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

민들레국수집에서 식사를 하시고 계단에 힘없이 앉아있던 대식(가명)씨가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도와달라고 합니다. 며칠 전에 어디 시설에라도 들어갈 수 있게 소개를 해 달라고 해서 서울역에 가면 노숙인 상담소가 있는데 그곳에 가서 상담해보라고 했습니다. 다녀왔나 봅니다.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다고 합니다. 겨울은 다가오고, 추워서 길에서 잠자기가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대식씨는 1955년생입니다. 저보다 한 살 아래지만 예순도 훨씬 넘은 할아버지처럼 보입니다. 이혼한 후에는 막노동을 하면서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당뇨가 심해서 몇 년 전부터는 일할 수 없어 거리에서 지냅니다. 치아도 성치 못해 맨밥에 된장이나 고추장을 비벼서 먹습니다. 소원이 무엇인지 물어봤습니다. 그냥 조용히 죽는 것이 소원이라고 합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가 되어 함께 살자고 했더니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힘이 하나도 없습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인 정호씨가 속옷과 겉옷을 갈아입혀드렸습니다. 정호씨와 함께 목욕탕을 다녀오게 했습니다. 이발도 하게 했습니다. 정호씨는 아저씨가 너무 말랐다고 측은해합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이불 덮고 하늘보지 않고 잘 수 있어

대식씨는 짐이 하나도 없습니다. 힘이 하나도 없어서 무엇을 들 엄두도 못 냅니다. 대식씨가 덮을 이부자리와 옷가지와 세면도구를 챙겼습니다. 김과 라면 그리고 고등어자반도 좀 챙겨서 옥련동 민들레의 집에 모셔 갔습니다. 오늘은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이불 덮고 하늘보지 않고 잘 수 있을 것입니다.


다음날 옥련동 민들레의 집에 가서 대식씨와 함께 민들레국수집 손님을 모시고 가면 언제나 친절하게 도와주시는 동인의원에 갔습니다. 의료보험이 급여정지가 되어있습니다. 원장 선생님 진찰을 하시고 혈당이 380이 나왔다고 합니다. 약을 일주일치 처방해 주셨습니다. 돈도 받지 않으십니다.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할 수 있도록 진단서를 발급해주셨습니다. 밥은 꼭 챙겨드셔야 하고 약도 드시고 하시면서 이 상태라면 입원을 해야 하는데 하시면서 걱정하십니다.

대식씨와 함께 주민센터에 가서 말소된 주민등록을 살렸습니다. 과태료를 8만원을 냈습니다. 주민등록증도 발급신청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 기초생활 수급자 신청을 했습니다.

며칠 후에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대식씨의 자녀가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 부인이 대전에서 찾아왔다고 합니다. 대식씨는 부인을 만날 면목이 없다면서 만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제가 가서 부인을 만났습니다. 아들이 결혼해서 잘 살고 있고 손자도 둘이나 있다고 합니다. 이제야 나타나면 아들 가정이 힘드니까 기초생활 수급 신청을 포기하라고 합니다. 대신 매달 돈을 조금씩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대식씨도 아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지 않아도 좋다고 합니다.

가족도 친척도 아닌데 왜 도와주세요?

대식씨를 치료받게 하기 위해서는 의료보험을 살려야합니다. 함께 건강보험공단을 찾아갔습니다. 건강보험료가 육십 몇 만원이나 연체되어 있습니다. 대식씨 사정을 이야기하고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담당자가 친절하게 도와줍니다. 연체된 금액을 사십 몇 만 원으로 조정해 줍니다. 그리고 24개월 분납으로 해 줍니다. 건강보험카드도 새로 발급해줍니다. 빨리 병원 치료를 받으라고 합니다.

점심을 함께 먹었습니다. 삼계탕을 어찌나 맛있게 드시는 한 그릇을 다 비운 다음에야 맛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동인의원에 가서 진찰했습니다. 원장 선생님이 혈당수치를 보시더니 깜짝 놀랍니다. 595가 나왔습니다. 공복에 380이 나왔는데 식후에 이렇게 높게 나왔으니 급히 종합병원에 입원해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 다음에 진료의뢰서를 써 주십니다. 급히 대식씨와 함께 기독병원으로 갔습니다.

진찰을 받고 입원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입원신청서를 쓰고 보증인 서명을 했습니다. 직원이 대식씨와 무슨 관계냐고 물어봅니다.

“아무 관계가 아닌데요."
"가족도 친척도 아닌데 왜 도와주세요?"
"어려운 처지를 옆에서 봤으니까 가족이나 친척이 아니라도 당연히 도와야죠."

교도소에 가서 면회를 신청하거나 영치금을 넣어주거나 먹거리를 넣어줄 때도 듣는 말입니다. 민들레의 집 식구들을 병원에 모시고 가면 듣는 소리입니다. 아무 관계가 아니라고 하면 이해를 못합니다.

베로니카가 대식씨에게 필요한 것들을 챙겨줍니다. 슬리퍼, 속옷, 수건 그리고 면도기와 비누, 컵과 로션 등을 능숙하게 챙깁니다. 기독병원에 갔더니 대식씨가 병원 밥이 너무 적어서 세 숟갈만 푸면 없다고 합니다. 다음주간에 복부 CT 촬영을 해야 하는데 비용이 16만원이라고 합니다. 비용을 미리 내야 CT 촬영을 한다고 합니다. 대식씨는 몇 번을 고맙다고 합니다. 죽을 목숨인데 덕분에 살았다고 합니다. 

/서영남  2008.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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