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 국수집]


약삭빠른 사람이 잘 사는 것처럼 보입니다. 사기를 치고, 거짓을 말하길 밥 먹듯 하더라도 돈만 많으면 되는 세상입니다. 막 사는 사람들이 으스대며 설치는 세상입니다. 돈이 최고인 세상입니다. 올바르게 살려는 사람은 비난받고 모욕을 당하는 세상입니다. 마치 농부의 손길이 끊겨진 황폐한 밭이나 논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씨 뿌리는 사람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십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열매를 맺었는데,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를 맺었다고 하십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 안에는 하느님이 심어 주신 곱고 예쁜 마음이 있습니다. 곱고 예쁜 마음은 하느님의 뜻에 내 뜻을 맡겨드리고 이웃과 사귀고 나누고 섬길 때 백 배의 열매를 맺습니다.

유월 달 둘째 금요일에도 새벽 4시

청송교도소에 가는 날인 유월 달 둘째 금요일에도 새벽 4시에 예쁜 딸 모니카가 먼저 일어났습니다. 민들레 식구인 대성 씨도 약속 시간에 맞춰 아파트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네 시 반에 청송으로 출발했습니다. 오전에 청송3교도소 자매상담을 하고 오후에 청송교도소 자매상담을 하려면 늦어도 네 시 반에는 인천을 출발해야 합니다. 오늘은 민들레국수집의 봉사자인 아우구스띠노 형제님도 서울에서 출발해서 가랫재 휴게소에서 만나 함께 교도소에 들어가기로 했습니다. 중앙고속국도의 치악휴게소에서 잠시 쉬었습니다. 새벽이 상큼합니다.

화물차연대의 파업으로 미안스럽게도 조금 일찍 가랫재 휴게소에 도착했습니다. 아우구스띠노 형제님을 만나서 함께 아침을 먹고 교도소가 있는 진보로 가서 제과점 빵과 참외 그리고 얼음과자와 음료수를 마련했습니다.

지난 달 모임 때 청송교도소 형제들이 어려운 부탁을 하나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다음 달에는 자신들에게 주는 영치금을 넣지 말고 그 돈으로 제과점 빵을 사서 가져오면 안 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우구스띠노 형제님이 형제들에게 선물할 빵은 당신이 마련하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아우구스띠노 형제님은 청송 3교도소와 청송 교도소 두 군데의 자매상담에 나오는 형제들에게 나눠드릴 빵을 듬뿍 샀습니다. 형제들이 좋아하는 케이크도 두 개나 샀습니다. 이십 만원어치도 넘는 빵입니다. 아우구스띠노 형제님의 곱고 예쁜 마음입니다.


대성 씨가 폐지를 모은 이유

계절 과일인 참외를 샀습니다. 민들레 식구인 대성 씨가 참외 값을 치렀습니다. 평상시에는 대성 씨가 종이상자나 빈병이 생기면 모았다가 동네 할머니들에게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한 달 전부터는 할머니들께 나눠주지 않고 지하 창고에 모았습니다. 그저께 리어카에 두 번을 가득 고물을 실어다 고물상에 가서 팔았습니다. 6만 5천원이나 받았다고 자랑합니다. 그렇게 폐지를 모은 이유를 오늘 알았습니다. 청송교도소 형제들에게 맛있는 것을 대접해 주고 싶어서 입니다. 대성 씨의 곱고 예쁜 마음입니다.

얼음과자와 음료수도 마련해서 오전에는 청송3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열다섯 명의 형제들이 모임에 나왔습니다. 기도하고 성경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준비해 간 음식을 나누면서 두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마침 기도를 하고 교도소를 나와서 민원실에서 형제들에게 영치금을 조금씩 넣어드리고 다시 진보로 나왔습니다.

서둘러 점심을 먹고 음식을 마련해서 이번에는 청송교도소로 들어갔습니다. 몇 명의 형제들이 이감을 갔습니다. 열 두 명의 형제들이 나왔습니다. '곱고 예쁜 마음'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제일 젊은 베드로와 바오로는 징역을 십년이나 받았습니다. 겨우 스물여섯 살입니다. 어린 나이에 징역 십 년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오늘은 철없어 보이던 젊은 형제들이 예쁘고 고운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새삼 알았습니다.

사방으로 돌아가서 방 식구들과 나눠먹으려고

바오로가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쉰이 넘은 아저씨가 얼마 전에 징역 7년을 받고 들어왔는데 자기도 모르게 그냥 '나쁜 00' 욕을 했답니다. 그러다가 자기는 저 아저씨보다 훨씬 많은 징역 십 년을 받고 살고 있으면서 한 번도 자기가 나쁜 놈이라고 생각해 보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쉰이 넘은 아저씨에게 미안해서 용서를 청하고 요즘은 친하게 지낸다고 합니다. 바로 그 마음이 곱고 예쁜 마음입니다.

베드로는 고시반에서 검정고시 준비를 합니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따뜻하게 대하는 것을 보고 곱고 예쁜 마음을 느꼈다고 합니다. 삼백 개가 넘는 제과점 빵과 참외를 열두 명의 형제들이 푸짐하게 나눠가졌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빵을 먹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사방으로 돌아가서 방 식구들과 나눠먹으려고 먹고픈 것을 참고 있습니다. 곱고 예쁜 마음들입니다.

형제들의 곱고 예쁜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행복했습니다. 우리 형제들의 가슴에 심어진 곱고 예쁜 마음들이 서른 배, 예순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서영남 2008.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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