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수 신부의 사제로 살며 생각하며]

 성소주일이면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다. 내가 보낸 신학생들과 수녀들이다. 그들은 성탄 때나 부활 때면 어김없이 본당신부인 내게 축하 엽서를 보낸다. 지난 성탄과 이번 부활에도 예쁜 엽서를 여러 장 받았다. 하나같이 우리 교회의 먼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이다.

지난 3월 초, 처음으로 신학교의 입학식엘 다 가보았다. 이유는 단 하나, 한 학생을 신학교에 입학시키면서 혹시나 이 녀석이 내가 보내는 마지막 신학생이 되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갈수록 성소자가 줄어들 테니까! 그런데 그 자리에서 뜻밖의 평소에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 여럿을 만났다. 모두 자녀들이 신학교에 입학한다는 것이었다. 어찌나 반갑던지! 축하의 인사를 나누고 기념 촬영도 하고 하나하나 악수로 격려해 주었다. 그날 돌아오는 길 내내 참 마음이 가벼웠다. 아마도 밝고 싱싱한 미래 교회를 짊어질 새싹들을 많이 본 탓이었을 게다. 그렇게 젊은 신학생들과 수도자들은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우리 본당에는 신학생이 두 명 있다. 금년에 입학한 일 학년짜리와 이제 곧 서품을 받을 부제다. 금년에 입학한 녀석은 지난해 함께 지리산 종주를 했던 녀석이다. 인내심도 키우고 의지력도 단련시킬 겸 계획한 산행이었다. 난생 처음 해보는 긴 산행에 무척 힘들었는지, 급기야는 불만스런 감정을 드러낸 녀석을 부제가 달래며 겨우 이끌고 세석 산장에 이르렀다.

다음 날 장터목에 이르러 이른 점심을 해 먹고 정상엘 갈 때다.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앞도 잘 분간하기 어려웠다. 나는 점심을 먹으며 녀석의 속을 떠보려고 전에 갔기도 했지만 안개로 전망도 볼 수 없으니 정상에 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녀석은 잘됐단다. 자기도 안 간단다. 식사를 마치고,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엘 안 가면 지리산 종주가 아니지!’ 그러면서 길을 나서는데도 녀석은 움직이려 들지 않았다. 그러면 산장에서 짐 지키며 쉬라하곤 우리는 정상으로 향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서 올라오는 녀석을 만났다. 아무리 생각해도 돌아가서 놀림 받을 것을 생각해선지 자존심 때문인지 뒤늦게나마 따라온 것이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어린애 같은 면을 보곤 얼마나 속으로 웃었는지! 그런 녀석이 언젠가는 어른스러워져 교회의 일꾼이 되겠지!

개학한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이들이 돌아왔다. 성주간을 본당에서 지내기 위해서다. 한 달 만에 돌아왔지만 그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 일 학년짜리도 제법 의젓해져 있었다. 난 부제에게 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그에게 맡겼다. 감기로 몸도 안 좋았지만 자신감을 키우는 기회로 생각하고 배려하기 위함이었다. 부활성야 전례는 길고 화려하지만 자칫 지루할 수 있다. 간결하면서도 맑은 음성이 우선되어야 전례가 사는 법이다. 부제는 음정의 흐트러짐 없이 맑은 소리로 부활찬송을 잘 노래했고, 간결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강론을 잘 해주었다. 덕분에 부활성야 전례를 아주 수월하게 지낼 수 있었다.

부활 대축일 다음 날 우리는 가까운 곳으로 소풍을 갔다. 부활의 기쁨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부제의 금연이 화제가 되었다. 부제는 방학 중에 맞은 재의 수요일 날 사순절 기간 동안 금연을 하겠다고 선언했었다. 과연 그 약속을 지키고 있었고 개학 후 성주간을 지내려 다시 왔을 때도 여전히 담배를 피우지 않고 있었다. 그러면 내친김에 아주 금연을 하라고 말했더니, 성토요일 부활성야 미사 후 피우는 첫 담배 맛을 꼭 보고 결정하겠단다. 그러더니 정말 성야 미사 후 담배 한 대를 피웠다고 했다. 오랫동안 참았다 피운 담배이니 그 맛이 얼마나 꿀맛이랴! 그렇게 생각하고 소감을 묻는 나에게 그는 이런 말을 했다. “신부님, 황홀한 천상의 맛이리라 기대하며 피웠는데요, 얼마나 쓰고 텁텁하고 냄새가 역한지 실망스러웠어요.” 그는 지금 금연을 이어가고 있을까? 내가 보내고 아는 신학생 모두가 훌륭한 사제가 되기를 바라며 기도해 본다.

송병수/수원교구 평택 비전동 성당 주임신부
            2008-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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