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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이은형 신부 "북한, 착한 사마리아인의 눈으로 보자"[인터뷰-주교회의 민화위 총무 이은형 신부]
강한 기자  |  fertix@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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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06.26  12:3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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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전 그날도 이렇게 뜨거웠을까?

그늘 밖에 있는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듯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6월 25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 시내에 있는 의정부교구 사회사목센터에서 이은형 신부와 만났다. 그는 지난 2월 20일에 열린 천주교 주교회의 상임위원회의 결정으로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이하 민화위) 총무가 됐다. 그 전에 이 신부는 2007년 12월 공식 출범한 의정부교구 민화위 위원장으로 활동해 왔고, 주교회의 민화위 새터민 지원 분과 대표도 맡고 있었다. 2000년부터는 3년 넘게 러시아 연해주 지방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 이은형 신부가 의정부교구의 '평화 · 통일 기원 묵주기도 7천만 단 봉헌 운동'과 오는 10월에 열릴 '평화 통일 기도회'를 알리는 포스터 옆에 서 있다. ⓒ강한 기자

고향도 남쪽이고, 이산가족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이은형 신부가 ‘민족 화해’를 위한 활동에 열중해온 데는 특별한 계기나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혹시 가까이에 이산가족이나 분단과 전쟁으로 상처받은 사람이 있는 것은 아닌지 물었지만, 그건 아니며 고향도 ‘남쪽’이라고 했다.

“계기라기보다는, 분단된 상황에서 살아가며 그동안 통일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고, 신학교 때부터, 그리고 신부 생활하면서 우리 한국 교회에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는 ‘북한 복음화’일 것이고, 그런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뭔가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지요. 그러던 중에, 그 당시 서울대교구 시절(2004년 의정부교구 설정 이전)에 러시아에 사람을 보내면 좋겠다는 얘기가 있었고, 제가 러시아 선교를 자원했지요.”

이 신부는 러시아 선교에 관해, 이른바 ‘북방 선교’에 큰 의미를 뒀다기보다는 “북한 복음화를 위한 전초기지”라는 의미가 강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와 북한의 접경 지역이 있어요. ‘연해주’라고 하지요. 고려인(옛 소련 지역의 한인 교포)이 많이 살고 있어서, 그 지역에 우리 신앙 공동체가 세워질 수 있다면 앞으로 통일을 위해서 좋은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 러시아 선교를 가게 됐던 것이죠. 사실은 3년 만에 철수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게 러시아에서 가톨릭 선교사들의 활동에 제약이 있었거든요. 정교회 국가이다 보니……. 비자를 너무 단기로 끊어서 주는 바람에 도저히 어떤 일을 해나갈 수 없는 상황이라, 나중에 기회가 닿으면 다시 들어가는 것으로 하고 귀국했습니다.”

그가 연해주에서의 선교 활동을 마치고 돌아오던 무렵 의정부교구가 출범했다. 그는 스스로 북한 복음화에 관심이 있다면 북한과 인접한 교구에서 활동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 의정부교구로 오게 됐고, 그런 지향을 갖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민화위에서 역할을 맡게 됐다고 한다.

교회의 민족 화해 활동 두 갈래 … '북한 동포 돕기'와 '새터민 지원'

주교회의 민화위의 연혁을 살펴보면 그 기원은 1982년 12월에 설립된 ‘한국 천주교 2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 북한선교부’였다. 1984년, 200주년 기념사업위원회가 해체됨에 따라 북한선교부는 주교회의 직속 기구로 개편됐고, 1985년에 '북한선교위원회'로 이름을 바꿨다. 1999년에는 다시 한 번 명칭을 변경해 '민족화해위원회'(민화위)가 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은형 신부는 “주교회의의 특성상 (주교회의 산하) 각 위원회는 (교구 위원회들의) 상위 기구라기보다는 협의 기구라는 성격이 강하다”고 전했다. 민화위도 마찬가지다. 모든 일은 각 교구 민화위가 독립적으로 추진하고, 주교회의 민화위에서는 각 교구가 실행한 일을 공유하는 방식이다.

예전에는 개별 교구 차원에서 북한 지원에 나서다 보니 교구 간의 정보 교류가 잘 되지 않고 체계적이지 못하며, 중복 지원이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이에 따라 각 교구의 활동을 공유하고 연결하는 주교회의 민화위의 역할이 강조됐다.

