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민중항쟁 32주년 행사 열린 서울광장에서

5월 18일 5·18민중항쟁 32주년 기념식이 열린 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강화여고 2학년 임혜다 양을 만났다. 임 양은 이날 기념행사 중 하나였던 제8회 5·18기념 서울청소년대회 시상식에서 <민중의 힘으로 이루어내다>라는 제목의 수채화로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나무가 자라나 새장 안의 새가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고 설명하며 "요즘 사회적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소시민의 마음을 넘어 옳은 소리를 내는 용기를 가질 때 비로소 이 나무가 자라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세대가 자라나면 이 나무처럼 민주주의가 더 자랄 것이라 믿고 있다"고 소감을 밝혔다.

▲ 5·18기념 서울청소년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수채화 <민중의 힘으로 이루어내다>를 설명하는 임혜다 양 ⓒ 한수진 기자

기념식에 참석한 과천 맑은샘학교(초등대안학교) 교사 송순옥 씨는 최근 몇 주간 학생들과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공부했다. 수업 중에 "무서웠을 것 같아요", "힘들었겠어요", "저라면 숨었을 거예요" 등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학생들에게 송 씨는 "너무 슬퍼하지 말고 잘 기억하고 마음속에 담아두자. 역사는 힘 있는 사람들의 편이 아니라 기억하는 사람들의 편이다"라고 말해줬다. 그는 제자들과 함께 그 역사를 기억하기 위해 기념식에 왔다고 전했다.

강자현 양(맑은샘학교 6학년)은 "이렇게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분들이 있다는 게 감사하고 죄송하다. 5·18을 겪었던 사람들과 겪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다른 사람의 희생을 기념한다는 게 소중하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민주주의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묻자 그는 "다른 이에게 귀 기울이고 존중하는 것"이라 대답했다. 기념식이 끝난 후 강 양은 서울광장에 전시된 5·18 관련 사진전을 둘러보며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것 같다. 어떻게 경찰이 시민을 저렇게 무차별적으로 때릴 수가 있나" 하며 안타까워했다. 높은 사람이 시민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지 물어보니 뜸들이지 않고 답했다. "투표를 잘해야죠!"

이날 시상식에 나선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우리 모두는 5·18에 기초해 살고 있다"며 광주민중항쟁의 자유·평등·연대의 정신을 모든 학생이 몸으로 익혀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해야 하며 그것을 위해 서울시 교육청이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5·18기념재단이 세워졌고, 1980년 당시 고초를 치른 사람들 상당수가 국가유공자가 됐으며, 5월 18일은 '5·18민주화운동기념일'로 지정됐다. 어떤 이들은 진정한 5·18 정신이 잊히는 것이 아닐까 걱정한다. 그럴지도 모른다. 목숨마저 내던지게 한 저항정신과 민주주의를 향한 염원은 푸른 잔디밭 위의 평온한 기념식과 정치인들의 인사말 속에서는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 서울광장에서 미안함과 고마움에 관해 말하는 청소년들의 목소리에서, 민주주의는 '용기를 가지고 지켜야 할 어떤 것'이라 대답하는 10대들의 반짝이는 눈망울 속에서 5·18 정신은 살아 숨 쉬고 있다. 2012년 5월에도 거리에서, 법정에서, 보이지 않는 많은 곳에서 여전히 탄압받고 있는 5·18이 그들과 함께 싸우고 있다.

오월哀
 

서로의 어깨를 걸친 노을들이
한 많은 춤을 추듯 거리에 모여든 오월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 친구들과
평상에 둘러앉아 소주를 마신다
마음속에 늘 쟁여 놓았던 오월의 민주주의
친구들과의 담소도 가만히 영글어간다.
좀처럼 잊을 수 없는 기억일까
말 못할 사연들로 가득한 표정들
술이 몇 잔 더 들어가면서 아버지의
진솔한 고향 사투리가 시작되고
친구들은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군인들의 총탄에 맞아 기억의 파편이 된
죽은 친구의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는 아버지
사투리는 아팠기에 더욱 억셌고
안으로 상처를 숨겼던 그들은 조금씩
선명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흩어지는 담배 연기에 마음이 불편했는지
친구들은 다시 서로의 근황을 살피고
저마다의 기억을 되짚어 보며
말없이 서로의 술잔에 술을 채운다.
쉬이 저물지 않고 조용히 흔들리는 기억들
친구들이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서고
마저 남은 소주를 마시는 아버지
나는 가만히 그의 술잔에 귀를 기울인다

서울고등학교 3학년 유상현
제8회 5.18기념 서울청소년대회
글 부문 서울지방보훈청장상 수상작

 

▲ 5·18민중항쟁 32주년 서울 행사에서 학생들이 희생자를 위해 묵념하고 있다. ⓒ 한수진 기자

 

▲ "역사는 힘있는 사람들의 편이 아니라 기억하는 사람들의 편이다." ⓒ 한수진 기자

 

▲ "민주주의는 다른 이에게 귀를 기울이고 존중하는 것" ⓒ 한수진 기자

 

▲ 10대 청소년의 반짝이는 눈망울 속에서 5·18 정신은 살아 숨쉬고 있다. ⓒ 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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