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이번엔 서영남 선생님이 편지를 하나 보내 주셨습니다.- 편집자 


선생님께,

저 김 야고보입니다.
선생님을 처음 뵈었을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십여 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렀네요. 그때 서울 평화의 집(출소자의 집)에 있을 때에 선생님의 충고를 받아드렸다면 아마도 저는 부자가 되어있겠지요.

저는 선생님을 만나기 전에도 몇 번 나에게 좋은 충고 해 주고 제 마음을 바로 잡아주려는 사람들이 있었답니다. 그때 다만 한 사람의 말이라도 옳게 알아듣고 좋은 길로 한 우물만 팠다면 돈을 억수로 많이 벌었을 것입니다.

그때마다 저는 그런 말이 싫었고 반항적이었답니다. 이제야 나이 사십 줄이 되어서야 좋은 사람들의 그런 마음들을 조금이나마 느끼고 마음 아파한답니다. 이제 후회한들 다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제 딸이 태어났을 적에 제 마음을 추슬렀다면... 후회가 막심하답니다.

이제부터 벌어도 시원찮을 판에 범죄 아닌 범죄를 저질러서 이렇게 경찰들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한다니 말입니다.

전 여자도 친구도 잘못 만났습니다.

애란이라는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제 통장에 돈도 더러 있었고 착실했답니다. 또 제 동창생인 인철이란 친구를 다시 만나지 않았다면 돈의 쪼들림을 모르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때는 비씨카드까지 은행에서 권유해서 만들 정도였으니까요.

그 둘을 만남으로 해서 제 인생은 꼬였습니다. 기나긴 악연의 연속이었죠. 둘 다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어떻게 그렇게도 비슷하죠? 처음 만난 시기가 달랐는데도요. 제 친구 인철이가 그러더군요. 넌 애란이만 안 만났다면 부자가 되었다고요. 하지만 제가 보기에는 인철이도 만만치 않거든요. 그 친구 때문에 매일 술 먹고 결국 그 친구 때문에 제 비씨카드 빵구 나고 신용불량자가 되었으니까요. 그때 그 시절로 다시 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제가 사장이 되었을 수도 있겠고, 제 몸도 이렇게 상하지 않았겠지요.

전 그때만 해도 돈 벌면 하고 싶었던 것이 많았답니다. 사출공장 사장, 용접공장 사장 아니면 시골에 가서 가축 키우며 살 궁리도 했었으니까요. 이제는 그것들이 다 물거품이 되었네요. 다만 제 인생의 끝이 어떨지 궁금하네요.

하지만 오늘 선생님께 분명히 말씀을 드릴께요. 물론 어떻게 될는지는 모르지만 선생님의 바람대로 우선 돈을 조금씩이나마 모아서 제금 제가 살고 있는 단칸방 하나를 지키는 것이고요. 두 번째로는 내년에는 꼭 제 딸을 보육원에서 데려 오는 거예요.

길 건너 제가 다니던 인력회사 사장이 말하기를 계획을 가지고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인력회사는 제 딸의 친모와 함께 살 때부터 다니던 곳이었거든요. 그 사장님은 그때부터 저에게 돈을 모으게 해 주려고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저에게 두 손 두 발 다 들었습니다. 며칠 전부터는 저를 피하고 만나주질 않습니다. 물론 새벽에 나가도 일도 안 보내주고요.

그래서 할 수 없이 송림동이나 도원역 쪽으로 일 다니려고 선생님을 만나러 갔다가 영일이 형한테 조금 서운한 마음으로 돌아섰습니다. 물론 제 잘못도 있습니다. 길 건너에 있는 인력회사만 생각하고 차비도 남기지 않고 돈을 다 써버렸으니 말입니다. 저도 물론 매번 선생님께 차비 빌리는 것이 죄스럽고 또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정말로 당장 차비가 없어서 갔던 것인데 영일이 형이 너무 면박을 주더라고요.

화수동에 오기 전에 일했던 인력회사가 간석동에 있어요. 간석동까지 걸어가서 봉고차 태워달라고 하는 수밖에는 지금은 없습니다. 그런데 간석동까지 걸어서 가려면 얼마나 힘들겠어요. 길을 모르니 낮에 가야하고, 밥도 못 먹고, 거기 가서 또 아무 곳에서나 밤을 새고 새벽에 일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민들레국수집을 찾아갔던 것인데 영일이 형은 제가 매번 고의로 그러는 줄 아나 봅니다. 이제 간석역까지 걸아 갈 생각을 하니 너무나 막막합니다. 거기에서 곧바로 일을 못하게 되면 며칠 굶어야 하거든요.

그리고 선생님께 당부 드리고 싶은 것은요. TV 카메라가 제 얼굴을 찍으면 안 될 것 같아요. 형사들도 어쩌면 제 얼굴과 이름을 알 텐데 혹시라도 텔레비전에서 제 얼굴을 보게 된다면 “나 잡아가세요.” 하는 격이잖아요. 누군가 저를 찾아오면 무조건 모른다고 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제 대포 통장이 10개가 넘으니까 그것이 전국적으로 어디로 터질지는 모르거든요. 거기다가 바지 사장 건도 있고요. 휴.

이것이 제기 드릴 말 전부입니다. 선생님께는 정말 고맙고, 정말 죄송하고 하네요.

2008년 11월 16일

연아 아빠 올림.

참고: 대포 통장 1개에 5만원으로 10개를 만들어주었다고 합니다. 바지 사장 건은 명의를 빌려주고 삼십만 원 받아썼다고 합니다.


/서영남 2008.11.19. 
서영남 베드로 선생은 인천에서 노숙자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민들레국수집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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