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골롬반외방선교회 함편익 패트릭 신부

“기자님, 마음을 정했습니다. 인터뷰 하겠습니다.”

비자 신청과 관련된 이번 일을 공개하는 것이 함편익 패트릭 신부에게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거다. 이미 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강정마을에서 손떼라는 경고를 받았으니 자칫 거슬리는 일을 했다가는 20년 가까운 한국에서의 선교 생활을 정리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서울 성북구에 있는 성골롬반외방선교회 건물 입구에서 만난 패트릭 신부 얼굴에서는 웃음이 가시질 않았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기쁘게 하는 걸까. 

▲ 함편익 패트릭 신부 ⓒ한수진 기자

그는 사랑에 빠져있었다. 강정마을을 이야기할 때마다 그의 눈은 반짝였다. 한창 '달달한' 연애에 빠진 연인의 눈빛이었다. 함 신부의 작은 사무공간은 온통 강정마을로 꾸며져 있었다. 출입문에는 ‘생명 평화 강정’, 책상에는 ‘구럼비가 하늘이다’, 게시판에는 ‘구럼비를 죽이지 마라’ 문구가 쓰인 손 피켓이 붙어 있었다. 문정현 신부님이 실린 소식지와 강정마을 사진이 게시판을 가득 채웠다. 그는 강정마을의 열렬한 팬이었다.

강정마을과 사랑에 빠진 신부

그가 강정마을을 처음 만난 것은 2011년 9월이었다. 여름 휴가를 제주도에서 보내면서 동료 신부에게 강정마을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아름다운 해안가를 콘크리트로 메우고 군사기지를 만들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수많은 생명이 살고 있는 바다와 주민들이 소중하고 신성하게 여기는 그 바위를 말이다. 서울로 돌아온 함 신부는 다시 짐을 꾸렸다. 강정마을에 도착한 그는 며칠간 공사장 앞에서 열리는 미사와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고 마을을 돌아다니면서 주민들을 만났다.

“펜스가 막고 있어서 구럼비를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마을 사람들이 구럼비를 보지 못해 얼마나 마음 아파 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때 강정마을과 사랑에 빠졌어요.”

구럼비와 강정마을 사람들에 대한 사랑은 자꾸만 그를 강정마을로 끌어당겼다. 함 신부는 “예수회 신부들처럼 포클레인이나 레미콘 차에 올라갈 정도로 용감하지는 못하지만” 강정마을과 연대하는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강정마을에 가지 못할 때에는 서울에서 열리는 행사에 빠짐없이 참석하려 애썼다.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과 강정마을 활동에 대한 세미나를 열기도 했다.

다른 나라의 골롬반선교회에도 강정마을 상황을 알렸다. 함 신부는 강정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공사 진행 상황과 마을 사람들의 소식을 보고서로 작성해 해외 활동가들과 각국의 골롬반선교회 지부에 이메일로 보냈다. 그 덕분에 영국 골롬반선교회 신부들은 런던 주재 한국 대사관 앞에서 열린 제주해군기지건설반대 집회에 참여했다. '컴맹'이었던 함 신부가 페이스북을 시작한 것도 강정마을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제는 아일랜드에 있는 가족들도 안부 전화를 할 때마다 구럼비 소식을 물어온다. 올해 2월에는 제주국제평화대회 참가자들과 카약을 타고 구럼비에 들어가 미사를 드리다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사실 저는 수영도 할 줄 몰랐어요. 그런데 엔지 젤터가 철조망을 끊고 구럼비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큰 용기를 얻었어요.”

강정마을 활동에 대한 출입국관리사무소의 압력

그런데 강정마을과의 달콤한 연애가 채 1년도 되기 전에 비자 문제가 그의 발목을 잡았다. 비자 기간 만료시점이 다가와 늘 하던 대로 연장 신청을 했는데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는 함 신부를 따로 만나자고 했다. 그 자리에서 출입국사무소 직원은 그동안 함 신부가 강정마을과 관련된 행사에 참여한 거의 모든 사진들을 보여주며 강정마을 활동을 그만두겠다는 각서를 써야 비자를 연장해주겠다고 했다. “강정마을 때문에 추방 당하면 그동안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한 것이 아깝지 않겠느냐”고 웃으며 말하는 직원을 보며 함 신부는 화가 끓어올랐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함 신부는 최대한 모호하게 각서를 썼다. 그러자 직원은 왜 각서에 ‘강정마을’이 들어가지 않았냐며 다시 쓰라고 종용했다. 함 신부는 “강정 활동을 계속 하면 그에 대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가 허락할 때까지 평화 활동을 하겠다”라고 썼다. 결국 출입국사무소는 비자를 1년만 연장해줬다.

