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수 신부의 사제로 살며 생각하며]

친구 호신부가 먼 순례 길을 떠나면서 나에게 이 난의 글을 부탁했다. 편안이 잘 갔다 오라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했는데, 막상 글을 쓰려하니 막막하기만 하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용기를 내어 한 토막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내가 사는 곳은 평택이다. 넓은 들과 야트막한 언덕들이 주로 펼쳐진 곳이다. 전국에서 유일하게 산이 없는 곳이란다. 어쩌다 늦게 귀가하다 마주치는 저녁 일몰은 참으로 장관이다. 땅은 비옥하여 논농사와 밭농사 모두 잘 되는 곳이다. 야산에는 특히 배나무 과수원이 많다. 그래서 배는 이곳 특산품 중에 하나다. 하지만 농사는 이미 사양길에 접어든지 오래여서, 갈수록 농사는 피폐해져만 간다. 힘들게 일한 보람을 가슴에 안기보다 헛수고한 아픔이 더 크게 밀려온다. 그 현실을 배나무 몇 그루 가꾸면서 이해하게 되었다.

우리 신자 한분이 2만평이 넘는 큰 배나무 밭을 가지고 있다. 큰 농사꾼이다. 품질로 자부심을 갖는 참 농사꾼이다. 그분께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그분께 청을 드려 과수원 한 귀퉁이에 여섯 그루의 나무를 분양 받아 3년째 나도 배 농사를 짓고 있다. 지정된 나무에 대해서는 모든 일을 내가 알아서 해야 한다. 물론 첫 해에는 일의 순서와 방법을 일일이 배워가며 해야 했지만 지금은 조금 이해가 된 상태다. 재미 삼아 하는 일이니 힘들 것도 없고 일의 양도 많지 않으니 특별히 시간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금년에 난 제일 늦게 가지치기를 했다. 늦추위가 이어지는 바람에 차일피일 미루었다가 날씨가 풀려서야 겨우 손을 댔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해동되기 전에 해야 병충해를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단다. 그것도 모르고 제 때를 못 맞추었으니 엉터리 농사꾼임이 밝혀진 셈이다.

가지치기는 참 어렵다. 어떤 가지를 처내야하고 어떤 가지를 살려야 하는지 그 식별이 만만치 않다. 먼 미래에 본 가지가 수명을 다할 때 대신할 가지를 어떻게 둘 건지 계획을 세워 앞을 내다보고 살릴 것은 살려 놓아야 하고 불필요한 가지는 처내야 하는 작업이 가지치기다. 그래야 나무의 모양도 좋고 적당한 자리에 과일이 맺히고 또 맺힌 과일이 튼실해 진다. 가지치기만큼은 3년째 하는데도 아직 익숙하지 못하다. 능숙한 전문가는 하루에 20여 그루나 한다는데, 난 나무 한 그루 가지고 하루 한나절 쩔쩔맨다. 그러니 여섯 그루도 이삼일 걸리는 셈이다. 주인이 보고 배꼽을 잡는다. 그렇게 해 가지고 어디 밥 벌어 먹겠냐고 농담 섞인 핀잔을 준다. 그래도 금년엔 제대로 했다고 좋은 평을 받았다.

가지치기를 하다보면 묵상이 절로 된다. 내 안에도 처내야할 쓸모없는 가지들은 얼마나 많을까! 정작 살려야할 것은 돌보지 않고 불필요한 것을 끌어안고 있지나 않은지! 그러고 보니 제 몸 하나 가꿀 줄 모르는 놈이 나문들 제대로 가꾸랴 싶어 혼자 속으로 부끄럼을 느끼기도 한다.

이제 좀 있으면 배꽃이 핀다. 그러면 난 중매쟁이 노릇을 해야 한다. 배나무 꽃은 꿀이 없어 벌들이 오지 않는다. 자연스레 바람에 수정되거나 사람이 수꽃을 들고 일일이 꽃마다 직접 수정을 시켜야한다. 그래서 이 일이 당년 농사를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 된단다. 이 일을 하는 날을 배나무 시집장가 가는 날이라 하니, 일하는 사람은 곧 중매쟁이가 되는 것이다. 배나무 시집장가 보내는 날엔 일마치고 과수원 주인과 참여한 일꾼들과 함께 의례 소주 잔치를 벌인다. 힘들었던 하루를 서로 위로하며! 그러다보면 어느덧 사위는 어둑해 지고, 희미한 달빛에 비친 하얀 배꽃은 청아하고 수줍어 아름다운데, 기쁨이나 낭만은 잠깐이고, 사람들 가슴 속 한곳엔 시름이 깊어지고 한 숨이 새어나온다. 금년 농사는 좀 수지가 맞을 란가? 하지만 그 답조차 농사꾼은 이미 알고 있다. FTA 체결되면 그 시름 더 깊어지겠지! 에고! 마음 아파라.

송병수/수원교구 평택 비전동 성당 주임신부
            2008-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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