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의 살아가는 이야기]

토요일마다 초중등부와 유치부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열리는 한국학교에 몇해 전 큰 행사가 있던 날 일이 아직도 신선한 기억으로 다가오는 아침이다. 한국학교에서 교사라기보다는 이야기 선생으로 더 아이들과 즐겁게 함께한 3년의 일들… 참 행복한 시간으로 남아 감사한 마음이다.

한국어와 한국역사를 중심으로 각반 별 수업이 이루어지는 여느 때와 달리 모처럼 전교생 400여명이 강당에 다 모인 날. 오랜만에 그 많은 아이들이 모이다 보니 신기하기도 했는지 즐겁게 떠드는 소리가 그치질 않는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진 각 나라 아이들과 함께 현지인 키위 학교에서 영어로 수업을 받다가 토요일에는 한국 아이들과 만나는 나눔의 시간이었으니 그리도 신이 났을까.

그 떠들썩하던 파도 소리가 사라지고

외부에서 오신 초대 손님들과 학부모들이 떠들썩한 그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흐뭇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오히려 여유롭다. 한 주일에 학교를 두 개씩이나 다니는 어린 학생들이 강당 마루 바닥에 오밀 조밀 모여 앉아 좀 떠드는 게 무슨 대수냐고, 기특한 모습이지…

국민의례가 시작되자 그 떠들썩하던 파도 소리가 사라지고 종이배를 띄워도 좋을 잔잔한 물결이 살랑거린다. 모두 일어서서 뉴질랜드 국가를 부르는데 아이들이 힘차고 또렷또렷하게 잘도 부른다.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되려 우물우물이다. 떠들 줄만 아는 아이들인 줄 알았더니 키위 학교에서 잘들 배웠구나하는 생각에 아이들이 대견스럽다.

다음에 이어지는 애국가는 반대 현상이다. 아이들이 우물우물하자 학부모들과 선생님들이 힘있게 받쳐주니 애국가가 살아난다. 한 쪽이 부족해도 함께 하니 하나가 된다. 귀빈 축사 시간에 단상에 올라선 뉴질랜드 수상에게 큰 박수가 이어지고 그렇게 가까이 하는 시간을 신기해하는 모습 들…

꿈을 가지고 떳떳하게 자랑스럽게 커가는 어린이 들이 될 것을 당부하는 수상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어린 아이들의 눈망울이 초롱초롱하다. ‘꿈을 가지라고, 그래 이 꿈나무 가운데서도 뉴질랜드 국회의원도 나와야지…’ 바램을 가슴속에 담는데 초대 손님석에서 한 여성이 일어나서 조심스레 단상아래로 가더니 작은 카메라를 꺼내 수상과 아이들을 보고 찰칵 찰칵 셔터를 누른다. 그리고 조용히 자리로 가 앉는다. 누굴까 눈여겨보니 동행한 아시안 국회의원이다.

거창한 격식과 요란스러움 없이

행사가 끝나고 수상과 국회의원, 그리고 운전하는 보좌관이 조용히 떠나가는 뒷 여운이 아직도 풋풋하다. 참 수수하고 서민적인 모습이다. 우리 생활 속에서 함께하는 단촐함의 맛이란 게 이런 걸까. 거창한 격식과 요란스러움 없이 자신의 일을 소리없이 묵묵하게 수행하는 자연스러움 그게 바로 뉴질랜드의 맛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 때 단상에 서서 축사를 했던 분이 국민당 당수 제니 쉬플리 전 수상이었고, 사진을 찍었던 여성 손님이 중국계 펜시웡 국회의원이다. 제니 쉬플리 수상은 노동당 당수 헬렌 클라크에게 수상 자리를 내주자, 당수직도 내려놓고 정계를 은퇴했다. 그리고 그때 펜시웡 의원은 이번 국회에도 입성하여 아시아 소수민족을 위해 일하고 있다. 중국교민 역사가 우리 한국 교민역사보다 길고 교민수도 많다 보니 펜시웡 의원이 먼저 국회에 들어가 아시안 소수민족을 대변한 일들을 해온 것이다.

