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밖에서도 대주교님의 그림자를 만날 수 있었으면"

평안하신지요?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 칼럼을 기고하는 김유철 스테파노라고 합니다. 주교님들이 온라인으로 기사를 검색하실지 모를 일이지만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서라도 이 글에 실린 저의 마음이 주교님께 전해졌으면 합니다.

‘새 포도주’과 ‘새 부대’

먼저 지난 5월 10일에 서울대교구 제14대 교구장으로 임명 받으심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평신도로서는 그 의미를 다 헤아릴 수 없는 대주교 승품 역시 기쁜 마음으로 축하드립니다. 물론 임무가 막중한 자리인 만큼 주교님의 인간적 고뇌와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마냥 축하드릴 일만은 아니겠지만 진심으로 따뜻한 인사를 드리고자 합니다.

이제 예정된 6월의 교구장 착좌식 이후에는 선대 교구장들의 사목 방향을 승계함과 동시에 염 대주교님의 새로운 사목방향이 제시될 것 또한 기대하고 있습니다. 늘 ‘새 포도주’와 ‘새 부대’는 사람들을 들뜨게 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서울이나 지방이나 같은 기분일 것입니다.

▲ 5월 10일 서울 명동 주교관 앞에서 염수정 대주교(왼쪽)가 서울대교구장 임명 소감을 밝히고 있다.

서울대교구장의 움직임과 말씀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이정표 역할

한국 천주교회에서 서울대교구가 단순한 숫자의 비중을 떠나서라도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교회 내외를 막론하고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서울대교구장의 움직임과 말씀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것을 염 대주교님도 그동안 겪어보셔서 누구보다 잘 아실 것입니다. 아마도 그것은 서울대교구의 전전 교구장이었던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역할에서 찾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김 추기경님의 모습이 아직도 많은 이들의 가슴에서 떠나지 않은 것은 그 분 특유의 친화력에서 나오는 힘이었습니다. 김 추기경님을 먼발치에서 보는 것만으로 많은 이들에게 전해진 위로와 격려는 교회의 어떤 선교 방법보다도 그리스도인이 아닌 이들에게 더 강렬히 전해졌을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은 나자렛 사람 예수님의 모습이기도 했으리라 짐작할 따름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교회의 가장 바른 모습

서울대교구장이자 대주교로서 수많은 행사를 참석해야 하고 신자 여부를 떠나서 다양한 사람들을 지금보다 더 많이 만날 것입니다. 정치적으로는 대통령을 비롯한 높은 고위관직의 사람들을 만나야 하고 각계의 최고위층을 만나야 하지만,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결코 잊지 마시라고 먼저 당부드립니다. 물론 마음 안에 늘 그런 분들을 담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눈앞에 그리고 손끝에서 그런 분들과 함께 하시길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번 서울대교구장 임명이 나기 전인 4월 28일 대주교님은 서울대교구 빈민사목위원회 설립 25주년 기념미사를 주례하셨습니다. 물론 그때는 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로서 참석하신 것이지요. 그 미사에서 대주교님은 “교회는 탄생 첫 순간부터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했고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이야말로 교회가 자신의 모습을 이 세상에 풀어내는 가장 바른 모습”이라며 “25주년을 맞은 오늘, 청빈 실천은 퇴색해가는 가치가 아닌 우리 모두가 상생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가치로 더욱 빛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미사의 전례용어로서가 아니라 대주교님의 말씀은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가난한 이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 그 한 가지 가치가 “교회가 자신의 모습을 이 세상에서 풀어내는 가장 바른 모습”이라는 지적은 가난한 이들에게는 한없는 위로와 격려이며 글을 쓰는 저를 비롯한 제법 많이 가진 자들에게는 한없는 부끄러움과 함께 종아리를 걷고 회초리 앞에 선 기분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어쩌면 이제는 일상적으로―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은 듯 보입니다. 많은 이들이 천주교회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다고 말하며 교회에는 많이 배우고 가진 자들이 인맥 쌓으러 다니는 곳이라고 손가락질하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대주교님께서는 그동안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 이사장으로 계시며 누구보다 하느님의 손길, 교회의 손길이 필요한 일이 무엇이며 누구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지 여실히 보셨을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고 김수환 추기경님의 숨은 뜻이 결국 그런 일을 묵묵히 해오신 대주교님을 서울대교구의 후임 교구장으로 만들었다고 이번 교황님의 인사를 통해 이해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다른 수많은 사목적 일에 앞서 그동안 해왔던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이 애초에 마음먹었던 지향과 가치를 서울대교구 사목 방향에서도 잊지 않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사람들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적어도 교회의 일이 될 수 없다

