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문규현] 출입국관리소의 골롬반선교회 함 패트릭 신부에 대한 각서 요구 소식을 듣고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함 패트릭 신부님 앞에 그가 행했던 강정마을 관련 활동사진들을 좌악 펼쳐놓으며 비자 연장 기간을 흥정하고, 다시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라 했단다. 놀랍고 소름 끼친다. 함 신부님이 무슨 불법행위를 했던가. 없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미사하고, 즐겁게 웃고 춤추고, 정의평화 관련 외국인들에게 안내자 역할을 했을 뿐이다. 이런 작태가 과연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가 할 일인가? 그토록 꼼꼼하고 자상하게 사진을 찍고 정보를 제공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 서울 대한문 앞에서 강정 댄스를 추고 있는 함편익 패트릭 신부 ⓒ한수진 기자

이명박 정부가 벌인 민간인 불법사찰의 대표적인 피해자 김종익 씨. 그는 이명박을 비판하는 남의 글을 퍼다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이다. 회사, 친구, 평온했던 가정까지 모두 파탄 났다. 이제 새로 개원한 국회에서 민간인 불법사찰과 증거인멸 사건이 국정조사를 받는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저렇게 반인권적인 불법채증과 사찰 행위들, 정보 분석과 공유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있다. 하기사 “독재라 해도 할 수 없다”며 제멋대로 안건을 처리하는 사람이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연임 요청된 수준의 나라 아닌가.

이 정부가 함 패트릭 신부에게만 저런 ‘국격’ 높은 대접을 한 건 아니다. 영국인 엔지 젤터는 물론이고 프랑스인 벤자민은 기본적인 절차도 건너뛰고 막무가내로 강제추방 됐다. 쫓겨 간 벤자민은 커다란 충격과 상처로 오랜 시간 힘들어했다고 한다.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걸러지기 일쑤다. 미국재향군인회 사람들도 그랬고, 일본인들도 조금이라도 강정과 관련 있으면 영락없이 거부다. 며칠 전에도 일본인 강정 방문자들이 제주공항에서 입국거부 되었다.

음험한 황당 시리즈는 강정 관련 사안에서만 발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지난 4월 초, 그린피스 동아시아 본부 관계자 3명이 인천공항에서 입국거부 당했다. 그들은 한국에서 아무런 활동도 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뒤늦게 알려진 바로는 그냥 ‘국익 저해 사범’이라고 했단다. 그 뒤 4월 말, 인천항에 들어온 그린피스 배 에스페란자 호 투어를 갔을 때 또 그런 소식을 들어야 했다. 해외로 나갔다 돌아오던 그린피스 서울 사무소 책임자가 바로 전날 입국거부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는 에스페란자 호 선상에서 우리를 비롯해 여러 한국 손님들을 안내해야 했지만 좌절됐다.

이런 짓들을 하면서 입만 열면 ‘국격’을 운운하니, 이놈의 정부는 파렴치함과 몰지각함에서 단연 최강이다. 모든 사안에서 그저 ‘배째라’다. 아주 돌아가실 지경으로 매사 후지고 후지다. 저기 어디 멀리 아프리카 후진국 독재자들 얘기를 듣는 듯하기도 하고 탈레반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니까 저들은 생명과 평화의 관계망 여기저기를 끊고 단절시키면, 이 운동의 생명력을 축소시키고 확장력을 차단할 수 있다고 믿는지도 모른다. 위협과 통제의 권한을 마구 휘둘러대면, 사람들이 위축되고 조용해지리라고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허나 이것은 좀 고상한 해석인 것 같다. 단지 저들은 자기들 주장에 반하는 목소리에 어떤 조그마한 의미도 가치도 부여하지 않을 뿐이다. 시끄럽고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워, 어서 치우고 제거해버려야 하는 장애물, 쓰레기처럼 취급할 뿐이다. 무언가, 이건? 독재? 반민주다.

