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가수 이지상 씨] 평화는 그대로 놔 두는 것 … "베트남 학살과도 같은 구럼비 학살을 멈춰라!"
그는 분주해 보였다. 지진 피해를 입은 조선학교를 지원하는 토크 콘서트 ‘몽당연필’ 마지막 공연을 위해 인터뷰 다음날인 6월 22일 새벽 일본으로 떠난다고 했다. 가기 전에 그가 성공회대학교에서 맡고 있는 수업 ‘노래로 보는 한국 현대사’의 성적 처리도 해야 하고, 밤에는 라디오21의 ‘사람이 사는 마을’ 방송도 해야 한다. 요즘은 노래가 아닌 ‘강연’을 위해 이곳 저곳을 방문하는 일도 잦아졌다.
인터뷰를 위해 서울 연희동에 있는 이지상 씨의 옥탑방 작업실에 갔을 때, 그의 옆에는 ‘노래 듣고 울어 보기’라는 제목의 성공회대 학생들의 보고서가 쌓여 있었다. 사람마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정의 종류가 다른데 노래 부르는 사람으로서 '슬픔'에 가장 민감한가 물었다. 그는 “사람은 감정의 복합체라서 몸에 있는 장기의 숫자만큼 다양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무엇이 더 두드러진 감정이라기보다는 어떤 상황을 만나느냐에 따라 다르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답했다.
"어렵고 고통받는 사람들로부터 에너지를 받는다"
<폐지 줍는 노인>, <아이들아 이것이 우리 학교다>, <오늘도 한 아이가>, <사이판에 가면> 등 고단하고 외로운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 세상과 역사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향한 노래를 만들고 불러온 그는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온 사람들에게서는 나에게 전해지는 에너지가 없다”고 말했다.
“어렵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느낀다. 나는 그 에너지를 전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노래에도 슬픔이 묻어 나온다. ‘나의 외로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지만 타인의 외로움과 고통을 느낄 때는 나도 외롭다.”
“그냥 ‘나의 이야기’다. ‘연민’이라는 단어는 나와 타자와의 구별점이 있다. 그 구별점을 사이에 두고 타자를 향한 선한 마음을 품는 상태다. 그러나 나는 내 스스로 그런 삶을 산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울고 있는 한 아이’가 곧 나다. 우는 이유는 다르겠지만 나도 한 명의 울고 있는 아이다. 내 모습처럼 보인다.”
울고 있는 한 아이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던 그가 이번에는 베트남 국민 시인 ‘탄타오’와 제주도 강정에서 해군기지 건설을 막기 위해 싸우고 있는 ‘문정현 신부’를 함께 노래했다.
이지상 씨는 2011년 7월 제주 전교조가 요청한 강연 때문에 제주도에 갔다. 강연을 끝내고 구럼비를 찾았을 때, 그는 베트남 전쟁 때 일어난 '밀라이 학살'을 떠올렸다.
“‘학살’이다. 사람들은 보통 구럼비 바위에 대해 자연 파괴 정도를 말하지만, 자연은 궁극적으로 모든 것을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로 자연 가운데 하느님도 본다. 사람을 죽이는 것이나 구럼비를 죽이는 것이나 똑같이 학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슬픔을, 때로는 외로움을 담아 노래했던 그가 이번 노래에는 ‘화’를 담았다.
“평화는 그냥 놔두는 것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깨지는 것이다. 그 누군가가 자본이고 분단인 것은 분명하다. 이 사회의 다른 욕심이 거기를 침범하지 않으면 된다. ‘너희 침범하지 말아라!’ 하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는 “‘돈 많이 벌어서 나중에 좋은 일할 것이다’라는 말을 믿지 않는 것과 같이 ‘무기를 만들어서 평화를 지킬 것이다’란 말도 믿지 않는다”고 한다.
"있어야 할 것은 있고, 없어야 할 것이 없는 사회 … 그것이 평화다"
<탄타오와 문정현>은 옥탑방 작업실에서 혼자 노래를 녹음한 후,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영상 작업도 했다. 사진작가 노순택 씨와 베트남 평화의료연대에 연락해 사진을 받고 라디오21을 빌려 촬영했다. 영화사 비플러스 픽쳐스에 쫓아가 편집도 했다.
“있어야 할 것들이 있는 사회, 없어야 할 것들은 없는 것이 평화다. 인권, 자연과 생명에 대한 존중, 개인에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이에게 골고루 분배되는 재화 등이 있어야 할 것들이다. 있어야 할 것들이 없다면 만들어야 한다. 없어야 할 것들이 자꾸 생기면 없애야 한다. 만들고 없애는 일련의 행위 자체, 추구해 나가는 모든 과정이 평화다.”
이런 의미로 그는 최근 강정마을에서 벌어지는 전쟁과도 같은 나날에 대해 “경찰이 시민들을 때리는 폭력과 주민들이 맞서는 것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마을 주민들과 지킴이들의 행위 자체가 본질적으로 평화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요즘, 어찌된 영문인지 공연보다 강의를 더 많이 다닌다는 그는 일본에 다녀온 후 7월 초,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탄다고 했다. 이번이 네 번째다. 그는 분단으로 ‘섬나라’가 돼버린 나라에서, 대륙으로 향한 끊어진 길을 회복하자는 취지로 만든 단체 ‘희망레일’의 공동대표이기도 하다. 7월 14일 시베리아에서 돌아오면 북한을 향한 철도 침목을 놓기 위해 콘서트를 열 계획이다.
조선학교에, 강정에, 속으로 울음 삼키고 있는 외로운 이들에게 노래로 내미는 손이 큰 힘이 되겠다고 말하니 이지상 씨는 “모르겠다. 힘이 되는지. 힘이 된다면 고마운 일이지만 힘이 안 되도 그냥 한다”며 웃었다.
그의 책 <이지상, 사람을 노래하다>에서 그는 자신의 노래와 글에 대해 말했다.
“평화를 갈망하는 순간부터 나는 그것을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 갈망이 현실이 되어 더 이상 바랄 필요가 없을 때가 기다림의 끝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발 딛고 희망하며 사는 사람들은 모두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여기, 내 노래와 글은 그 기다림의 방식입니다.”
울고 있는 한 아이 옆에서, 그 아이가 나인 양 함께 울고 있는 이지상 씨. 낮디 낮은 목소리로 부르는 그의 노래가, 오늘 다른 한 구석에서 울고 있는 이 땅의 '작은 사람들'을 위로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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