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나 셋 공동체

10월 10일, 점심시간이 막 끝나갈 무렵이었기 때문일까, 아님 엄청난 규모의 시청 건물에 비하여 왜소해 보이는 사람들 탓일까? 김계숙(아녜스, 43) 씨가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시청 현관 앞은 좀 썰렁한 느낌이었다. 외롭게 앞뒤로 샌드위치 호소문을 걸고 서 있는 김계숙 씨를 만났다. 기자와는 안면을 트고 지낸 지 수년 되었으나, 최근엔 참 오랜만에 만나는 것이다. 2시부터는 <월평공원 갑천 지키기>운동과 관련한 기자회견이 있었다. 대전의 환경단체들이 중심이 된 시민대책위와 지역주민들이 모인 주민대책위에서 월평공원을 관통하는 도로 개발에 반대하여 진행한 1인시위가 100일째 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김계숙 씨의 1인 시위

주민대책위는 김계숙 씨가 활동하고 있는 <둘이나 셋 공동체>가 주축이 되어 만들어졌는데, 이들 주민들은 월평공원과 도솔산 인근에 사는 주민들로서 생태 공원인 120만평 월평공원이 주는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다가 난 데 없는 8차선 터널 및 도로공사와 더불어 개발바람을 맞은 것이다. 시청에서 수년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는 이 지역 개발사업으로 수만 채의 아파트가 추가로 들어설 계획인데, 이미 아파트 보급률이 100%를 넘어섰다는 데, 추가 아파트 건설이 납득되지 않는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김계숙 씨는 “이 개발사업이 공원의 습지 생태계에 대한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며 편리함과 속도도 좋지만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려도 필요하다”면서 더 열심히 싸울 것이라고 말한다. 대전시의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지역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시민 환경운동에 깊이 개입하게 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며 연신 감사를 표시한다. 김계숙 씨는 그동안 지난 10월 7일에 있었던 ‘월평공원을 시민의 품으로’라는 주제로 걷기대회를 열었던 것처럼 주민들이 자연스럽게 이 일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계속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주민들은 시위를 하더라도 운동권처럼 구호를 외치는 게 어색하고 불편하므로 대신에 “OO 해주세요!” 식의 ‘청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주민대책위(대표 조세종, 43)에서는 그동안 시청 앞에서 아이들과 함께 “월평공원을 살려주세요.” “수달을 살려주세요.”와 같은 방식으로 청원운동을 해 왔다. 아무튼 이러한 노력들이 효과가 있었는지 올 11월에 강행하려던 개발공사가 내년 5월경으로 연기된 상태이다. 김계숙 씨의 남편이 조세종 씨인데, 오늘 아침녘에 그도 한 시간동안 1인 시위를 하고 갔다.

빵을 나누고 싶다

김계숙 씨가 함께 하고 있는 <둘이나 셋 공동체>는 1999년 겨울에 시작되어서 올해로 8년차에 들어갔다. 김계숙 씨의 남편인 한라공조를 다니던 조세종(디오니시오, 43) 씨가 어느날 문득 “굶주린 이들에게 빵을 나누고 싶다”고 제안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들 부부는 예전부터 한현(아녜스, 60) 씨가 발행하던 <참사람되어>라는 잡지를 구독하고 있었는데, 영성을 통해 세상에 깊이 투신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비공식 간행물이었다. 조세종 씨는 여기에 소개된 도로시 데이와 피터 모린이 주도했던 가톨릭일꾼공동체의 생각과 활동을 눈여겨보고 자신도 그렇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이런 바램이 주변에 호응을 얻어 최지연, 김은숙, 이지연 씨의 가정과 함께 처음 <둘이나 셋>이라는 소식지 발행과 더불어 공동체를 시작하였다. ‘둘이나 셋’이라는 이름은 “둘이나 셋이나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 나도 함께 있겠다”는 성경 말씀에 따른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대전시 내동 코오롱 아파트 주민이며 가톨릭신자다.