주교회의 민화위의 활동은 크게 보아 ‘대북 지원’(북한 동포를 직접 돕는 일)과 ‘새터민(북한이탈주민) 지원’이라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민화위 산하의 ‘대북 지원 분과’와 ‘새터민 및 난민 지원 분과’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두 가지가 오늘날 한국 교회가 벌이는 '민족 화해' 활동의 큰 갈래일 것이다.

'5·24 조치' 이후 천주교의 대북 지원도 막혀
"남북 관계 단절은 북한의 중국 경제 의존 강화한다. 통일 시대의 걸림돌 될 것…"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가 남북 교역을 전면 중단하겠다고 선언한 2010년 ‘5·24 조치’ 이후에 모든 민간 교류는 끊어진 상황이다. 벌써 2년이 넘었다. 한국 교회 차원에서도 북한에 대한 물적 지원은 완전히 막혀 있다.

이 신부는 “남북관계가 좋을 때는 각 교구별로 활발하게 활동했다”면서 “서울대교구는 국수 공장과 영양제 공장을 북한에 뒀고, 북한의 조선카톨릭교협회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신앙적인 교류도 어느 정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모든 것이 단절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민간, 종교 차원의 남북 교류·협력을 정치적 문제 때문에 좌지우지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 등 “안 좋은 사건들이 있었던 게 분명한 사실”이고 “남북한이 정치적으로 밀고 당길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하지만, “물밑의 민간, 종교, 사회 차원의 교류는 지속적으로 해 나가는 게 통일을 위해 좋은 토대가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다. “통일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것”인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민간 교류를 허용하고,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교회의 민화위원장 이기헌 주교도 6월 20일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기원 미사' 강론을 통해 같은 뜻을 밝혔다.

한편, 이은형 신부는 언론 보도를 인용하며 5·24 조치 이후 북한의 중국 경제 의존이 심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명박 정부 출범 전인 2007년에는 북중 교역 규모가 19.7억 달러, 남북 교역은 18억 달러로 비슷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5·24 조치 이후 북중 교역은 연 40~50% 이상 불어나, 2011년에는 북중 교역 규모가 56.3억 달러, 남북 교역은 17.1억 달러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신부는 그나마 남북 교역 규모가 17억 달러 수준으로 유지되는 것은 개성공단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5·24 조치 이후 북한의 손해가 8억 달러 정도 된다고 말하는데, 그것은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메우고도 남습니다. 남북 관계 단절은 북한의 대(對) 중국 의존을 가속화할 수 있어요. 이는 미래의 통일 시대에 걸림돌이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을 유지하는 게 문제가 있지 않습니까? 북한이 끌어안아야 할 대상이라면 생각을 다시 해야 합니다.”

북한이탈주민의 정착과 적응 돕기 … '통일 시대'에 벌어질 일 미리 체험하는 것
"북한 복음화를 위한 선교사 양성,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편, 주교회의 민화위는 하나원(북한이탈주민의 사회 적응을 돕는 통일부 소속 교육기관)에서 활동해왔고, 하나원 교육을 수료하고 각 지역에 정착하는 새터민을 교구와 연결해주는 역할도 한다. 많지 않은 천주교 신자 새터민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은 각 교구에서 하지만, 신자 새터민을 위한 집중교육이나 단계별 교육은 주교회의 민화위 차원에서 하는 일이다.

이은형 신부는 “북한이탈주민이 이 땅에 들어와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은 앞으로 ‘통일 시대’에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일을 앞서 체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쪽 사람들이 북한이탈주민과 어떻게 하나로 어우러져 살아갈지 먼저 체험하고 교육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한다.

또한, 이 신부는 천주교 신앙에 관심이 있는 새터민을 “신앙적으로 잘 이끌어 줌으로써 그들이 미래에 북한 복음화의 주역이 되도록 하는 게 우리 교회가 해야할 중요한 역할”이라고 밝혔다.

“결국 교회의 목적은 통일 자체보다는, 북한에서도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할 수 있게 하고, 또 북한에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좋은 보화가 그 안에서도 살아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북한 복음화'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북한 복음화를 위한 선교사 양성을 지금부터 체계적으로 해나갈 필요가 있지요. 좋은 재원 중 하나가 새터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신부는 “새터민이 아니더라도 기회가 되면 북한에서 선교사로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역할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평신도, 사제, 수도자를 미리 잘 양성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필요하니까 준비도 안 된 사람을 보내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기보다는, 미리 체계적인 준비를 통해서 현실적으로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방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의견이다.

