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8일 2012 광주인권상 시상식 열려
문정현 신부 "가난한 이들의 자발적 연대가 민주주의, 인권, 평화 지킬 수 있기를…"

“문정현 신부는 권력의 탄압이 사법살인으로 치닫던 1970년대의 개발독재 시대에서부터 1980년대의 군사정권을 거쳐 지금의 강정마을에 이르기까지 가톨릭 사제로서 부당한 국가권력에 저항하고, 고통받고 소외받는 사회적 약자의 아픔을 위로하는 동시에 생명과 평화운동을 온몸으로 전개한 성직자로서의 일관된 삶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상 결정문 중)

5·18기념재단(이사장 김준태)의 2012 광주인권상 시상식이 5월 18일 오후 7시 광주 5.18기념문화관 대동홀에서 열렸다. 수상자인 문정현 신부(전주교구 원로사목)는 광주인권상 한국인 수상자로서는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에 이어 역대 두 번째이며 개인으로서는 처음이다.

▲ 상을 들어보이며 웃는 문정현 신부.

시상식에는 김준태 5·18기념재단 이사장, 레닌 라구와니쉬 2007 광주인권상 공동수상자, 옥현진 광주대교구 보좌주교, 조철현 몬시뇰, 문규현 신부를 비롯한 사제단, 권오광 천주교정의구현전국연합 상임대표와 강정마을 주민, 지킴이 등 300여 명이 자리를 채웠다.

광주인권상 심사위원회는 수상자 결정문에서 1970년대 개발독재 시대로부터 평택 미군기지 반대 운동, 용산참사 현장, 현재 강정마을에 이르기까지의 여정을 되새기며 “‘길위의 신부’로 불리는 문정현 신부의 삶을 통해 우리는 부당한 권력에 대해 투쟁하지 않는 한 민주주의와 인권, 생명과 평화를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고 전했다.

▲ 문정현 신부의 수상을 축하하기 위해 강정마을 식구들이 대거 참석했다. 수상과 함께 환호하는 참가자들.

김준태 5·18기념재단 이사장은 “문정현 신부님의 수상은 우리들로 하여금 많은 것을 깨닫게 한다. 평생 권력으로부터 탄압받는 약자 편에서, 생명과 평화가 위협받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달려가 그들과 함께 소리치고, 아파하고, 밥을 나누고, 비를 맞으며 살아온 한국 현대사의 압축”이라고 소개하며 “수상식 전까지도 강정마을에 있었던 문정현 신부님은 우리들 모두가 당신을 평화를 지키는 사람, 평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바라보게 한다. 문 신부님은 우리 시대의 싸우는 영혼이며, 우리가 가장 힘들 때, 우리가 갈 길을 찾지 못할 때 우리를 인도하는 광야의 세례자 요한을 떠올리게 한다”고 의미를 밝혔다.

▲ 문정현 신부는 수상 소감을 발표한 뒤, "강정의 평화, 구럼비야 사랑해"를 함께 외쳐달라고 청했다.

“나는 광주항쟁의 정신을 주먹밥이라 생각합니다. 주먹밥은 평범한 사람들이 더 이상 현실의 불의를 보고 참을 수 없어 자발적으로 나선 시민행동이었듯이, 오늘도 그 정신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용산참사, 한진중공업과 쌍용 해고노동자, 4대강, 강정에서도 이름 없는 사람들의 주먹밥이 힘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난한 이들의 자발적인 연대가 밑바탕이 되어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가 지켜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문정현 신부 연설문 중에서)

이어진 수상자 연설에서 문정현 신부는 산 자로서 광주 영령들 앞에 감히 이 상을 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강정마을 주민들을 생각하며 상을 수락했다고 밝히며 “수상 소식으로 강정마을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한 거룩한 투쟁이 강정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기뻐하고 있다. 민주열사들과 길에서 만난 투쟁하는 소중한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존재한다. 그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그들과 함께, 그들을 대신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무겁지만 기쁘게 상을 받는다”고 수상 소감을 전했다.

▲ 홍진석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의 축하 공연.

▲ 전주교구 사제들로 구성된 중창단이 축하 공연에 앞서 문정현 신부에게 큰 절을 올린다. 문정현 신부는 맞절로 화답했다.

▲ 밴드 '아름다운 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이 준비한 노래 선물. 

▲ 이날 시상식에는 조비오 신부도 참석해 문정현 신부를 축하했다.문규현 신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조비오 신부.(오른쪽에서 두번째)

5·18기념재단은 5만달러의 상금과 함께 금장 메달, 상장 등을 문정현 신부에게 수여했고, 문 신부는 상금 5만 달러를 강정마을을 위해 쓸 예정이라고 밝혔다.

광주인권상은 5·18기념재단이 인권과 통일, 인류의 평화에 공헌한 국내외 인사, 단체를 발굴해 시상함으로써 5.18민주화운동 정신을 널리 알리고자 2000년부터 제정, 시상해왔다. 현재까지 공동수상자를 포함해 개인 13명과 단체 1개가 광주인권상을 받았다.

역대 주요 수상자로는 사나나 구스마오 동티모르 전 대통령(2000년), 한국의 독재정권 희생자 유가족으로 구성된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2002년·단체), 아웅산 수찌 버마 민족민주동맹 사무총장(2004년), 파키스탄 인권변호사 무니르 말리크(2008년), 네팔 인권운동가 수실 퍄큐렐(2010년), 인도 인권운동가 비냐약 센(2011년) 등이 있다.

