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삼순이 아빠, 연극인 맹봉학 씨]

아부지…… 심장이 딱딱해졌으면 좋겠어.
삼순아, 아부지는 심장이 딱딱해져서 죽었잖아…….

2005년 전국을 강타했던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사랑이 너무 힘들다며 호소하는 딸에게 상상 속의 아버지가 건네는 말이다. 당시 이 극중 대사는 배우 맹봉학을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켰고, 동시에 그의 삶을 대변하게 된 말이기도 하다. 심장이 딱딱해지지 않기 위해서, 사랑하고 살아가는 배우 맹봉학.

맹봉학 씨는 2008년 이른바 '광우병 사태' 때 참여해 연예인 최초로 경찰 소환을 받았다. 덕분에 ‘촛불 배우’라는 별칭도 얻게 됐지만, 그의 행보는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용산참사 현장, 재능교육 농성장, 쌍용자동차 희망텐트,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제주 강정마을까지……. 그는 강제로 심장을 멎게 하는 자리에 늘 함께하고 있었다.

“저는 연예인 뿐만 아니라 공인이라면 사회적 활동을 통해 공익, 공동선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시너지 효과도 얻을 수 있고, 일반인들이 동참할 수 있는 계기도 마련되는 거죠.”

2008년 5월 30일. 그가 마음의 빚을 떨치고 처음 광화문 광장에 섰던 날이다. 중학생, 고등학생들이 어른들의 몫을 대신하는 모습을 뉴스로 보면서 그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고,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리고 이왕 행동할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제대로 하자고 마음먹었다.

“1987년, 온 나라가 민주화 열병을 앓고 있던 당시 저는 연극계 막내로 살고 있었어요. 거리의 최루탄을 이리저리 피해가면서 제가 한 일은 연극 포스터를 붙이는 일이었죠. 그때 민주화 투쟁은 저와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보다 저에게 절박한 건 연극이었거든요. 그런데 한참 지나고 보니, 그것이 무임승차였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늦었지만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 ‘참여’를 시작한거죠. 작은 것부터 적극적으로…….”

▲ 지난 3월, 맹봉학 씨는 구럼비 발파소식을 듣고 드라마 촬영도 뒤로 한 채 동료와 함께 제주 강정마을을 찾았다. 강정마을을 찾은 이유에 대해서 그는 "배우 이전에 난 한 개인이고 사람이다. 강정의 아픔을 지나칠 수 없었고 나도 이런 일을 당할 수 있기에 연대가 필요한 곳에 함께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도자를 꿈꾸던 소년, 배우의 길로 들어서다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어릴적 ‘바오로’라는 세례명을 받았다. 고등학교까지 돈보스코회, 프란치스코회 등 성소모임에 다니면서 수도자의 길을 꿈꿨다. 그러던 중 배우의 길이 아주 우연히 그의 앞에 등장했다. 성당에서 했던 성극이 교구 행사에 오르게 된 것. 수원 지역 한 극단 선배들로부터 지도를 받게 됐는데, 연극이 끝난 후 뒤풀이 자리에서 한 선배가 그에게 뜬금없는 말을 던졌다. “넌 연기가 안 돼. 연극 하지 마”

“당시 연극을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었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자존심이 너무 상하는 거에요. 3일을 고민하다가 그 선배를 찾아갔죠. 그랬더니 ‘너 올 줄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연극에 대한 어떤 열의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선배가 저를 제대로 건드려준거죠. 제 성격상 정말 관심 없었으면 자존심도 상하지 않았을 거고, 찾아가지도 않았을 테죠.”

그때부터 수도자의 길에 관한 고민에 연극이 끼어들었다. 그 뒤로 연극을 배우러 다니면서, 결국 그는 갈등을 접고 23세에 연극배우의 길로 들어섰다. 드라마나 영화에 심심치 않게 출연하고 있지만, 그의 뿌리는 여전히 연극이다.

“앞으로 10년은 비정규직 철폐를 위한 싸움에 함께 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5월 17일, 문정현 신부의 광주인권상 수상 축하를 위해 광주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가 꺼낸 인사말이다. 막연한 부채의식에서 출발했지만, ‘아닌 것을 아니라고 하는 것’에 그는 철저하다. 뭐든지 시작하면 확실하게 하는 성격이라 때로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느라 생업인 드라마 촬영을 포기한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억눌리고 눈물 흘리던 이들이 자신 때문에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삶의 재미가 자신을 지탱하는 큰 기쁨이고 삶의 활력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2월, 재능교육에서 쌍용자동차까지 걸어서 비정규직 해고 노동자들을 찾는 ‘희망뚜벅이’에 응원단장으로 참여했다. 그 여정에서 그는 또 하나의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칼바람이 부는 서울 양재동 현대자동차 본사 건물 앞에서 예배를 드릴 때였다. 당시 예배를 집전한 목사가 이런 말을 했다. “당신들이 이곳에 있는 것은 못 나서가 아니라 다른 쓰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순간 "우리와 저 자본가들의 쓰임이 왜 이렇게 달라야 하는가" 하는 삐딱한 생각이 들었지만, 곧 “나의 쓰임은 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추운 칼바람을 맞고 걸으면서 힘든 가운데 자리잡은 것은 “나는 집에 가면 그만이지만, 노동자들은 이곳에 있을 수 밖에 없구나” 하는 미안한 마음이었고, 그때부터 새롭게 기도를 시작했다.

