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 국수집]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천사가 여자들에게 예수님이 먼저 갈릴래아로 가셨다고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하십니다.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가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그리고 사명을 받습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갈릴래아, 나자렛, 예수

예수님은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에서 사셨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어느 날인가 광야에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많은 병자를 고쳐 주고,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죽은 사람까지 살렸습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병들고 죄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며, 원수를 사랑할 것을 가르쳤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다시 갈릴래아로 오셨습니다.

그런데 더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면서도 의심합니다. 히브리말로 ‘의심’은 두 마음을 갖고 있음을 말합니다. 가난하고 외롭고 병들고 죄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서는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돈이 있어야 하고 힘 있는 사람과 어울려야 하고, 부자들과 어울려야 하느님의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갈릴래아는 참으로 보잘것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입니다. 찢어지게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먹고 살기에 바빠서 손 씻기도 힘들어 정결례를 지키지도 못합니다. 안식일도 지키지 못합니다. 게으르고 무지한 죄인들이라고 사람 취급도 받지 못합니다. 예루살렘에서 강부자로 고소영으로 살아가는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과 바리사이들은 갈릴래아 사람들을 무시하고 천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도 당신이 하신 것처럼 갈릴래아 사람들을 사람대접하라고 하십니다.

핍박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돌보고

얼마 전 일입니다. 병색이 짙은 우리 손님이 머리를 긁적이며 힘겹게 말문을 엽니다. 천 원만 좀 줄 수 없는지 물어봅니다. 닷새 전에 의원에 가서 진찰을 받고 약을 탔는데 오백 원이 없어서 다음 번 약 타러 올 때 갚겠다고 했는데 약이 떨어졌답니다. 오늘 또 의원에 가야하는 데 천원만 달라고 합니다. 천 원을 드렸습니다. 그 손님은 혼자 여인숙에 방 하나 얻어서 삽니다. 기초생활수급자입니다. 한 달에 삼십 몇 만 원을 정부로부터 받는 것이 수입의 전부입니다. 방세를 내고나면 남은 돈으로 한 달을 살아가기가 참으로 힘듭니다.

새로운 손님들이 참 많이 옵니다. 어떤 손님은 몇 번을 국수집 앞을 왔다 갔다 합니다. 아무래도 창피스러워 못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담배 한 개비 권하면서 넌지시 물어보았습니다. 며칠 식사도 못하셨죠? 고개를 끄덕입니다. 모시고 들어가서 식사하실 수 있게 했습니다. 두세 번 더 가져다 드시는 모습은 참 애처롭습니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노숙생활한지 두 달 되었다고 합니다. 한 그릇의 밥이 이토록 귀한지 전에는 몰랐다고 합니다.

우리 손님들 대접할 쌀이 아슬아슬한데 쌀을 달라는 동네 이웃들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런데 마을 부녀회에서 경로당 어르신들 소풍에 떡을 해 드리기로 했는데 쌀을 좀 달라고 합니다. 먼저 필요한 사람이 임자지 싶어서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20Kg 세 포를 드렸습니다. 드리자마자 봉고차가 국수집 앞에 섭니다. 어떤 분이 쌀을 가져다 드리라고 했다고 합니다. 열 포대나 내려놓습니다. 중학생 아들과 함께 오신 자매님이 두 포를 내려 놓으셨습니다. 잘 생기신 아저씨가 승용차에서 한 포를 내려 놓으셨습니다.

이건 창호에 다니시는 착한 분들이 작은 봉사모임을 합니다. 십시일반 모은 돈으로 산 쌀을 세 포 내려놓고 헌옷도 두 상자나 모아 오셨습니다. 또 고마운 자매님이 아드님을 통해 쌀을 두 가마나 보내주셨습니다. 찹쌀도 밥할 때 섞으면 더 좋다며 찹쌀 한 포도 덤으로 보내주셨습니다. 참으로 희한한 일입니다. 겨우 쌀 세 포를 나눠드렸는데 오늘 하루 동안 20Kg 스물다섯 포가 국수집에 쌓였습니다. 이젠 가슴 조이면서 나눠드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했던 교회는 평등한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만의 것으로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했습니다. 필요에 따라 나누었습니다. 그들 가운데는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또 가난하고 병들고 사회적으로 핍박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돌보고 배려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갈릴래아에서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신 것처럼 살았습니다.

/서영남 2008.10.15.
저작권자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