“출입국사무소 직원을 만나던 날이 6월 25일, 한국전쟁이 시작된 날이었어요. 나는 전쟁이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평화 활동을 하는 것인데 정치 활동으로 문제를 삼다니 정말 속상했어요. 구럼비를 지키자는 피켓을 드는 것이 왜 불법 행위인가요? 모든 사람들에게는 표현의 자유가 있어요. 내가 무얼 잘못했는지 이해가 안 돼요. 오히려 해군기지 공사가 불법이잖아요.”

1996년부터 20년 가까이 한국에서 선교활동
안양·의정부에서 이주노동자 지원활동 시작

함 신부는 한국에서 사목 활동을 하며 사람들 사이의 연대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배웠다고 했다. 1995년 아일랜드에서 사제품을 받은 함 신부는 곧바로 한국으로 파견돼 10여 년간 안양과 의정부에서 이주노동자 지원 활동을 해왔다. 한국 활동가들과 함께 이주노동자들의 임금 체불과 산재 문제 해결을 도와주고 무료진료소를 운영하면서 함 신부는 한국 사회의 동반자가 됐다. 2006년 안식년을 지내는 동안 영국에서 평화학을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골롬반선교회 한국지부에서 정의평화위원회 활동을 시작했다. 아일랜드 사람이자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예수의 삶을 따르는 사제로서 그에게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었다.

한 번은 명동에서 노란색 구럼비 티셔츠를 입고 강정마을 캠페인에 참가했는데 지나가던 한국인 남성이 손바닥으로 함 신부의 등을 치면서 “너희 나라 문제에나 신경을 써라. 한국 문제에는 신경을 꺼라” 하고 호통을 치는 일이 있었다.

“아일랜드에도 사회 문제가 많이 있죠. 하지만 지금 나는 한국에 살고 있어요. 그리고 강정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는 것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아일랜드 사람으로서 한국 사람들과 연대하고 싶은 마음뿐이에요. 그 아저씨를 보면서 내가 좀 더 겸손한 마음으로 연대 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강정 지킴이, 수녀들과 함께 '강정 댄스'에 열중하고 있는 함 패트릭 신부(가운데) ⓒ문양효숙 기자

함 신부는 강정마을의 평화를 지키는 것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고, 세계의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고 믿고 있다.

“강우일 주교님의 말씀에 큰 감명을 받았어요. '강정아, 너는 비록 작은 고을이지만, 너에게서 온 나라의 평화가 시작되리라.' 이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어요.”

그래서 함 신부는 앞으로 더 적극적으로 강정마을과 연대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 중이다. 강정에 매일 가 있지 못하더라도 강정마을 주민들을 위해 기도하고, 여름 휴가도 강정마을을 위해 비워두기로 했다. 우선은 7월 말에 시작하는 강정 평화 순례에 참여할 예정이다. 함 신부는 “강정 마을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가 온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순례 행진에 함께했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쌍용, 강정, 용산이 함께 연대하는 ‘스카이 공동행동’에도 기대가 크다. 정의구현사제단이 대한문 앞에서 시작한 월요 미사에도 참여할 생각이다. 그는 “서로 힘을 주고받고 함께 연대하면 더 많이 알리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싸울 수 있을 것”이라며 기대를 밝혔다.

함 신부는 경찰이나 비자와 관련된 문제는 신경쓰지 않기로 마음을 정했다. 오히려 그는 이전보다 더 과감해졌다고 수줍게 고백을 했다.

“비자 신청 과정에서 정부로부터 압박감을 느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그들이 더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나는 단지 선교사일 뿐이잖아요. 내가 강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건 그들이 스스로 위기를 느낀다는 걸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

비폭력적으로 권력에 도전한 예수처럼

함 신부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에 더 주목해 달라고 부탁했다.

“솔직히, 지난 번 기사가 나가고 이번 인터뷰를 하기로 하고서는 많이 부끄러웠어요. 나는 아주 작은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니까요. 그래도 이 작은 사건이 강정마을 활동에 보탬이 되면 좋겠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각자 자기의 역할을 찾아 강정마을과 함께하면 좋겠어요. 예수님도 비폭력적으로 권력에 도전했잖아요. 우리도 마찬가지로 비폭력적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려는 것이니까요.”

인터뷰가 끝나갈 무렵 함 신부는 “어차피 6개월 뒤에 대통령 선거가 있잖아요. 그 다음 6개월은 달라질 수 있겠죠. 그 때를 기다리고 있어요.”하며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한국 정부는 함 신부의 존재를 불편해하고 있지만 강정마을 주민들과 지킴이들에게는 어려운 시기를 함께 살아가는 이웃이자 동지인 그의 따뜻한 마음이, 환한 미소가, 진실한 기도가 필요한 때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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