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보 주일 칼럼-김유철]

주님, 오늘은 그리스도이신 당신께서 사람으로 오시어 하늘로부터 맡겨진 구속 사업을 마무리하시고 하늘로 귀천하심을 기념하는 주님 승천 대축일입니다. 주님의 승천 이후에도 당신의 구속 사업을 세상 사람들 사이에 계속하고자 제자들은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흐르자 사람들은 그 공동체를 교회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승천 대축일과 홍보 주일을 맞아

▲ <L'Ascensione>, Giotto(1305)
당신의 몸, 그 자체인 교회는 여러 직분이 필요했고, 당신의 말씀과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하여 성경을 편찬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오대양 육대주로 퍼져 나갔습니다. 저희는 압니다. 헤아릴 수 없는 이런 일들이 사람의 힘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당신이 보내 주신 성령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어느 것 하나라도 쌓아 올리지 못했음을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은 형태로서의 교회, 조직으로서의 교회, 제도로서의 교회를 위하거나 특정한 직분의 사람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오롯이 진리의 근원이신 주님의 가르침을 전하고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기 위함임을 더듬거리는 말일지라도 저희는 매번 고백하고자 합니다.

주님은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지만 당신을 따랐던 사람들은 사흘이 지난 새벽에 부활한 주님을 만나고 체험하게 됩니다. 그로부터 40일이 지난 후 주님이 하늘로 올라가셨음을 기념하는 오늘을 교회는 훗날 주님 승천 대축일로 정했습니다. 주님이 승천하기 전 제자들에게 남겼다는 마지막 음성인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 하는 말씀을 교회는 잊지 않았습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그 말씀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고 전달됩니다.

공의회, 대중매체의 중요성 깨닫고 '홍보의 날' 권장

성령의 인도로 20세기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구성원들은 그 당시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온 대중매체(Mass Media)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대중매체를 통하여 교회의 사도직 수행, 즉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는 복음 선포가 더욱 효과적이고 직접적으로 전달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마감하면서 결국 교회는 각 나라의 천주교회 공동체가 ‘홍보의 날’을 제정할 것을 권장하였습니다. 물론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1967년에 ‘홍보 주일’을 정했고 이후 1980년에는 ‘출판물 보급 주일’과 통합한 후 부활한 주님이 하늘로 오르심을 기리는 주님 승천 대축일을 홍보 주일로 지내며 승천의 의미를 새롭게 하고 있습니다.

1960년대 교회가 주목한 대중매체가 지닌 영향력은 가히 대단하다고 해야 할 것이며, 앞으로 그 형태가 어떻게 될지는 전문가들조차 감을 못 잡을 정도로 다양한 그물망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언론의 힘은 신의 경지인 무소불위(無所不爲)까지는 아닐지라도 거기에 육박하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습니다. 흔히 민주정치의 삼권(三權)을 입법·사법·행정이라고 하지만, 이제는 거기에 '언론'을 더해서 사권(四權)이 된 지 오래입니다.

왜 우리는 '교회 언론'이 불편하고 부끄러울까

아랫글은 주님 승천 대축일이자 홍보 주일의 미사 전례 중에 신자들이 바치는 기도 중의 하나입니다.

홍보 주일을 맞아, 교회 언론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진리의 근원이신 주님, 말과 글로 주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모든 이에게 진리의 성령을 가득 채워 주시어, 그들이 자신에게 맡겨진 소중한 직무에 더욱 충실하며 세상에 참된 가치를 심는 일에 힘쓰게 하소서.

그럼에도 주님, ‘교회 언론’이라는 단어가 나오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교회 언론에 몸담은 사람’이라는 말이 나오면 안쓰러움이 앞서기도 합니다.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 ‘천주교인으로 신문사나 방송국에 몸담은 사람’이라는 말 앞에서는 생각이 깊어지게 되고 ‘천주교인으로 언론사를 거쳐 정치에 몸담은 사람’이라는 말 앞에서는 물가에 주저앉은 심정이 됩니다.

주님, 왜 그럴까요? 무엇이 걸려 교회와 언론, 교회와 언론인이라는 말이 때로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고, 입이 있어도 할 말을 채 못하게 할까요? 하다못해 갈릴래아 사람들처럼 주님 오르신 파란 하늘조차 마음껏 바라볼 수 없게 할까요?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당신은 십자가를 피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이에게 세상이 주지 못하는 평화를 주시고자 십자가 끝에 걸려있는 죽음마저도 당신은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교회 언론은 그 소명을 때로는 피하고 외면하기도 했습니다. 교회 언론에 몸담은 사람들과 천주교인으로 일반 언론에 몸담은 사람들, 그리고 천주교인으로 언론사를 거쳐 정치에 몸담은 사람들 중 일부는 처세술의 한 방편으로 십자 성호를 그을 뿐 당신이 죽음으로 품은 십자 성호는 결코 전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지상에서 남긴 유언과도 같은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라”는 말씀을 공중에 흩어놓았을 뿐입니다. 그럼에도 저희는 이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습니다.

“생명과 평화의 주님, 교회 언론에 몸담은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예” 할 것은 “예”하고, “아니오” 할 것은 “아니오”라고만 할 용기를 주십시오.
민족의 암흑기와 독재시대와 군사쿠데타를 비롯한 부질없는 권력에
쫄고 아부했던 것을 반복하지 않도록 주님이 지켜주십시오.
가장 낮고 차별받는 이들 안에 머무시는 당신의 현존을
언론의 맑은 눈과 밝은 귀에 담아서
온 세상 모든 피조물들에게 선포하는 일에
교회 언론과 교회 언론인들이 쓰이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김유철 (한국작가회의 시인)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 경남민언련 이사. 창원민예총 대표. 저서 <그대였나요>, <그림자숨소리>, <깨물지 못한 혀>, <한 권으로 엮은 예수의 말씀>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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