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영화 <두 개의 문> 연출 김일란 · 홍지유 감독]

촛불 사이로 고개를 들어 올리면 파란 비닐로 감싸놓은 망루가 검은 하늘을 향해 솟아있었다. 곳곳이 검게 그을린 건물, 거칠게 깨어진 유리창, 아무리 애를 써도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파란 망루. 2009년 1월 20일 새벽,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다섯 명의 평범한 사람과 또 한 명의 평범한 사람이 살아서 내려오지 못했던 걸까. 다시 촛불을 향해 고개를 떨구면 슬픔과 분노, 패배감과 무력감으로 뒤엉킨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영화 한 편이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갔던 우리를 다시 용산 남일당 건물 앞으로 불러 모은다. 영화는 이야기한다. 다시 한 번 진실을 보라고. 진실이 은폐됐던 과정을 똑똑히 목격하라고. 용산참사를 다룬 영화 <두 개의 문>의 김일란 · 홍지유 감독을 대학로에서 만났다.

▲ <두 개의 문>을 연출한 김일란 · 홍지유 감독 ⓒ 한수진

<두 개의 문>은 용산 철거민 진압 작전에 투입됐던 경찰특공대원들의 법정 진술을 토대로 2009년 1월 19일 아침, 경찰특공대장에게 걸려온 한 통의 전화가 다음날 아침 '용산 참사'로 이어지기까지 25시간을 재구성한다.

“재판에서 만난 철거민들은 자신이 지금 겪고 있는 상처와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에 대해 애써 침착해 하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남겨진 가족들, 같이 싸웠던 철거민들을 걱정했다. 그래서 더 다큐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분들의 명예회복 없이 이렇게 재판이 끝나면 서로에게 너무 상처가 될 것 같았다.” (김일란)

상식에서 벗어난 은폐의 과정이었던 용산 참사 재판

용산 철거민과 연대하는 인권활동가이자 미디어 활동가로 재판정에 들어갔던 두 감독은 재판 과정이 “상식에서 벗어난 은폐의 과정”이었음을 목격했다. 홍지유 감독은 “사람들은 흔히 법정이 억울함을 호소하는 공간이라고 말하지만, 우리가 경험한 법정은 억울함을 호소할 수 없는 공간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무엇이 부당하고 얼마나 억울한지, 무엇이 개인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고, 왜 침해 당했다고 호소하는지는 법정에서 중요한 증거도, 필요한 증언도 아니었다.” (홍지유)

법정은 참사의 피해자인 철거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았다.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사망한 사건이었음에도 검찰은 오로지 화재와 경찰관 사망의 가해자로 철거민 6명을 기소했다. 철거민 5명의 사망에 대해서는 누구도 기소하지 않았다. 철거민들은 그날의 상황을 자신의 입장에서 호소할 기회를 처음부터 박탈 당했다.

그런데 법정에 증인으로 선 경찰특공대원들 역시 자신의 행위에 대해 충분히 변론하거나 경찰 조직의 책임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말하지 못했다. 그들은 일개 순경이기 때문에, 자신은 명령에 충실하도록 훈련되었으므로, 자신에게 떨어진 명령 이외의 것을 알지 못하고 관심 갖지 않았다.

경찰특공대원들이 보고, 듣고, 느낀 것을 모두 털어놓았다면 용산 참사의 진실은 쉽게 그 모습을 드러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재판을 거듭할수록 진실은 겹겹이 감춰졌고, 진실에 대한 의혹만 커져 갔다.

두 감독은 경찰특공대원의 진술에서 비롯된 의혹에 주목했다. 경찰특공대원들이 작전을 마친 직후 작성한 진술서와 법정 진술을 모아 퍼즐을 맞춘다면 진실이 드러날 거라고 생각했다. 누구는 왜 용산 참사를 다룬 다큐 영화에서 철거민이나 유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지 않았냐고 묻는다. 그런데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누구의 말을 듣는가보다, 누구의 말을 어떤 마음으로 듣고, 무엇을 발견하는가 하는 게 더 중요하다.

“경찰 특공대에게 반대 심문을 하면서 철거민들이 얼마나 억울한 입장에 놓여 있었고, 부당한 판결을 받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김일란) 

관객이 사건의 목격자가 되어 현실을 고민하다

<두 개의 문>은 영화를 보는 이들에게 철거민에 대해 감정 이입을 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목격자로서,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용산 참사를 앞에 두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영화 후반부, 피해자가 가해자로 뒤바뀐 재판 결과에 통곡을 하는 유가족을 마주하면 이 지점이 더 명확해진다.

“재판이 그렇게 끝났을 때 그 공간에 있던 나와 같은 사람들, 즉 목격자들은 누구나 똑같이 발을 동동 구르고, 절망과 무기력함에 울었을 거다. 전재숙 씨가 통곡을 하는 순간에 모두가 같은 마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김일란)

김일란 · 홍지유 감독은 영화를 만든 감독이기 이전에 용산 참사의 목격자였다. 두 감독은 솔직히 영화를 만드는 내내 객관적일 수 없었노라고, 항상 뜨거운 감정으로 영상을 마주했다고 고백했다.

