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식의 삶과 노래]소통을 위한 아주 깜찍한 순교

 


1990년대 중반 어느 해.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돕기 위해 십여 년째 거리공연을 해온 명동성당 들머리에 실바람이 살랑인다. 이런 날은 감미로운 팝송이라도 몇 곡 부르고 싶다. 유신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1970년대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 그나마 숨통을 틔게 해주던 고마운 가수중 하나가 ‘사이먼과 가펑클’이 아닌가 싶다. 존 바에즈나 밥 딜런이 세상을 향해 반전을 노래하는 저항가수라면, 그들은 세상 한 가운데에서 사랑을 노래하는 전령사인 셈이다. 그들은 모두 노래를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 잘 소통한 셈인데, 그중의 압권은 누가 뭐라 해도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어’이다. 암울했던 그 시절 내 삶의 희망이요 등불이 되어준 그 노래를 지나간 회환을 담아 거리에서 자주 불렀었다. 그러면서 거듭거듭 스스로에게 세상과의 소통을 위한 다짐을 했다. 험한 세상의 다리가 되고 싶다고.

이어서 팝음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비틀즈의 ‘예스터데이(Yesterday)’를 불러본다. 폴 메카트니의 담담한 매력과는 달리 내 특유의 창법인 약간 간드러진 비음으로 불렀는데, 아까부터 열심히 듣고 있던 사람이 가까이 다가와서 말을 건넨다. 비록 의례적이라고 하지만 노래를 참 잘 한다거나 목소리가 아름답다는 얘기는 매일 들어도 싫지 않다. 그런데 서투른 발음으로 어색한 영어를 구사하는 이 일본인은 조금 의외였다.

“나는 비틀즈 세대(Beatles Age)지만 당신은 비틀즈 세대로는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그 시절 노래들을 그렇게 잘 부르는가요?”

나중에 알고 보니 이런 질문이었다. 당시 나의 외모나 옷차림이 지나치게 어려 보였고, 주변 사람들 모두 내 나이를 10년은 젊게 보았었기에 그의 질문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나이를 물어보니 우리는 불과 서너 살 차이였다. 그런데 나 또한 가뜩이나 영어가 부족한데다 버벅대는 일본식 영어발음에 신경을 쓰다 보니 전혀 엉뚱하게 알아듣고 말았다.

“아니 비틀즈가 에이즈에 걸렸다구요?”

몇 차례의 쌍방 교통정리 끝에 어렵사리 소통은 되었지만, 생각하면 정말 자다가도 웃을 일이고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이다. 그는 내 노래가 맘에 든다면서 내 목소리가 담긴 음반을 구하고 싶다고 했다. 참석중인 세미나가 끝나서 다음 날은 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기에 우편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더니 송료를 포함한 음반 값을 극구 사양에도 불구하고 손에 쥐어주었고, 모금함에도 엔화를 두둑이 넣고 갔다. 후일 내 노래가 담긴 음반 몇 장을 도쿄로 보내었는데, 명동 길에서 들었던 팝송보다 내가 만든 노래에 깊이 심취하면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그의 주선으로 도쿄를 비롯한 몇 개 도시에서 초청공연도 있었고 국내에도 없는 <기무전시꾸상(김정식)팬클럽>이 일본에서 처음 생겼고, NHK방송에서 한국어 공부를 익힌 몇 명의 팬들이 한 동안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좋아하는 가수에 대한 그들의 극성은 알아주어야 한다. 내가 노래하는 명동거리는 물론이고,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도 방문했으며, 내가 관심을 갖는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삶을 함께 실천하며 살고 싶어 했다. 그런 마음으로 한국에서 여러 개의 인권관련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가 며칠을 함께 지내기도 했다. 무엇보다 놀라운 일은 한국음식을 맛들이기 위해 시장에 가서 깻잎을 사다가 조리법대로 직접 담가 미리 먹어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다시 팝송 얘기로 돌아가 보자. 1970년대 젊은이들에게 팝송은 외국노래라기 보다 그저 대중가요의 한 부분이었다. 트로트를 빼고는 태부족이었던 그 시절에는 모두가 새로운 노래에 갈증을 느꼈고, 라디오에서 나오는 팝송을 우리말 표기로 따라 적어서 내용도 모르는 서양 노래들을 말도 안 되는 엉터리 발음으로 너나 할 것 없이 불러댔다. 얼마 전 <무르팍도사>라는 TV프로그램에 출연한 김혜자(가수 패티김의 본명)씨가 밝혔듯이, 당시 유일한 상설공연무대였던 미8군에서 노래했던 후일 유명가수들 대부분도 그랬다고 했다. 나 또한 상황은 다를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타고난 결벽증을 발동시켜 잘 사는 친척집이나 음반가게에 가서 쟈켓에 적힌 가사들을 적어왔다. 그리고는 사전을 찾아가며 노래에 담긴 뜻을 알아내고 나서 노래를 불렀지만 결과가 그리 신통한 것은 아니다. 그토록 감미로운 노래도 가사내용은 어처구니없는 것이 많았다. ‘당신이 내 곁을 떠나면 나는 누구와 양파를 까야하느냐’라거나 심지어 ‘농담을 하다가 침대에서 떨어져서 머리를 다쳤다’는 내용도 있었다. 우리말의 어감과 우리식 서정에 맞춘다면 결코 감미로울 수 없는 내용들이 영어로 표현하면 전혀 달라진다. 이것이 언어가 지닌 마력이다. 


