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분과 산책나온 시]

꿈꾸지 마라
잠들지 마라
이제 곧 아침이 올 터
새들이 먼저 알고 창문을 두드린다

매이지 마라
머물지 마라
이제 곧 어둠이 올 터
바람이 먼저 알고 나무를 흔든다.

삶이란
들꽃위에 내려앉는 햇살 한웅큼
구름이 다가오면 흔적없이 사라지는 허무
구름이 지나가면 기척없이 찾아드는 손님

산다는 건 다만,
그 사이로 건네지는 짧은 사랑의 인사를 놓치지 않는 것.

-산다는 건...

 

 

 

 

 

 

 

 

 

밀린 일들이 있어 평소보다 좀 늦게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해서인가
한참을 뒤척이다 얼풋 잠이 들었는데 전화벨소리에 다시 깼다.

나 술 안취했어.. 하는데 취한 목소리다.
그런데
이러고 저러고 하는 이야기들은 또박또박 이유도 분명하고
논리도 정연한 게 안 취한 것 같다.
아님, 이야길 하다가 술이 깬 걸까?

잠 깨서 미안해..
내 이야기 끝까지 들어줘서 고마워... 하길래
그제야 시계을 보니 2시다.

나는 속으로만 그랬다.

이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네가 있고
들을 수 있는 내가 있어서
우리가 참 좋다고...

전화를 끊고 다시 누우며
새벽예배를 갈 수 있으려나 생각했는데
역시나 못갔다.

하지만 상관없다.
누군가 먼 곳에서 내게 말을 걸어오고
그 존재의 심연을 함께 더듬으며 나누는 시간이라면
그게 신이든 사람이든 무에 그리 중요할 것인가.


조희선/ 시인, <거부할 수 없는 사람>, <타요춤을 아시나요> 등 시집을 내었다. 
            2008.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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