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위원장 이기헌 주교 "남북한 민간 · 경제 교류가 중요 … 정부가 허용, 지원해야"
'북한 복음화를 위해 남한 교회가 먼저 민주적이고 정의로운 공동체 돼야 한다'는 주장 제기돼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이하 민화위)가 위원장 이기헌 주교의 주례로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기원 미사’를 봉헌하고 ‘통일, 이익인가? 손해인가?’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었다. 6월 20일 오후 2시부터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 성당에서 열린 이 행사에는 60여 명이 참석해 한반도 평화와 분단 극복을 위해 기도하고 토론했다.

▲ 이기헌 주교(앞줄 가운데)와 사제단이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기원 미사'를 공동집전했다.

이기헌 주교 "남북한 민간 · 경제 교류가 중요 … 정부 차원에서 허용, 지원해야"
"우리 스스로 화해와 일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기도해야"

이기헌 주교는 강론에서 “금년으로 62주년인 6·25를 맞아 우리 민족의 불행했던 일을 기억하고 민족의 화해와 일치, 평화와 통일을 기원하며 지난 주일(6월 17일)부터 한국 교회가 9일 기도를 드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 주교는 “지난해 말 북한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과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권력 계승을 상기시켰다. 이 주교는 “그로부터 6개월이 흐른 지금, 북한 내부는 과거와 다름없이 움직이는 듯 보인다”면서 “오히려 어느 때보다도 강경한 모습으로 남과 북이 대치 상황을 이루며 서로를 자극하는 말을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고 “군사력으로 남쪽을 위협하는 북한, 그런 위협을 규탄하며 북한을 책망하는 우리나라의 관계는 더욱 벌어지고 있으며, 극으로 달려가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화해와 일치, 통일을 위해서 무엇보다 우선시되어야 할 것은 남북의 잦은 만남과 교류”라며 “종교, 사회, 문화 등 민간 교류가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허용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또한 “현재 남·북한이 안고 있는 경제 문제의 가장 확실한 해법은 남북 경제 교류 · 협력에 있다”면서 “머리를 맞대고 마음을 모은다면 경제적 동반 성장이 충분히 가능할 것이며, 이런 과정을 통해 함께 성장하며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높아지고 미래 통일 시대의 혼란을 줄여주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주교는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시작해야 할 것은 화해와 일치를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 또 기도드리는 일”이라며 “화해와 일치를 위해 최선을 다할 때, 평화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선물로 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민족화해위원회의 토대가 됐던 북한선교위원회가 처음 시작될 때,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기도”였다며 “한 달에 한 번, 추우나 더우나 임진각 들판에서 묵주기도와 미사를 드렸다. 당시 가슴에 ‘기도로 통일을’이라고 적힌 리본을 달고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고 전했다. 또한 자신이 교구장으로 재임 중인 “의정부교구도 어려운 한반도 상황을 생각하며 금년에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기원하는 묵주기도 7천만 단 바치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소개했다.

▲ '통일, 이익인가? 손해인가?'를 주제로 열린 심포지엄에 참여한 발표자와 토론자들. (왼쪽부터) 강주석 신부, 배해동 대표, 사회자 윤여상 박사, 이영훈 박사, 토론자 김영윤 박사.

강주석 신부 "교회도 분단의 원죄에서 자유롭지 않다 … 교회의 참회가 민족 화해의 밑거름"
"자본주의 사회에 뿌리내린 남한 교회의 부정적 측면 회개하며 남북한 복음화 지향해야"

이어진 심포지엄에서는 이영훈 박사(SK 경영경제연구소)가 ‘통일 편익, 통일 방안 그리고 새로운 대북정책의 모색’에 관해, 배해동 태성산업 대표가 ‘북한 개성공단의 현황과 근로자들의 생활 모습’에 관해 발표했다.

▲ 강주석 신부
한편, 토론자로 나선 강주석 신부(의정부교구)는 ‘교회의 입장에서 본 통일의 이익’에 관한 의견을 밝혔다. 강 신부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업을 중재하는 교회는 자신의 지상 과제인 선교를 단순히 사회적 · 경제적 가치로 평가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 교회가 지향하는 통일의 ‘이익’은 단순히 신자 수나 본당 수 증가와 같은 양적인 성장의 차원으로 국한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강 신부는 “북한의 복음화, 동시에 남한의 복음화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면서 “지나온 역사를 볼 때, 한국 교회는 일치의 사명을 온전히 수행했다고 자신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교회는 먼저 ‘하느님과 인류의 일치의 표지이자 도구’로서 역할에 충실했는지에 대해 반성할 필요가 있다”며 “지속되는 민족 공동체의 분단 상황은 교회로 하여금 참회하도록 요청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상 안의 교회’는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 스스로도 분단의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서 그는 “우리는 통일사목이라는 측면에서, 십자가를 통해 하느님께서 이룩하신 화해를 이 땅에 실현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런 맥락에서 분단에 대한 교회의 참회는 민족의 화해를 위한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신부는 “우리는 반공의 시대를 살아왔고 분단 의식에 사로잡혀 있었다”며 “1949년에 주교들이 분단 정권을 지지하며 아주 강한 반공적 메시지가 담긴 연합교서를 발표”한 것과 “1975년, 베트남이 공산화되는 상황에서 한국 교회가 강력한 반공주의를 정부에 요구한 역사가 있다”고 사례를 제시했다.