▲ 5월 18일, 문정현 신부의 광주인권상 수상식에 참여한 맹봉학 씨. 강정마을 지킴이로 활동하고 있는 연극인 방은미 씨와 '절친 인증샷'을 찍었다. 유유상종이다.

죽을 때 웃을 수 있는 삶을 위해 지금 여기에서 …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2005년 출연했던 드라마가 뜨고 나서, 2008년에 문성근 선배와 함께 주연으로 케이블 드라마에 출연했어요. 그것이 끝난 직후, 곧 16부작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했는데 마침 시위에 나갔던 제 기사가 난 거에요. 무산됐죠. 잘 될뻔 했는데……. 하하. 남들은 저더러 미련하다고, 바보라고 하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아요. 당장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에서 죽을 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요. 웃으면서 죽자는 것이 제 삶의 목표니까요. 우리는 늘 ‘할까, 말까’를 고민하는데, 이왕 후회할 거라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후회하는게 낫지 않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금 아주 행복합니다.”

그는 어떤 식으로든 사회 환원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 환원이라는 말이 곧 재산 기부로 연결되는 의식이 팽배하지만, 그것이 돈이 있는 이들만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돈이 없다면 자신이 가진 달란트를 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좋아하는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라며, 병원 자원봉사, 공부방 봉사를 하고, 또 지금은 여러 현장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마다 거절하지 않고 달려가려고 애쓴다고 한다.

배우라는 직업 탓에 아이들을 일상적으로 돌봐야 하는 공부방 봉사는 아쉽게도 그만뒀지만, 서울 은평구의 한 병원과 현대 아산병원 정신과에서 그는 20년째 사이코드라마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환자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교감도 이뤄지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도 치유받는다고 한다.

어려운 일을 겪다가도 환자들과 함께하는 시간 속에서 어느새 마음씨 좋은 아저씨가 되어 있었다며 웃는 그는, 30대 중반까지 너무 힘들게 살았기에 인상도 날카롭고 예민한 '잔소리 마왕'이었지만, 어느 순간 내 것과 그들의 것이 구분되고,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놓아버리는 법도 배웠다면서, 사람 좋은 함박웃음을 짓는다.

“삶이 버거울수록 하루를 더 열심히 살아야겠구나. 그리고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더 많이 든다"고 말하는 그는, 성경에서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고 했지만, 자기 생각은 다르다고 말했다. 오히려 자신이 하는 일과 그 의미를 알려서 더 많은 이들이 동참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마라톤 매니아이기도 한 그는 마음에 들지 않는 주최자가 여는 대회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얼마 전 마음을 고쳤다. 더 많은 이들에게 세상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서 '몸 자보'를 두르고 마라톤을 뛰기로 한 것. 거기 적힌 말은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었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알리고 동참을 촉구하겠다는 마음이었다.

예수, 철저히 당신을 던져 실천했던 사람
“천국은 지금 여기서 내가 살아가는 것 아닌가요?”

그는 오늘날의 교회에 불만이 많다. 종교개혁 때와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사람들이 거리로 밀려나고, 성직자와 수도자가 모욕 당하고 잡혀가는 시국에 침묵하고 있는 교회에 할 말이 많다면서 자신이 품고 있는 예수에 대해 말했다.

“예수야말로 자신을 던져서 실천했던 사람이죠. 스스로 그분의 뜻을 닮으려고 노력합니다. 내가 예전보다 사람들에게 더 선하게 비춰진다면, 그것은 그만큼 예수의 선함을 따르고자 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저도 그분을 따라 온전히 나를 던지기 위한 길을 매일 찾아나서고 싶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울고 있는 현장을 통해 예수의 삶을 체험하고 그를 닮아가고 싶다며 말했다. “예수님이 제시한 길은 다른 곳에 있지 않아요. 내 안에 있는 예수님의 모습, 그것을 이끌어내면서 또 따라가는 거죠.”

그리고는 이왕 나선 김에 재능교육 해고자들을 찾아가 보겠다며 다시 길을 나섰다. 그의 필모그래피에는 50여 편의 작품이 있다. 그 중에는 독립영화, 드라마 단역, 때로는 관객이 7명 밖에 들지 않은 연극이 있고, 그래서 세상은 아직 그를 중심에 두고 봐주지 않는다. 하지만 배우로서, 사람으로서 누구보다 자기 삶의 중심에 있으며, 신앙인으로서 누구보다 예수에게 가까이 가고자 하는 사람, 그가 바로 배우 맹봉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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