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국수집]

동인천 전철역 근처인 화수동 골목길에 작고 허름한 민들레국수집이 있습니다. 온종일 허름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골목길을 오고 갑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온 배고픈 이들입니다. 부자들이 사는 동네라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화수동은 일본의 식민지 시절부터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입니다. 가난한 사람의 서러움을 아는 마을 사람들은 노숙자들이 몰려와서 집값을 떨어뜨린다고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노숙자들 때문에 조금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역사가 60년이 넘는 송현초등학교 2회 졸업생이신 두 분 어른이 마을에서 민들레국수집의 버팀목이 되어주셨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남아있을 수 있었습니다.

어른께서는 향교 고문으로 계셨습니다. 유림이십니다. 공직생활을 정년퇴직하시고 민들레국수집이 있는 건물에 조그만 사무실을 마련하셔서 소일거리 삼아서 일을 하셨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민들레국수집을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불평하면 다독거리며 달래십니다. 어려운 이웃을 도와야한다면서 후원자를 모시고 옵니다. 점점 국수집 손님이 늘어나자 당신 사무실마저 식당으로 쓰라면서 그냥 내어주셨습니다. 허름한 창고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샌드위치패널로 깔끔하게 지어주셨습니다.

하느님이 계시다는 걸 알겠다

민들레국수집은 월세를 냅니다. 지난 일곱 해 동안 월세가 한 번도 오른 적이 없습니다. 오르기는커녕 오히려 내렸습니다. 월세가 밀려도 독촉조차 하지 않으십니다. 월세를 받으면 받은 돈의 반을 뚝 떼어서 쌀 사는데 보태라고 하십니다. 도리어 적어서 미안하다고 하십니다.

어른께서는 화수동 성당 예비자 교리반에 스스로 등록하셨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을 옆에서 지켜보니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겠다고 합니다. “모세”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얼마 전에는 견진까지 받으셨습니다.

또 한 어른은 용원 약방을 운영하십니다. 쌀이 모자랄까 걱정하시면서 자주 쌀을 보내주십니다. 우리 손님들에게 꼭 필요한 구충제와 응급 약품을 보내주십니다. 우리 손님들이 아프면 그냥 약을 지어주십니다.

좀 더 못 줘서 미안해합니다

두 어르신의 모범으로 민들레 국수집의 이웃들은 마음들이 참으로 넓습니다. 당신들이 드시기에도 모자랄 텐데 밑반찬도 자주 가져다줍니다. 그러면서도 생색을 내는 분이 한 분도 없습니다. 그저 좀 더 못 줘서 미안해합니다. 화수시장에 나가면 착한 아주머니와 아저씨들이 덤을 너무 많이 주셔서 제가 물건 값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시장 입구에서 좌판을 펼쳐 놓고 마른 생선을 파시는 할머니는 김장철이면 젓갈을 아낌없이 선물해주십니다. 추석 때 손님 대접하라고 조기를 한 상자나 보내주면서도 오히려 적어서 미안하다고 합니다. 예쁜 민지와 예지는 “네네 치킨” 가게의 딸입니다. 우리 손님들이 좋아하는 닭튀김을 부모님이 담아주셨다면서 힘들게 들고 오기도 합니다. 손님들이 몇 년 만에 닭튀김을 먹어본다고 말합니다.

동네 중국음식점에서도 짜장을 자주 만들어서 보내주십니다. 우리 손님들은 짜장면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짜장밥은 아주 좋아합니다.

사랑이네 아빠는 식용유 판매를 합니다. 국수집에 식용유를 그냥 대어줍니다. 또 식자재 가게를 하시는 분은 고춧가루를 몇 년째 그냥 나눠주십니다. 민들레 국수집이 너무 비좁아서 김치를 담글 때에는 길거리에서 다듬고, 저리고, 버무립니다. 그러면 지나가시는 동네 분들이 거들어주십니다. 대략 보름마다 사오십 포기의 배추로 김치를 담습니다. '김포 채소 가게'에 가서 배추를 주문하면 가게 아저씨가 거의 원가로 재료들을 배달해 주십니다. 국수집 문 앞에 배추를 내려놓으면 그때부터 동네잔치가 시작됩니다.

김치 담굴 때마다 동네잔치

지나가시던 보살 할머니께서 보시곤 옷을 갈아입고 커피를 한 주전자 타서 가져 오셔서 거들어 주십니다. 조금 후에 구멍가게를 하시는 지훈이 외할머니가 파도 다듬어 주시고 마늘도 다듬어 주십니다. 새마을 부녀회 회장님도 지나가시다가 보시고는 행주치마까지 챙겨 오셔서 거들어 주십니다. 그러면 어느새 먹음직스러운 김치가 담겨집니다.석분 할머니와 경희 할머니와 성당 할머니는 민들레 국수집 앞을 피해 다니십니다. 할머니들이 지나가실 때쯤인 오후 네 시에는 제가 밖에 나와서 지키고 있어야 예쁜 할머니들 저녁식사를 대접해 드릴 수 있습니다. 저녁을 드시려 경로식당에 가시는데 다른 골목길로 비껴가시기 때문입니다. 민들레 국수집에는 당신들보다 더 배고픈 사람들이 와서 먹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할머니에게 달걀 프라이를 몇 개 해 드릴까 물어보면 꼭 한 개만 해 달라고 합니다. 두세 개를 부쳐드리면 그렇게 맛있게 드시면서도 한 개만 해달라고 고집부립니다.

행복이란 이웃과 더불어 살 때 선물처럼 주어집니다. 혼자만 잘 살려고 할 때 불행해지기 시작합니다. 나만, 내 가족만 잘 살면 된다고 하는 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욕심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나만 고상하게 살고 싶다는 핑계로 보잘것없는 이웃과 더불어 살기를 피한다면 자기 스스로 에덴 동산을 도망쳐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사랑은 이웃이 기준이 되는 생활방식

사랑은 자기 자신이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이 기준이 되는 생활 방식입니다. 행복하길 원하면 보잘것없는 이웃을 사랑하면 됩니다. 보잘것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행복도 느끼지 못할 것입니다. 행복은 내 스스로 누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일깨워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영남 2008.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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