지금 대한민국 정치 풍경은 ‘정치활동’을 이유로 성직자들을 추방시켰던 박정희 유신 치하로 되돌아갔다. 1974년 10월, 개신교 오글 목사님이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1975년 4월 30일, 메리놀 수도회 시노트 신부님이 미국으로 추방되었다. 두 분 모두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가 박정희 정권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라는 것을 줄기차게 알린 대가를 치렀다. 특히 시노트 신부님은 사건 관련자 8명이 대법원에서 확정 판결이 난 지 하루도 안 되는 19시간 만에 전격 사형되자, 더더욱 분노하며 두려움 없이 진실을 알리는데 헌신했다. 시노트 신부님은 대법원 앞에서부터 미 대사관까지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박정희는 이를 빌미로 비자를 갱신해 주지 않고 추방해버렸다.

잃어버린 10년 운운하더니, 아예 역사의 시간이 30년 뒤로 돌아갔다. 대통령이 다 된 것처럼 돌아다니는 박근혜를 비롯하여 새누리당의 현 핵심들은 박정희 전두환 시대의 인물들이다. 군부 독재자들의 꿈과 통치 스타일로 훈련받고 그 아래서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린 자들이다. 박근혜는 독재자 박정희의 딸자식에 불과한 인물이 아니다. 그 자신이 바로 박정희를 동반하며 정치무대에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한 그 시대 독보적인 인물이었다. 게다가 박근혜는 본인이 아무리 이명박과 차별화를 시도한들 명백히 이명박의 동업자였고 후원자였다. 그렇기에 ‘이명박근혜’라는 말들을 한다. ‘쥐를 품은 닭’이라는 풍자도 회자된다.

독재와 반민주, 반인권이라는 역병이 지금 이토록 어지럽게 창궐하고, 강정마을과 관련된 사람들이 집요하게 탄압 받는 데는 이러한 정치적 현실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본질적으로는 제주해군기지가 미국이 전략적으로 원하는 전쟁기지라는 것이고, 한편으로는 현재의 정치적 실세인 박근혜를 비롯한 집권세력이 안보 프레임으로 해군기지 건설을 전면에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총선 후에도 부지런히 제주를 방문하여 “해군기지 건설해서 하와이처럼 명소를 만들자”고 휙 던져놓고 가버렸다.

“하와이야말로 진정 강정이 되고 싶다.” 20년간 하와이에서 살았던 미국 군사기지전문가인 백구한 씨가 한국 강연회에서 한 말이다. 박근혜가 강정과 제주의 미래를 하와이에서 찾자고 하니 주민들이 실상을 알아보자고 그를 초대했다. 백구한 씨는 강연회에서 박근혜가 “하와이를 전혀 모르거나, 이권이 걸려있거나, 어리석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사실이나 진실하고는 관계없이 박근혜는 앞으로도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며 대선용으로 적절히 써먹을 것이다. 해군기지 건설반대운동에 대한 탄압도 계속될 것이다.

이런 판국에 정치 활동과 종교 활동을 구분짓는 것이 가능한가. 시노트 신부님의 항의는 정치 활동인가, 종교 활동인가? 최근에 CNN이 한국의 언론자유와 방송사 파업을 보도하면서 “한국에서는 농담으로도 잡혀갈 수 있다”고 힐난했다. 실제로 잡혀들 가고 있다. 이 CNN 보도에 이런 댓글이 달렸다. “북한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자유가 없다는 걸 알지만 남한 사람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착각하고 있다.”

유신독재 체제를 공고히 하여 영구집권하려는 자의 공포정치, 폭정은 그토록 극단을 달렸지만 불과 몇 년 뒤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는 김재규의 총탄에 절명했다. 독재자를 위한 영원한 제국이란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박근혜는 꿈 깰 일이고, 우리는 유신 치하를 맞은 듯 더욱 정신 차릴 수밖에.

시노트 신부님이 2007년에 한국에 들어오셔서 인터뷰한 것을 옮기며 이 글을 맺는다.

“(박정희는) 국민을 귀먹고 눈 없는 동물처럼 업신여겼다.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았다. 그런 생활 원하면 (그리워)하라. 박형규 목사 같은 훌륭한 사람들이 왜 그런 고생을 했겠느냐. 박근혜(전 한나라당 대표) 물론 얼굴은 엄마(육영수)처럼 좋은데, 속이 아버지 같으면 안 된다. 아버지가 살인자다, 솔직히 말 안 하면 안 된다.”(<한겨레21>, 2007.02.06.)

문규현 신부 (전주교구 원로 신부, 생명평화마중물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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