북한에도 '천주교회'가 있나요?

북한의 조선카톨릭교협회 관계자들과도 만나봤다는 이은형 신부에게 ‘북한 교회’라는 용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로마 교황청과 공식적으로 연결된 북한 교회는 없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민주주의 국가’를 표방하는 북한에는 천주교, 개신교, 불교, 천도교 등 각 종교 단체들이 있지만 “정부 관련 단체”라는 성격이 짙다.

이 신부는 “공식적이지는 않지만”이라고 전제하며, 교회가 ‘믿는 사람들의 모임’을 의미한다고 볼 때 북한에 남아 있는, 옛 신앙을 간직한 사람들을 '교회'로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녘에 아직도 신앙의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간혹 하나원에서 예전(분단 이전)에 세례 받고, 그 기억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어요. 북한에서 신자들이 조직화되고 만날 수 있는 여건은 아니지만, 신앙을 기억하는 개인들이 있는 것이죠. 그들도 우리와 연결될 수 있는 교회로서의 기본적인 모습이지 않을까요?”

   
▲ <2010-2011 한국 천주교 주소록>에 실린 한국 천주교회 교구 분할도 일부. 평양교구, 함흥교구, 덕원자치수도원구 등 북한 지역 교구가 '침묵의 교회'로 분류돼 있다.
한편, '침묵의 교회'라는 말도 있다. 신앙에 관해 공공연히 말하거나, 가르치거나, 다른 국가의 그리스도인과 교류하는 것을 제한받는 공산주의 국가의 그리스도 교회를 일컫는 말이다. 이 용어도 ‘북한 교회’를 가리키는 말로 여전히 쓰인다. 그러나 이은형 신부는 “우리 천주교회에서 북한 교회를 어떻게 표현하자고 결정한 적은 없다”고 전했다.

이 신부도 몇 차례 평양을 방문하며 장충성당에서 봉헌하는 미사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는 “북한 측에서 신자라고 함께 데리고 나오는 사람들이 정말로 세례 받은 신자인지 우리가 확인할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신부는 평양에 있는 외국 공관 직원 중 천주교 신자들이 장충성당 미사에 참여했다고 전했다. 그는 “상주하는 사제가 없어서 못할 뿐이지 누군가 함께할 수 있는 사제만 있다면, 그 땅에 살아가는 신자들도 있으니 그들이 하나의 교회로서 좋은 모습을 지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장충성당’에 대한 주교회의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아직까지 없었다고 한다. 이 신부는 “평양에 대한 관할권은 전적으로 서울대교구장에게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서울대교구장이 평양에서의 신앙생활을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가 우리에게 중요한 판단 근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동안 여러 교구의 사제들이 장충성당에서 미사를 집전했고, 북한의 ‘천주교 관계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이 신부는 이러한 전례를 볼 때, 남한 교회가 명시적으로 북한에서의 신앙생활을 인정하지는 않았지만 “암묵적인 동의가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천주교 신자들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많다

대한민국에 사는 평범한 천주교 신자들이 ‘민족 화해’를 위해, 북녘 동포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적지 않다. 이은형 신부는 무엇보다도 신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기도를 통해 마음을 모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남북 관계를 말할 때 가장 어렵게 다가오는 것이 ‘남-남(南-南) 갈등’입니다. 최근에는 ‘종북’ 논쟁 때문에 시끄럽습니다. 도대체 북한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생각이 극단적으로 갈리고 있어요. 이를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지금의 북한 체제가 정말로 좋아서 따라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결국 북한을 포용하느냐, 또는 압박하느냐의 차이일 텐데, 신앙인이라면 좀 더 유연하게 '사랑'을 바탕으로 대하면 좋겠습니다.”

기도 뿐만 아니라 각 교구 민화위를 물질적으로 후원하는 방법도 있다. 이 신부는 “각 교구 민화위는 후원회원 중심으로 움직인다”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고통 받는 북녘 주민과 밥 한 끼 나눈다는 생각으로 지원하면 교구 민화위가 일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 2008년 4월 24일,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가 '제3차 사랑의 연탄' 5만 장을 개성 지역 내 봉동리 마을에 전달하고 있다. 교구 사제 5명과 봉사자 16명이 이 행사에 참여했다. (사진 제공 : 의정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그는 “남북 간 교류가 재개되고 관계가 좋아져 좀 더 자유롭게 함께할 수 있는 때가 되면, 우리 봉사자들이 북한에 들어가 육체적 봉사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의정부교구는 북한에 대한 연탄 지원 사업을 벌였는데, 평신도 봉사자 15~20명이 북한에 들어가 그곳 주민들과 함께 연탄을 나른 적이 있다. 이 신부는 “이러한 봉사 활동이 봉사자들에게 큰 체험으로 남았다”고 전했다.

