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유철의 미디어 흘겨보기] 11월 16일자 2623호 <가톨릭신문>과 994호 <평화신문>

 ‣ 10여 년 전에 있었던 일

무슨 일이 있었기에 ‘사도좌’라 불리는 멀고 먼 바티칸에서 이곳에 엄명이 들어 있는 지시가 왔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그 엄명을 받들어 주교회의 상임위원회는 1997년 7월 2일 회의를 했으며 같은 해 9월 1일자 <한국주교회의 회보> 100호에 결과를 공포하였다. 크지 않은 회보의 2쪽에는 이런 글이 있었다.

“9항. 일부 신학자들의 저술활동에 관한 사도좌권고. 한국인 신학자들의 저서와 기사(이제민 신부의 『교회-순결한 창녀』, 정양모 신부의 여러 학술회의 연설, 서공석 신부의 『사목』1997년 2월호 기사)에 보편교회와 개별교회의 관계, 여성과 사제직, 사제독신제, 복음화와 신앙의 토착화와 관련하여 가톨릭의 정통교리와 일치하지 않은 요소가 있다고 지적하여 사제양성을 비롯한 신학자들의 올바른 감독을 권고하는 사도좌의 견해를 전달한 교황대사의 서한을 검토하고, 앞으로 주교회의 간행물에는 이들의 글을 게재하지 않도록 하였다.”
 

10여 년 전의 일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이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다 알고 있지 못한 형편이다. 그 결과 세 분의 신학자는 모두 학교에서 타의로 물러났다. 이제민 신부는 광주가톨릭대학교에서 마산교구 구암동성당으로, 서공석 신부는 서강대학교에서 부산교구 사직동성당으로, 정양모 신부는 서강대학교에서 무직자를 거쳐 이웃종교 소속의 성공회대학교로 갔다. 물론 당시 모두 건재하였던 교계신문들은 이를 보도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홈페이지에서 검색되지 않는다.) 서공석, 정양모 신부와 관련하여서는 이미 지난 1월에 25번째 <미디어 흘겨보기>에서 한차례 비평한 바 있다.

‣ 이제민 신부가 책을 발간하다.

물론 교황청의 ‘견해’를 전달한 교황대사의 서한 사건이후에도 세 신학자의 책은 쉬지 않고 출간되었다. 현재도 한 수도회가 운영하는 도서판매 홈페이지에는 세 분 중 두 분의 코너가 별도로 있을 정도다. 척박한 교회 독서 인구에 비하면 그 분들의 책을 많이 찾는다는 역설일 것이다. 11월 16일자 <가톨릭신문> 15면에 이제민 신부의 신간에 관한 책 소개 기사가 실렸다. 물론 1997년 7월 2일 주교회의 상임위원회가 세 신학자의 저술이나, 강연 기타 성무에 대한 제재를 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글이 주교회의 간행물에는 실리지 않는 소극적인 제재였지만 분명히 문제는 있는 조항이었다.

세 신학자의 글이 당시 ‘보편교회와 개별교회의 관계, 여성과 사제직, 사제독신제, 복음화와 신앙의 토착화와 관련하여 가톨릭의 정통교리와 일치하지 않은 요소’가 있는 것으로 판단한 교황청이나 이를 받아들인 한국주교회의 결정이 아직도 유효하다면 이후 발간된 이들 신학자들의 책에서 일치하지 않았던 요소들이 ‘정통교리화’ 되었다는 것인가? 일치하지 않은 요소만 살짝 빼고 이들의 책은 발간되고 있다는 것인가? 신학생 혹은 종교학 전공 학생들에게는 위험할 수 있는 이들의 지도가 본당을 통한 신자들에 대한 강론 혹은 여러 강연 등은 정통교리와 관계가 없다는 뜻인가?

어쩌면 10여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우리는 한국천주교회 안에서 만났던 귀한 신학자들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교계신문이 침묵하고, 교우들은 잊어가고, 동료신학자들의 외면 속에서 말이다. <가톨릭신문>이 단독으로 한 책 소개 좋았다! 

/김유철  200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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