시인이신 이해인 수녀님은 함께 강의가 끝나고 난 뒤풀이에 모인 사람들을 부추겨 내가 부르는 코믹송(웃기는 노래)을 즐기신다. 가끔씩은 경우에 따라 강의에 집중을 안 하거나 소통이 어려워지는 분위기가 느껴지면 강의 중에 청하기도 하신다. 사람들을 잠시 웃게 하여 강의 분위기를 쇄신시킬 수 있기에 조금 쑥스럽기는 하지만 못이기는 척 천연덕스럽게 하는 편이다. 다른 가수의 노래를 모창하거나 남녀 둘이서 부르는 노래를 혼자서 2인분을 해댄다거나, 장조의 노래를 단조로 부른다거나 포복절도를 할 정도로 가사를 패러디하는 것들인데, 그중의 압권이 사투리로 부르는 노래이다. 감칠맛 있고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옷 입혀진 노래들은 내가 전라도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정말 부르는 내가 생각해도 재미있다. 또한 이런 코믹송을 통해 잠시나마 소통을 이루고 나면 강의실 분위기가 한결 고조된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흐건 손목댕이 흔듬성 입가상에 이쁜 미소 짓음성~
땔싹큰 눈구녁에 검나게 고인 눈물 봐부렀네~잉
차창갓에 지댐성 맥없이 손목댕이 잡음성~
잘 가라는 말 한자리 다 못 허고 돌아서 울고 자빠졌네~잉

하얀 손을 흔들며 입가에는 예쁜 미소 짓지만
커다란 검은 눈에 가득 고인 눈물 보았네.
차창 가에 힘없이 기대어 나의 손을 잡으며
안녕이란 말 한마디 다 못하고 돌아서 우네.

(하남석의 「막차로 떠난 여인」앞 부분)

언젠가 가족처럼 지내는 노동수녀회의 종신서원식 뒤풀이에 모인 분들은 모두 눈물이 날만큼 웃었다. 엄숙한 서원식이 끝나고 식사를 한 다음에, 예식에 참석하신 가족 친지들과 손님들께 수도공동체에서 감사의 뜻으로 불러드리는 노래가 바로 사투리로 부르는 이 노래였기 때문이다. 서원식 전례음악을 맡은 내가 참석하신 모든 분들과의 소통을 위해 수녀님들께 이런 제안을 했고, 열린 수도생활을 지향해 왔던 공동체 가족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모두가 한 때 즐거울 수 있었다.

사투리를 잘 못 알아듣는 분들을 위하여 위와 같이 표준말 가사를 적은 자료를 미리 준비하여 게시하였음은 물론이다. 그 이후 많은 곳에서 코믹송 초청이 있었다. 그날 참석한 분들이 일터로 돌아가 당신들의 중요한 년말행사에서 그날의 소통 분위기를 다시 한 번 연출해보고 싶었겠지만, 내 일정 때문에 응하지는 못했다.