주민들이 직접 써서 시청 앞에 걸은 개발반대 프랭카드


처음엔 어디에 가야 ‘길 위에 사는 사람들(노숙인)’을 만날 수 있는지도 몰랐다. 무료급식소를 하던 ‘성모의 집’에 가서 수녀님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결국 대전역에 나가서 빵을 나누기로 하였다. 처음엔 주전자 1개와 차, 휴대용 가스렌지, 샌드위치 빵 100개를 담은 상자 하나를 들고 나가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지금은 점점 봉사자도 늘고 이 공동체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지금은 김밥 300줄을 들고 한 달에 두 번 첫째 주와 셋째 주 토요일에 대전역으로 나간다.

이런 이야기들을 김계숙 씨의 집에서 다른 회원들과 둘러앉아 나누는데, 김계숙 씨 막내딸 호경이가 학교에서 돌아왔다. 오늘 김밥 싸서 소풍을 다녀온 모양이다. 김밥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이 웃으며 말한다. 그렇게 김밥을 싸고도 소풍날에 김밥이 먹고 싶더냐는 것이다.

둘이나 셋 회원들

연대와 평화주의, 환경

조세종 씨는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지금은 대학에서 강사로 일하고 논술학원에서도 강의한다. 공동체의 다른 분들도 자영업자, 감정평가사, 택시기사, 특수학교 교사, 공무원 등 직업이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열심히 참여하는 사람들은 단연 지역공동체의 주부들이다. 유행처럼 자녀들을 세 명씩 낳은 가정이 많다는데, 김계숙 씨가 병원이 아닌 집에서 이들의 아이들을 많이 받아주었다. 고귀한 생명의 탄생을 함께 하며 함께 출산의 아픔과 기쁨을 나눈 사람들이기에 더 친자매형제 이상으로 신뢰와 정이 흐르게 되었다. 때마다 주민들이 건네주는 단무지와 계란 한 판에도 다른 이웃을 향한 마음이 담겨 있기에 회원들에게 기쁨이 고인다.

둘이나 셋 공동체가 지역에서 시작한 일 중에 하나는 한 달에 한 번 아파트 한쪽에 천막을 치고 알뜰시장(녹색가게)을 여는 일이다. 아파트 주민들이 맡겨주는 각종 옷가지와 생활용품들을 500원씩, 천원씩 판다. 올해부터는 이 일을 아파트 부녀회가 주관하고 둘이나 셋 회원들이 옆에서 돕고 있다. 다시 쓰고, 나누는 차원을 넘어서 여기서 나오는 생활 물품들은 대전역에서 필요한 분들께도 다시 전해진다.

둘이나 셋 회원들은 공동체의 고유한 일뿐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필요한 일이라면 언제든지 도움을 주고받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았다. 한밭레츠에도 참여하고, 최근에는 월평공원과 갑천지키기 주민대책위원회를 꾸려서 열심히 활동하고 있으며, 회원들은 틈틈이 1인시위에 참가한다. 그리고 요즘 ‘내동어린이도서관’ 건립을 위해 분주하다. 이 일을 맡고 있는 최지연(미카엘라, 40)에 따르면, 월평공원 개발 반대 모임에 나갔다가 우연히 여러 아이 엄마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어린이도서관을 만들자는 데 마음이 모아져서 추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코오롱 아파트의 옆문으로 빠져나가면 다정한 오솔길 같은 통로가 있는데, 그 길을 따라가면 도서관 예정지로 잡아 놓은 건물이 있었다. 아직 계약도 하지 않은 상태이지만, 들어가 보니 정리가 안 되어서 어수선 했지만 위치도 조용하고, 꽤 괜찮은 공간이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프로젝트 신청을 해놓은 상태였는데, 이들이 소망이 잘 이뤄져 아이들이 편안하고 의미있는 휴식공간을 얻기를 바라는 마음이 일었다.

1999년 12월에 나온 <둘이나 셋> 소식지 창간호에는 공동체 모임자료로 평신도 사도직을 다루고 있다. 이 서원에 따라서 이들도 사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공동체의 공공생활에 참여하도록 하느님의 선물을 받았다. 우리는 주일미사뿐 아니라 공공생활의 모든 측면에서 교회가 되도록 불리웠다. 교회의 일은 정의, 사랑, 그리고 평화의 하느님 나라를 여기에, 이 지상에 세우는 것이다. 평신도는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들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감으로써 그들의 성소를 사는 것이다.”

/한상봉 200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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