고 한다. 우람이가 아침에 통닭이 먹고 싶다고 졸랐다며 아이에게 통닭 좀 사주라고 한다.

감자탕집에 다녀온 후로 나는 식당에서 일하시는 분을 더 유심히 본다. ‘식당 아줌마’ 모두가 우람이 엄마로 보인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식당에서 음식을 먹은 뒤 정리하고 나오는 매뉴얼을 만들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1. 따로, 또 같이 그릇을 모아라(음식물 쓰레기, 숟가락, 젓가락, 물컵 각각 따로 모을 것).
2. 완전히 비운 그릇만 쌓아라.
3. 물수건을 깨끗이 쓰라.
3. 남김없이 먹어라(물은 마실만큼만 따르기).

이렇게 하면 우람이 엄마처럼 고달픈 ‘아줌마 달인’들의 수고를 좀 덜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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