몇 년 전에 모 대학 영문학과 동문회를 후원하는 행사에 수녀님과 함께 초대되어 간 적이 있다. 명문대학의 명성에 걸맞게 호텔에서 만찬과 함께 진행되었는데, 수녀님께서는 시를 한 편 낭송하시고 나는 수녀님의 시로 만든 노래를 부르게 되어 있었다. 이윽고 차례가 되어 무대에 올랐으나 먹는 일과 사교에 바쁜 후원인 들은 예술과 소통할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그래도 수녀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어렵사리 낭송을 마치셨고 다음은 이미 소개된 대로 내가 노래를 할 차례이다. 노래라기보다는 그림에 가까운 <바다의 노래>는 부르는 이와 듣는 이가 하나 되었을 때만 한 폭의 수채화를 보는 것 같은 감동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오늘처럼 식사와 잡담 속에서는 오히려 먹는 일과 대화라는 친교를 방해하는 소음으로 느껴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의 소통은 어렵다고 생각되어 코믹송을 결심했고 참석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제가 노래 부르는 순서입니다. 그런데 프로그램에 적혀있는 노래를 부를 수 없어서 죄송합니다. 식사를 하면서 들을 수 있는 노래는 아니라서요. 그 대신 식사를 하시면서도 부담 없이 들으실 수 있는 코믹송을 하나 부르겠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비틀즈의‘예스터데이(Yesterday)’를 사전적 번역을 마친 후 전라도 사투리 버전으로 들려드리겠습니다. 지금껏 익숙하게 듣고 불렀던 노래가사 안에 어떤 내용이 담겨있는지 한 번 들어 보세요”

어저께. 걱정 까심 모두 사라졌네. 시방 여그 있는 것 같어.
오 나는 믿어부러~ 어저께.
느닷없이 나는 반쪽 되야 부렀네. 머신가 안존 조짐 보이네.
오 어저께부터 뜬금없이.
멋땀시 그녀는 말 한 자리 없이 떠나야 했으께라우~.
난 씨부렁거렸어. 머신가 잘못 됐어 그리운 어저께. 어 저 께.
어저께 사랑은 심심풀이 껌땅콩. 나는 숨을 곳이 필요혀.
오 나는 믿어부러~ 어저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밥을 먹을 수 없을 만큼 웃고 있었다. 그렇게 웃는 소리 때문에 노래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했는데도 사람들은 자지러졌다. 내 생각에는 노래의 내용이 웃기는 것은 두 번째이고, 고상하게만 여겨졌던 불후의 팝송명곡이 그토록 망가진 데 대한 통쾌함이 더 큰 것 같았다. 몇 개의 다른 순서 후에 조영남 씨가 피아노 앞에 앉았다. 폭발적인 가창력과 관중을 휘어잡는 그만의 끼를 십분 발휘하여 ‘화개장터’‘불 꺼진 창’‘마이 웨이My way)’등 자신의 히트곡을 불렀고, 앵콜을 외쳐대는 관중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세 곡이나 더 불렀다. 노래를 마치고 출연자들 자리에 합석한 조영남 씨가 내게 다가왔다.

“아. 대단하시네요. 제가 수녀님의 시를 좋아하기 때문에 시로 만든 노래를 기대했었는데, 아까 들은 노래는 기대 이상이었어요. 내가 남의 노래를 그렇게 집중해서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칭찬으로 듣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제가 성량이 작아서 웬만큼 소리를 질러 가지고는 전달도 안 되겠더라구요. 제 살 길을 스스로 찾은 거지요.”

 

 

 

 

 



노래란 3분에서 5분 사이의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동안에 상대의 교감을 끌어내야 하는 정교한 예술장르이다. 그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많은 가수들이 음향효과를 비롯하여 화장, 의상, 몸짓 등 온갖 치장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무리 그리해도 노래라는 장르가 지닌 본래적인 소통방식을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본래적인 방식으로의 소통이 어렵거나 불가능하다고 여겨진다면, 차라리 과감하게 노래라는 장르의 한계를 넘어서서 코믹송으로의 소통을 시도해 보고 싶다.

억지스러운 치장보다 장르를 바꾸는 쪽이 내게는 더 바람직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하느님께서 사람들을 끌어올려 당신의 높이에 맞추게 하지 않으시고, 그토록 사랑하는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스스로 망가지고 낮아진 모습으로 세상에 내려오신 것처럼. 내가 가끔씩 코믹송을 부르고 싶은 이유이다. 

2008.11.15.

 김정식/가수 겸 작곡가로 생활성가의 개척자이며, 파리국립음악원에서 그레고리안과 지휘법을 공부하였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돕기위한 자선음악회와 환경보전과 인권회복을 위한 사회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으며 어린이들을 위한 노래와 예술가요 및 연주곡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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