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 국수집]



재산이란 그 자체로 좋은 것입니다. 온 인류를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산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라 나눔의 대상이어야 합니다. 재산을 소유하려는 욕심은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이전투구를 합니다. 더 많이 가지려는 우리의 욕심은 헐벗고 굶주린,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내몹니다. 그러나 우리의 자발적인 나눔은 죽음으로 내몰린 사람을 살립니다.

사채 백만 원의 슬픔

쉬는 날인 지난 7월 18일입니다. 민들레국수집이 있는 동네의 주민센터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긴급한 도움이 필요한 가족이 있는데 도와줄 수 있는지 물어봅니다. 만나서 이야기 들어보고 상황을 판단해야 할 것 같아서 곧 주민센터로 갔습니다. 아이들 아빠는 중학교 1학년 아들과 초등학교 5학년 딸과 함께 살고 싶다고 합니다. 헤어지기 싫다고 합니다. 짐도 없습니다. 아들은 야구공 하나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고 딸은 호랑이 인형을 안고 있습니다.

8년 전에 우유대리점을 하다가 부도를 맞아서 망하고 이혼해서 아이들 엄마는 떠나갔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혼자서 농장에서, 중국음식점에서 일하면서 아이들을 키웠다고 합니다. 청주의 야식을 배달하는 가게에서 일하고 있는데 사채업자가 찾아왔기에 무서워서 짐도 하나 못 챙기고 그냥 몸만 빠져나와서 사흘 동안 찜질방에서 지냈다고 합니다. 사채업자에게 얼마나 빌렸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백만 원을 빌렸는데 못 갚았다고 합니다. 몇 달을 숨어서 살았다고 합니다.

아침은 먹었는지 딸에게 물어봤습니다. 어제 저녁에 오빠와 사발면 하나 나눠 먹었다고 합니다. 먼저 밥부터 먹자면서 세 식구를 모시고 중국집으로 갔습니다. 아이들은 오무라이스를 시키고 아이 아빠는 자장면을 시켰습니다. 오빠는 이름이 재진이고 딸은 이름이 예진입니다. 아빠 수중에는 단돈 이천 원이 전부입니다. 아이들은 아침부터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이 아빠는 이틀을 굶었다고 합니다. 어제 아이들에게 사발면을 먹이면서 눈물이 났다고 합니다. 아이들은 오무라이스를 싹싹 비웠는데 아이 아빠는 짜장면을 반을 겨우 먹고는 더 먹질 못합니다. 너무 굶어서입니다.

보증금 백만 원에 월 십삼만 원으로 방 얻어

우선 예진이네 가족을 민들레국수집에서 쉬게 했습니다. 방을 얻으러 다녔습니다. 세 식구가 살 방을 얻어야 하는데, 지난 화요일에 민수 씨와 석구 씨가 살 집을 얻는데 써버려서 보증금을 마련할 여유가 없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이곳저곳 다녔습니다. 겨우 단칸방을 하나 얻었습니다. 보증금 백만 원에 월 십삼만 원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보증금은 지금부터 모아서 마련해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마음씨 고운 주인 아주머니께서 그러라면서 이틀 후에 이사를 와도 좋다고 합니다.

주민센터에 가서 예진이네가 살 방을 구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주민센터에서도 주소이전이 되면 최대한 도와주겠다고 합니다. 민들레국수집에 와서 아이 아빠에게 방을 얻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데, 이불도, 옷도, 냄비도, 숟가락도 없는데 하면서 걱정합니다. 주민센터의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이 조금씩 마련되었습니다.

마침 한 가족이 국수집에 설거지를 하러 오셨습니다. 국수집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예진이네 가족을 위해 중고 냉장고, 세탁기, 텔레비전, 그리고 가스렌지를 마련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함께 중고가게에 가서 주문했습니다. 오후 늦게 민들레국수집에서 이불과 그릇과 냄비와 수저를 챙겨서 보냈습니다. 민들레의 꿈 공부방에서는 아이들 옷을 마련했습니다. 속옷은 베로니카가 챙겨서 보내왔습니다. 십시일반으로 예진이네가 살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 필요한 것들은 마련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보증금 백만 원만 마련하면 됩니다.

“민들레의 꿈” 공부방의 데레사 수녀님과 모니카가 두 아이를 기꺼이 받아주셨습니다. 모니카가 아이들의 마음을 잘 다독거립니다. 재진이가 두 시간 동안 말도 하지 않고 웅크리고 앉아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더니 저녁무렵에야 웃기 시작하고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기뻐합니다. 재진이와 예진이가 저녁도 잘 먹었다고 합니다.

예진이네 가족도 서서히 살아나고 있습니다. 예진이 아빠는 며칠전부터 동네 순대국밥집에서 일당 오만원을 받고 배달을 하고 있습니다. 근처 회사에 이력서는 넣었습니다. 회사에 취직이 되면 참 좋겠습니다. 재진이와 예진이가 스펀지가 물을 빨아먹는 듯 예쁘게 변하고 있습니다. 아니 본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데레사 수녀님과 모니카 선생이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합니다. 아이들 얼굴이 너무너무 밝아졌습니다. 고마운 분의 도움으로 방 보증금도 마련해서 예진이네 집 주인 아주머니께 드렸습니다.

/서영남 200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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