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공부방’을 꿈꾸는 서영남씨

 

아이들에게 따뜻한 집과 사랑이 담긴 밥상은 너무 소중하다. 이것들로부터 심신이 함께 자란다. 하지만 기본적인 잠자리와 끼니조차 보장되지 않거나 그때그때 달리 해결해야 하는 처지라면 앞으로의 긴 인생이 암담하거니와 더 큰 사회적 부작용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민들레국수집’으로 유명한 인천의 ‘선한 사마리아인’(성경 예화로 강도당한 사람을 제사장 등은 외면했지만 사회적으로 하층민인 사마리아인이 구했다) 서영남(베드로, 54) 씨가 ‘민들레공부방’을 구상하고 있다. 전세보증금 2천만원짜리 46㎡(약 14평)의 꿈이 그에게서 싹을 틔우고 있는 것이다.

그의 꿈속에서 뛰놀 주인공은 ‘집 없는 천사’들이다. 이미 지난 7월 1만원의 종자돈으로 개설된 공부방용 통장에는 그새 500여만원의 금액이 찍힌다. 부업으로 번 돈을 내놓은 젊은이, 한때 불량스러운 삶을 살았던 회심자, 가출경험이 있는 민들레국수집 담당 우체부, 익명의 기탁자가 이 돈의 주인공들이다.

덕분에 보증금을 기다릴 착한 주인이 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나면 10~14세 가량의 청소년 노숙자와 노숙자 부모를 둔 아이들의 쉼터가 비로소 만들어 질 것이다.

서영남 씨는 “상대적으로 어른 노숙자에 비해 숫자가 적고 눈에도 잘 띄지 않기 때문에 설마 있으랴 싶지만 중학생 또래의 청소년 노숙자와 부모와 함께 떠도는 아동 노숙자가 있다.”며 “부모가 이혼한 경우, 조부모가정, 비행이나 부적응으로 인한 일탈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가출한 아이들과 아동들이 밥 한 끼를 위해 민들레국수집을 찾곤 한다.”고 밝혔다.

그는 “청소년 노숙자들은 서로 어울리며 영웅심과 군중심리에 ‘무서운 아이들’이 되곤 하지만 흩어지면 그렇게 순한 양일 수 없다.”면서 “다만 이들은 문제가정의 피해자며 학교경쟁에서 뒤쳐진 아이들이다. 가정도 사회도 이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여력이 없다. 기존 복지시설에서 감당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며 아이들도 그곳의 운영방식이나 프로그램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인천 남구 숭의동 지역에만 가출 청소년 노숙자가 7~8명이 있으며 이미 쉼터시설 등에도 여러 차례 들락이는 형편이다. 사정이 안타깝고 참담하기는 부모를 따라 동가숙서가식해야하는 철부지들도 마찬가지다. 무슨 죄가 있겠는가?

오랜 교도소 교화활동으로 다져진 서 씨의 경륜에서 보면 중범죄자는 대개 초․중학교 다닐 나이에 막바지 인생을 산다. 놀랍게도 자포자기의 경계를 넘어선 이들은 결국 막다른 길에 이르고 만다. 교도소를 찾아다니며, 노숙자에게 밥 한 끼를 대접하며 뼈저리게 깨달은 사실은 ‘아이 때부터 챙겨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비뚤어진 인생이라도 5년, 10년 공 들이면 변할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 사람이 변해서 행복해하고 세상을 긍정적으로 사는데 걸리는 시간은 결코 지루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만한 가치가 있으며 충분히 즐거운 시간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면 목표한 전세금이 다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들레공부방은 철저히 ‘가정식’이다. 사랑에 배고프고 가족에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초점을 둔다. 새로운 가족의 숫자와 집 크기는 작게 유지된다. 가족을 돌보거나 운영을 책임진 사람들은 인내와 용기는 물론이고 실망과 좌절을 감수할 넉넉함으로 무장돼야 한다.

전담하고 싶다는 수녀도 한 명이 자원했으며 서 씨처럼 수도원에서 생활하다 나온 조력자들도 확보해 놓았다. 다만 이러한 시설의 전례가 없어 당장 ‘공부방’이란 이름도 고민이거니와 세부 기능과 프로그램은 풀어야할 숙제다.

“거리의 아이들이 무엇을 하겠는가? 소위 말하는 불량배나 어른 노숙자와 함께 어울린다. 자기들끼리 패를 지어 못된 짓을 일삼을 가능성은 너무 많다. 그리고 벼랑 끝 인생을 산다. 이제 나도 나이를 먹으니 아이들이 예쁘고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노인들이 손주들을 보는 재미일 것이다. 그런 아이들을 돌보고 싶다.”

그는 머리로 구상하고 책상에서 계획 짜고 하는 것이 별로 체질에 맞지 않는다. 느낌으로 부딪치고 필요하면 움직인다. 그러면 다음 계획이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따라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300만원으로 시작한 국수집의 그간을 봤을 때 본인의 능력이나 덕으로 이뤄진 일들이 아니었다.

“하느님이 계획하시고 우리는 일을 한다. 또 우리가 일을 벌이면 마무리는 하느님이 하신다. 겁도 없이 일을 벌이는 것은 바로 하느님의 ‘빽’을 믿기 때문이다.”

그는 교회의 사회복지에 대해 쓴 소리를 잊지 않았다. 얼마 전 참여했던 가톨릭사회복지대회에서의 경험 때문이다. “세상의 논리를 그대로 따르는 그들을 보며 당혹스러웠다. 예산확보를 고민하고 주는 이와 받는 이를 구분하고 있다. 이건 아니다. 교회가 이제 정부의 돈을 받아 사회복지하는 것을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진정한 사회복지, 교회의 사회복지를 해야만 하는 것 아닌가?”

민들레국수집의 홈페이지(www.mindlele.com)에는 민들레공부방을 위한 작은 후원현황 창이 달려있다. 이곳에 입금자와 금액 등 모금현황이 그때그때 올려지며 누계금액이 기록된다. 인터뷰를 마친 후 10월 9일자로 6,280,000원이 모아졌다.

/지영일 2007.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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