많은 갈등과 아픔을 간직한 시대 상황입니다. 지나고 보면 한 줌 재같은 일일지라도 지금 여기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아파하고 고뇌하고 연대하고 있습니다.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 성공이 최고인 세상, 발전이 첫째인 세상이 된지 오래입니다. 천주교회를 비롯한 종교에 바탕을 둔 양심 어린 말소리는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세상이기도 합니다. 자본주의를 넘어선 신자본주의니 글로벌 경영, 자유무역이니 하는 하고많은 말들은 결국 수많은 사람들을 비정규직의 늪에 빠트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운영하는 많은 학교, 병원, 언론사를 비롯한 사업체부터라도 사람들의 눈에서 눈물 흘리게 하는 일은 ‘예수의 이름으로’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사람들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이 머무시는 사람들 가슴에 못을 박는 일은 교회의 일은 아닙니다.

시대를 거슬러 산다는 것이, 세상 안에서 세상과 다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움이 있는지 모르고 철없이 드리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런 어려움이 있기에 교회가 앞장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주교님이 사목할 서울대교구에서는 그렇게 되길 바라고 기도합니다.

구럼비에서 만난 교회의 비극

멀리 제주도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주교님도 잘 아시고 계실 겁니다.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를 대고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하고 있지만,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혀 한 나라의 정부답지 않은 일들의 연속입니다. 사실 부서지고 깨진 구럼비 바위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아예 할 말이 없습니다. 자연에 대하여 재산권을 행사하는 모습은 마치 졸부의 횡포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 마을을 대대로 지키고 살아온 토박이 주민들은 물론이거니와 지방정부인 제주특별자치도의 의견도 따르지 않는 모습은 아예 조폭이나 점령군의 모습입니다.

지난 1월, 그 와중에 세상 사람들은 비극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비극이었습니다. 기도 중이던 수도자, 즉 수녀님 18명과 수사님 1명이 이른바 닭장차에 강제로 실려 연행됐습니다. 이런 일은 흔히 말하는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던 일입니다. 물론 수도자들을 그렇게 취급할 때 일반인들에게 공권력이 어떻게 했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후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소속 108개 수도회와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강한 유감을 표하며 성명서를 발표했으나 정부는 꿈적도 안 했습니다. 오히려 2월 들어서는 문정현 신부님을 비롯한 4명의 성직자들에게 징역형을 구형하고 선고했으며, 결국은 3월 들어 천주교 성직자(예수회 김정욱 신부)가 14년 만에 구속되고 투옥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더 유감스러운 것은 서울대교구장을 비롯한 주교님들의 모임인 주교회의의 공식적 침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방패와 물대포를 앞세운 공권력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고 있는 정부는 그런 공식적 침묵에 아무도 겁먹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 침묵의 카르텔을 '우리 편'이라고 해석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교회 밖에서도 대주교님의 그림자를 만날 수 있었으면

빈민사목위원회 25주년 기념미사에서 말씀하신 “가난한 자들에 대한 우선적 선택”은 위에서 말씀드린 두 가지 일에서 그렇게 멀리 있지 않을 것입니다. 교구민들에게는 존경의 대상이며 사제들에게는 비빌 언덕이신 서울대교구장 대주교님, 가난하고 낮은 자들과 함께해 주시길 바라고 기도합니다. 우리에게는 우리와 함께하는 염수정 대주교님이 계신다고 신나게 말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건물로서 교회 안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도 대주교님의 그림자를 볼 수 있기를 바라고 기도합니다.

고맙습니다. 영육간의 건강을 위해 두 손 모읍니다.

2012년 5월 16일

김유철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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