다시 영화를 곱씹어보고, 감독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보니 관객인 나는 영화 밖에서도, 영화 안에서도 목격자였음을 발견하게 됐다. <두 개의 문>을 보면서 마치 내가 1월 20일의 남일당 건물 앞에 서 있거나 재판정에 앉아 있는 것처럼 느껴진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영화는 작은 모니터를 통해 3년 전 1월 20일 용산 남일당을 체험하게 했다.

▲ 영화 <두 개의 문> ⓒ 시네마달

김일란 감독은 “사유의 공간을 극장 밖까지 확장하려면 보는 것을 넘어 경험을 해야 가능할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감독의 ‘의도’였다. 영화가 자신의 문제가 되어, 영화가 던진 질문을 고민하고 답하고, 나누고, 답을 찾기 위해 행동하는 것. 그래서 영화의 당사자들과 관객이 만나 연대하는 것.

그렇다면 김일란 · 홍지유 감독의 의도는 영화의 개봉과 함께 이미 맞아떨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트위터에서, 술자리에서, 일터에서 <두 개의 문>을 매개로 다시 용산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영화를 매개로 용산에 대한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것이 작지만 분명한 계기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3년 전 풀지 못했던 매듭을 지금이라도 다시 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힘이 모이길 기대한다. 당장 9월에 계획하고 있는 국정조사를 통해 김석기와 조현오 전 경찰청장을 출두시키고 입을 열게 하는 것이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홍지유)

영화를 만든 3년은 치유의 과정이었다

영화를 만드는 3년이 ‘치유’의 과정이었다는 두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용산'을 다시 마주하게 됐다. 용산을 떠올리면 항상 마음 한 구석에 커다란 돌덩이가 가라앉아 있었다. 영화를 보는 2시간 동안 그 무거움이 마음을 치고 올라와 힘들었다. 3년 전에 우리가 그런 일을 겪었다는 것이, 해결하지 못했다는 것이, 아직도 전혀 달라짐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는 것이 무서웠다.

“영화를 작업하는 3년 동안 용산 참사와 관련해 내가 무언가 하고 있고, 고민하고, 감정을 해소하고 있어서 덜 상처받지 않았나 생각한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현실을 대면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우리에게는 작업의 과정이 치유의 기회가 됐다. 우리도 만약 누군가가 만든 용산 영화를 3년 만에 대면했다면 '멘붕'(멘탈 붕괴; 정신적으로 충격을 받은 상황)이 왔을 거다.” (김일란)

그러니 우리 함께 영화를 보자. 용산에 마음의 짐을 느끼고 상처 입은 사람들은 치유를 위해, 용산을 몰랐던 사람들은 진실을 바로 알기 위해 모두가 반드시 이 영화를 봐야 한다. 그리고 용산의 기억을 다시 불러들여서 용산을 이야기하자. 그래서 은폐되었던 진실을 밝히고 이제는 끝을 맺자. 또 다른 용산이 이어지지 않으려면 우리가 풀지 못한 밀린 숙제를 우선 끝마쳐야 한다.

<두 개의 문>은 서울, 인천, 부산을 비롯해 전국 10개 도시, 20개 극장에서 6월 21일부터 상영 중이다. 개봉 일 주일, 특히 첫 주말에 매진을 달성하면 상영관이 더 늘어날 수 있고, 더 많은 사람들이 <두 개의 문>을 볼 수 있다. 이미 서울의 여러 극장에서 매진이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지금 바로 예매 사이트로 투쟁!

여성주의 문화운동 단체 ‘연분홍치마’를 후원해 주세요
 

이 영화는 김일란 · 홍지유, 둘이서 만들었다기보다 ‘연분홍치마’가 만들었다는 말이 더 맞을 거예요.”

영화 <두 개의 문>에 쏠리는 언론과 대중의 관심에 조금은 쑥스러운 듯 홍지유 감독은 말했습니다. ‘연분홍치마’는 김일란 · 홍지유 감독이 기반을 두고 활동하는 여성주의 문화운동 단체입니다. 2005년 기지촌 다큐멘터리 <마마상>을 통해 여성주의적 영상 및 문화운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3XFTM>(2008), <레즈비언 정치도전기>(2009), <종로의 기적>(2010) 등 사회의 권력 구조로부터 배제된 소수자의 삶을 조명하는 작품을 연달아 제작하면서 억압받는 이들과 연대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연분홍치마’가 더 많은 현장으로 달려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매듭이 될 수 있게, <두 개의 문> 관람과 더불어 안정적인 활동을 위한 재정 후원에도 손을 내밀어 주세요. ‘연분홍치마’ CMS 후원회원 가입을 원하시는 분들은 ypinks@gmail.com으로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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