▲ 시상식에 참여한 옥현진 보좌주교(광주대교구)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옥현진 주교는 선물로 받는 티셔츠를 방에 걸어놓겠다고 말하며 축하인사를 건냈다.

한편, 강정마을 지킴이들과 문정현 신부는 시상식에 앞서 17일부터 광주를 방문해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 강연 등을 이어갔다.

"군사정권보다 더 교묘하게 인권을 탄압한다" 현 정부 질타
성직자로서 가난하고, 고통받고, 소외된 이들 곁에 '남는 자' 선택

17일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문 신부는 강정마을 문제를 비롯해 사회 전반적인 인권, 정치, 노동 문제 등에 일침을 가했다. 그는 “박정희 군사정권부터 지켜봤지만 이 정권은 훨씬 더 교묘하게 인권을 탄압한다. 특히 그 많은 언론인이 길에 나가 100일 넘게 농성해도 꿈쩍도 않는 것을 보면 과거 어느 철권보다 더 철권통치를 하는 것이 아닌가? 이명박 정부는 끝이 보인다. 그러나 그 세력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이 끝나도 쇠고랑을 찰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또 최근 진보정당에서 벌어지는 문제를 포함한 정치권 상황에 대해서도 “정치는 마치 야합해도 되고, 어떤 때는 진실을 배반해도 되고, 그래서 그 문제만 해결되면 되는 것처럼 보인다. 정치인이라면, 고통받는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나라를 돌봐야하는 사람이라면 불이익을 당할 때 불이익을 감소할 수도 있어야 하고, 그것 때문에 죽어야한다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지도자가 되는 것이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 신부는 잊히는 5월 정신에 관해 언급하며 “나에게 관변의 유혹이 없었던 것도 아니지만, 성직자로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남는 자’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가난하고 고통받고 소외된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5·18 민중항쟁의 정신은 지배자들에 의해 탄압받고 왜곡되어 왔다. 그 정신은 절대로 사라질 수 없는 만큼 5·18을 길바닥에서 느낀 그대로 정확하게 남겨두고 계속해서 접근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문 신부는 한국의 인권 상황에 관해 “사기와 거짓으로 시작된 제주 해군기지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니 광주의 경찰까지 출동시켜 주민들을 탄압하고 있다. 이것이 민주주의인가? 인권이 살아있는 것인가?" 하고 물으며 "인권은 바닥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전북고속, 재능교육 등 정당한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곳곳의 문제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 함께 수상의 기쁨을 나누는 문규현, 문정현 신부.
 
▲ 강정마을 지킴이들과 함께 한 기념사진.

▲ "강정의 평화~!"

▲ "구럼비야 사랑해~!"

문정현 신부 연설문(전문)
 

나는 지금 제주도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살고 있습니다. 강정마을은 작지만 평화로운 마을이었습니다. 하지만 정부의 일방적인 해군기지 건설 강행에 따라 6년째 주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받고 있는 마을이 되었습니다. 나는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하고자 이곳으로 이사를 왔고, 1년이 다 되어갑니다.

강정마을에 살면서 민주주의가 뒤틀리고 짓밟히고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강정마을의 해군기지는 단 한 번의 공청회도 없이 은밀하게 전격 결정되었습니다. 광주항쟁이 있은 지 30여 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내용상으로는 군사독재정권의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정책을 수립하고, 갈등이 존재할 때 충분한 대화를 통해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편법과 탈법을 동원하여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이에 저항하면 공권력을 동원하여 힘으로 누릅니다. 이로 인해 강정마을에서는 500여 명이 넘는 사람이 체포 연행되었습니다.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공권력에 항의하다 나 자신도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고 몸이 부서졌습니다.

병원에서 ‘광주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뜻밖이었습니다. 광주인권상은 1980년 5월 광주항쟁으로 인한 수많은 희생자들의 피로 만들어졌는데, 산 자로서 어찌 그 이름으로 상을 받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의 마지막 구절인 ‘산 자여 따르라’는 의미는 광주 영령들처럼 죽기까지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우라는 명령인데, 감히 최선을 다했다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소식이 빠르게 강정 주민들에게 알려졌습니다. 강정 주민들이 큰 힘을 받는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를 이룩하기 위한 거룩한 투쟁이 이곳 강정에서도 이어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인해 모두들 기뻐했습니다. 박종철, 이한열, 조성만 같은 민주열사들이 생각났습니다. 또한 그동안 길에서 만난 투쟁하는 수많은 얼굴들이 떠올랐습니다. 참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제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분들께 경의를 표하며, 이들과 함께, 이들을 대신하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무겁지만 기쁘게 받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자본과 권력을 대변하는 1%가 99%의 민주주의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습니다. 가진 자들의 독선과 부패는 심각합니다. 그동안 피로 일궈 놓은 민주와 인권의 가치도 무시되고, 생명과 평화가 심각할 지경으로 훼손되고 있습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일으켜 세우지 못하면 인간과 자연은 되돌릴 수 없는 폐허로 치달을 것입니다. 불의한 현실에 순응하지 말고 십시일반의 정신으로 용기와 지혜를 모아 저항해야 합니다.

나는 광주항쟁의 정신을 주먹밥이라 생각합니다. 주먹밥은 평범한 사람들이 더 이상 현실의 불의를 보고 참을 수 없어 자발적으로 나선 시민행동이었듯이, 오늘도 그 정신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용산참사, 한진중공업과 쌍용 해고노동자, 4대강, 강정에서도 이름 없는 사람들의 주먹밥이 힘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이처럼 가난한 이들의 자발적인 연대가 밑바탕이 되어 민주주의와 인권, 평화가 지켜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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