새터민을 위해서도 신자들이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이 많다.

“새터민은 각 지역에 들어가서 살게 됩니다. 정말 낯선 곳에 동떨어져 살게 되는 것이죠. 이들을 어떻게 받아주느냐, 어떻게 끌어안느냐가 중요합니다. 신자들의 개별적인 봉사가 매우 중요해요. 지역에 찾아오는 새터민들의 초기 정착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신앙적인 정착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멘토' 역할을 할 신자들이 많이 필요합니다.”

의정부교구, 묵주기도 성월인 10월에 '평화 통일 기도회' 열고 성모님께 기도 바칠 것

2011년 6월 17일, 8년 만에 재개돼 파주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2만여 명이 모여 봉헌한 한반도 평화기원 미사에 관해서도 회고했다. 당시는 5·24 조치 1주년이 지나며 남북 갈등이 고조되던 때였다. 이 신부는 “그때 평화를 기원하는 신자들의 마음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면서 “미사를 성황리에 마치고 많은 기대를 가졌는데, 남북 관계는 풀릴 듯 하면서도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오히려 악화됐다”고 아쉬워했다.

   
▲ 2011년 6월 17일 거행된 한반도 평화기원 미사. 평화의 모후 성모 마리아 상을 모시고 아동들이 앞장서고 있다. ⓒ한상봉 기자

한편, 이 신부가 속한 의정부교구는 2012년 1월 1일 ‘평화의 날’부터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는 묵주기도 7천만 단 봉헌 운동’을 벌이고 있다. 7천만은 남북한 전체 주민 수를 염두에 둔 숫자로, 한 사람을 위해 묵주기도 한 단을 바치는 셈이다. 이 기도 운동에 대해 이은형 신부는 “기도의 힘으로 평화를 기원하는 한 해를 보내자”는 의미이자 "총선과 대선이 있는 중요한 해를 맞아 정치 지도자들이 남북 문제에 관해 더 유연한 생각을 갖고 움직이면 좋겠다는 뜻을 밝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의정부교구는 묵주기도 성월인 오는 10월에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에서 ‘평화 통일 기도회’를 열 예정이다. 이 신부는 “묵주기도 성월을 맞아 우리의 기도를 성모님께 봉헌하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성모님과 그 시간을 함께하자”는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평화를 기원하는 성모님의 모습을 담은 성화를 어느 화가가 교구의 요청을 받아 그리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다. 예정대로라면 평화 통일 기도회에서 이 성화를 축성할 것이다.

"북한 문제, 착한 사마리아인의 눈으로, 신앙인의 눈으로 보자"
"이념적으로 옳고 그름만 따지다 보면 방관자적 죄에 빠질 수 있어"

이은형 신부가 보기에 한국 경제의 미래는 북한에 있다. 그는 “우리는 섬나라 아닌 섬나라”라며 “대륙과 제대로 연결되고자 한다면 북한과 관계를 잘 맺어야 한다. 우리가 세계 인류로 나아갈 가능성이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이 신부는 ‘퍼주기’라는 비난이 너무나 소모적이라고 지적했고, “북쪽만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남과 북이 함께 사는 확실한 길”이라며 “남북 관계가 원활하게 풀리면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야기를 마치며 이 신부는 ‘남-남 갈등’에 대한 우려를 다시 한 번 밝혔다.

“북한 문제를 바라볼 때 너무 정치적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북쪽에 살아가는 정말 어려운 우리의 이웃입니다. 우리에게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가 있습니다. 강도 당해 피투성이가 된 사람을 마주친 입장에서 일으켜줄 수 있어야 합니다. 정치적으로 ‘3대 세습’과 ‘인권’ 얘기를 하다보면 정말 손을 내밀어야 할 때에 내밀지 못해요. 이념적으로 옳고 그름만 따지다 보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제 때 도움을 받지 못하고 고통 속에 죽어가게 하는 방관자적인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신앙의 눈으로 바라보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을 전해야 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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