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사형폐지국가 선포식

지난 10월 10일은 '세계 사형 폐지의 날'이다. 이날을 맞이하여 사형폐지국가 준비위원회는 한국언론재단 프레스센터에서 ‘사형 폐지 국가 선포식’을개최하였다.

10년 동안 사형 집행이 없으면 ‘사실상 사형 폐지국가’로 분류하는 국제 기준에 따라, 1997년 12월 30일, 살인강도와 존속상해 등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23명에게 사형을 집행한 이후 지난 10년 동안 단 한 건의 사형도 집행되지 않은 우리나라는 12월 30일이면 ‘사실상 사형폐지국가’가 된다.

현재 사형수는 64명으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특별법’이 국회의원 175명의 서명 발의로 국회에 계류되어 있다.

이날 선포식에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롯하여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통령 후보, 문국현 전 유한 킴벌리 사장, 권오성 KNCC 총무, 불교 조계종 지관 스님, 워릭 모리스 주한 영국대사, 마틴 맥퍼슨 국제앰네스티 국제법률기구 국장 등 인권·종교 관계 지도자 300여 명과 20여 시민단체 관계자들이 참석하여, 사형 폐지국 선포식에 동참하였다.

자신 역시 사형수 가운데 한 사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기조연설을 통해 “사형집행을 아무리 강행하여도 범죄는 줄지 않고 오히려 증가하는 추세마저 보이고 있다.”며 “사형제도를 폐지함으로써 사회 분위기와 흉악범의 정서를 순화시켜 극악범죄를 감소시키는 것을 기대할 수도 있다.”고 하였다. 또한 “인간의 오판이나 독재 권력에 의해서 무고한 생명을 말살시킨 경우가 많은데, 인혁당 사건 하나만 봐도 사형제가 폐지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면서 “오늘의 선포식을 계기로 생명에 대한 외경, 세상의 평화,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의 메시지가 온 국의 마음속에 퍼져 나가를” 기원하였다.


안경환 위원장 역시 “우리 국민의 법감정이 사형제 폐지를 반대한다지만, 영국과 프랑스 역시 대중적 정서를 극복하고 사형제도를 폐지하였다.”며 사형제도는 원칙과 현실 두 측면에서 마땅히 없애야 한다고 하였다.

선포문에서 준비위는 “사형은 현대 형벌의 기능이 지니고 있는 ‘교화’의 가능성을 전면 부정하는 것이고, 범죄 발생에 커다란 여향을 미치게 되는 사회의 불완전한 요소들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전적으로 범죄를 저지른 개인에게만 책임지우는 비겁하고 무책임한 행위”라고 강조하면서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사형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근거 없는 논리이다. 사형이 집행된다고 해서 피해자들의 고통이 덜어지거나 피해가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국가와 사회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정신적·제도적 지원을 통해 그들을 안정시켜 사회활동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일”이라고 못 박아 강조하면서 “사실상 사형폐지국가로 접어든 이때에 더 늦추지 말고 17대 국회 안에 이 법을 통과시켜 ‘사형폐지국가’를 완성하고, 인권 선진국’으로의 큰 걸음을 내딛기”를 다짐하였다.

이날 사형제도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 가운데 누구보다도 눈길을 끈 사람은 고정원 씨였다. 지난 2003년 10월 9일, 연쇄살인범인 유영철에 의해 늙으신 어머니와 사랑하는 아내 그리고 4대 독자 아들을 잃은 그이가 연단에 서자 장내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제 파주에 있는 공원묘지를 찾았습니다. 한동안 그쪽을 향해 눈길을 주는 것조차 꺼렸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니와 아내 그리고 4대 독자인 아들까지 온 가족을 한꺼번에 떠나보낸 지 4주기를 맞았습니다.” 말 끝에 그이는 잠시 울먹였다. “(가족이 피살된 이후) 아무도 만나지 않으며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사형수들의 대모’라는 조성애 수녀님을 알게 되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지옥이 있다면 그때까지 겪은 고통이 지옥입니다. 그 후 모든 게 생소한 딴 세상으로 건너왔습니다. 60년 넘게 살면서 생각조차 않은 세상을 살게 되었습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형은 부정의한 제도, 불의한 제도입니다. 국가나 사회가 보호해 주었으면 새로운 삶을 살았을 그들이기에 더욱 안타깝습니다. 사형제도는 범죄를 막지 못하는 공동의 책임을 가족들에게만 책임 지우는 무자비한 제도”라며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였다. 또한 “오늘 이 자리는 저와 같은 이들에게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과 용기를 주는 자리입니다. 하루 빨리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모순에서 벗어나 생명이 주는 기쁨을 나눌 수 있기를” 기원하였다.

우리나라가 가입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30개 국가 중 사형제도를 유지하는 나라는 오직 미국과 일본 그리고 대한민국이다. 현재 세계 133개국이 법적 또는 실질적으로 사형제도를 폐지했으며, 유엔은 이미 오래 전에 전 세계 국가의 사형제도 폐지를 천명하였다.

우리나라가 사실상 사형폐지 국가에 들어섰다 하나, 사실상 사형제도 폐지와 법률적 사형제도 폐지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 언제라도 사형을 집행하면 64명의 사형수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사형제도 폐지 법률안을 통과시키려는 효과적인 노력이 더욱 필요하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는 11월 21일 “언론 보도가 사형제도 여론에 미친 영향”을 주제로 세미나(프란치스꼬 교육회관)를 개최하며, 사형폐지국가 선포식 준비위원회는 11월 30일 세계 사형의 날을 맞아 “City of Lights" 행사를 열며, 12월 30일 ”대한민국, 사형폐지국가 선포 축하행사“를 열 계획이다.

/박오늘 2007.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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