또한, 강 신부는 “교회가 지향하는 통일은 지리적인 국토의 통합이나, 정치적으로 대립되었던 제도와 경제적으로 상이한 체제를 하나로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녀야 한다”면서 “참된 복음의 가치가 실현될 수 있는 새로운 구원의 상황”을 제시했다. 그는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희망했던 초대 교회 공동체들의 모습은 우리 민족이 지향해야 할 통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전했으며 “교회가 지향하는 통일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해방의 구원이 전해질 수 있는, 이 땅에 궁극적인 평화를 가져오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강 신부는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를 강조하며 “남한 사람이 볼 때는 북한 사람이 너무 다르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데, 새터민(북한이탈주민)을 인터뷰 해보면 남한 사람을 겉 다르고 속 다른 이중적인 모습으로 본다”고 전했다. 강 신부는 “서로가 다른 가치관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열 가지 중 하나라도, 백 가지 중 하나라도 북한 사람에게서 배울 것은 없는지 생각해보는 것이 우리 교회가 지향하는 통일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한국 교회가 민족의 일치와 화해를 위해 투신하는 성사적 표지가 될 수 있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민주적이고 정의로우며 일치된 공동체가 되어야 할 것”이라며 “자본주의 사회 안에서 뿌리내린 남한 교회의 부정적 측면들을 회개하는 노력과 함께 남북한의 복음화를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 교회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더 복음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 신부는 최근에 인터뷰한 어느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 와서 물질주의에 물들어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고, 이게 무슨 예수님의 가르침인가 생각하고 다시는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을 봤다”고 전하며 “혹시 우리가 자본주의의 부정적인 면모에 물들어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자”고 권했다.

북한 선교에 대한 한국 가톨릭교회의 입장은?
이은형 신부 "북한에서의 공격적 선교는 위험 … 끊임없는 교류 통해 서로가 변해야"

질의응답 시간에 한 참가자는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 체제가 변해야 하는데 교류 · 협력도 좋지만, 신앙이 먼저 들어가 내부에서 변화돼야 하지 않는가 생각한다”면서 “가톨릭교회는 북한 선교에 대해 어떤 방향을 정하고 있는가” 물었다.

▲ 이은형 신부
이에 대해 주교회의 민화위 총무 이은형 신부는 “북한 내에서 공격적 선교를 감행하는 것 자체가 위험스럽다”며 “향후 남북 교류가 확대되고 종교적 교류까지 활성화될 수 있을 때 누군가 들어가 어우러질 수 있도록, 교회 차원에서는 북한 복음화를 위해서 우리 안에서 착실히 준비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이 신부는 “교회는 합법적 틀 안에서 움직였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연탄 전달 때문에 개성 지역을 방문할 때, 수녀님 한 분이 봉사자로 함께 갔는데 수녀 복장을 처음 본 북한 주민들이 ‘저 이상한 복장을 한 여성 동무는 누구냐’고 물어서 친절히 설명해줬다”며 “이런 과정이 그들을 변화시키는 소중한 기회며, 끊임없는 교류 · 협력을 통해 서로가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그는 “현재 북한 주민의 사고나 생활방식이 우리와 너무 다르다”며 “우리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북한에 들어가 무엇을 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북한 복음화를 위한 선교사 양성 등 이에 대한 준비를 지금부터 철저하게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남한에 들어온 북한이탈주민 중 가톨릭 신앙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있다”며 “이들을 선교사로 양성하는 일도 북한 복음화를 위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 신부는 “하나원에서 미사를 집전하며 분단되기 전 북쪽에서 세례 받은 신자를 딱 2명 만났다”고 전했다. 70, 80세가 다 된 할머니들이었다. 이 신부는 “북녘 땅에는 옛 신앙을 기억하는 분들, 신앙의 자유를 기다리는 분들이 분명히 있다”면서 “그분들과 함께하고 어우러질 시간을 만들기 위해 남북관계가 풀려야 하는데, 지금처럼 꽉 막힌 상황에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고 어렵다”고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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