오늘 아침 어인 일로 오래 전 한국학교 행사가 언뜻 떠오른 것일까. ‘꿈을 가지라고, 그래 이 꿈나무 가운데서도 뉴질랜드 국회의원도 나와야지…’ 그 때 그 바램이 새롭게 이루어진 날이 바로 오늘이 아닌가. 2008년 11월 ! 뉴질랜드 교민 역사 상 최초의 한국 국회의원이 탄생한 날이다. 아주 기쁜 맘으로 축하할 일이다. 그것도 그때 꿈 나무보다 훨씬 빨리 아홉 살 꿈나무 아이의 엄마가 국회의원이 되었다.

멜리사 리(이 지연 42세)의 뉴질랜드 국회의원 당선이 자랑스럽다. 16년전 1992년 미국에서 김창준씨가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된 이래 한국 사람인으로서 처음으로 외국에서 국회의원으로 입성하는 쾌거라는 보도에 교민들도 고무되어 있다. 무엇보다 한국 여성으로 최초 외국 국회의원이 되어 800만 해외 동포에게 힘을 실어 주게 되었다.

특히나 먼저 입성한 중국계 펜시웡 의원과 같은 여당 국회의원으로서 아시안들을 대변하는 일을 하게 되어 기대가 되어진다. “뉴질랜드를 떠나지 않고 자식 세대가 뉴질랜드에 자긍심을 느끼고 살 수 있는 나라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는 확신에 찬 인터뷰 목소리가 새 힘을 준다. 경제 위기에 가뜩이나 위축 되고 있는 뉴질랜드, 그 속에서도 이민 문호가 막혀 경제적 사회적 어려움이 여러모로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기쁜 소식을 안겨준 것이다.

왜들 변화를 요구하는 것 일까

이번 뉴질랜드 총선에서 9년간 정권을 세 번이나 연임해온 노동당 수상 헬렌 클라크가 물러나고 국민당 존 키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서 시대적으로 새로운 변화의 파도가 밀려 오고 있다. 세상이 바뀌고 있다. 정치 판도가 재편되고 경제 여건도 변하고 있다. 8년을 연임으로 이끌어온 미국 부시 공화당 행정부도 자리를 내려놓게 되었다. 케냐출신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해서 힘든 가정환경을 헤쳐나온 다인종 버락 오바마가 최초의 미국 흑인 대통령으로 탄생되었다.

왜들 변화를 요구하는 것 일까. 왜 현재 그대로 보수에 안주함이 없이 들고 일어난 것일까. ‘소통 부재’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들의 아픈 곳을 찾아 살피고 도움의 손길을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머리가 아무리 좋아도 손 발 끝에 혈액이 돌지 않으면 뒤이어 머리도 멈추고 마는 걸…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3년 뒤 뉴질랜드 국민 여론 결과가 말해주는 것이 진실이다. 진실게임이 이제 시작된 것이다.

세계 각국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앞에서 일할 일꾼들이 출발선을 박차고 나가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4년 뒤 결과가 주목된다. 고국의 이명박 대통령도 5년 중 1년이 거의 다 되어 가니 4 년 뒤도 그리 오래지 않아 보인다. 이런 이야기가 비단 정치에만 관련될 일이겠는가. 내가 속한 나라, 지역, 사회, 교회, 공동체, 단체, 모임, 가족일…모두에 적용될 일이다. 맡은 일을 끝낼 때 어떤 모습일까. 뒷사람에게 짐 되지 않게 넘겨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나오는 성싶다.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나도 저렇게 해야지’하는 진심 어린 마음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게 바로 성공이고 행복이 아닐까.

우리 모두에게 아주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은 우리에게 성공과 행복을 함께 담아서 내어준다. 미국 흑인 대통령,오바마의 가슴 울렸던 연설이 울려온다. “Yes, we can !”

백동흠/ 뉴질랜드에 사는 교민, 택시기사로 일하며 글을 뉴질랜드 타임즈에 기고하고 있다. 
          200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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