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남의 민들레 국수집]

촛불로 시작한 유월입니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정부의 말이 공허한 울림이 되고 있습니다. “국민이 힘들 때! 제일 먼저 생각나는 친구가 되고 싶습니다.”라고 경찰 버스 옆에 새겨진 문구가 부끄럽습니다. 촛불로 시작한 유월 첫 아침에 전경차 위에 올라 태극기를 휘두르는 시민을 물대포를 쏘아 떨어뜨렸습니다. 물대포는 사람들을 적셔서 뒤로 물러나게 하는 것이지 직접 사람을 향해 물리적으로 밀어내는 것은 아닙니다. 국민의 친구가 되고 싶다는 경찰의 공허한 소리가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모든 사람들을 자기 생각에 맞추려고 하는 것은 바로 소유욕입니다. 소유욕에 눈이 멀면 이웃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소유욕이 채워지지 않을 때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 굴복시키려 하거나 그것마저 여의치 않을 때는 적대시하고 싸우려 듭니다. 약육강식의 밀림에서처럼 힘으로 또는 권위로 모든 일을 획일화시키려는 자세가 독선으로 이어지면서 분열과 싸움이 일어납니다.

참된 섬김의 시작

참된 섬김은 소유로부터 자유로울 때 가능합니다. 서로 다르면서도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해 줄 수 있을 때 섬김과 나눔이 넘치는 평화가 시작됩니다.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와 행동이 다르게 표현되는 다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다는 너그러운 자세가 참된 섬김의 시작입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사람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우리 주변에는 방 한 칸 없어 거리에서 노숙하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밥 먹듯 굶는 사람들이 많아집니다. 그들은 너무 착해서 남의 것을 욕심내지도 못합니다. 배가 고프면 물을 마시면 된다는 사람들입니다. 꽁초 하나 있어도 담배 있다면서 사양할 줄 아는 참으로 착해빠진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복잡한 형식과 절차를 따라가지 못해서, 경쟁할 줄 몰라서, 온 몸이 무방비인 상태인 채로 살아가는 보잘것없는 사람들입니다. 감사할 줄도 모르고 게으르다는 핀잔으로, 사람대접이 아니라 짐승 대접을 받으며 버림받은 곳에서 지내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나눔의 달인과 같은 봉사자들

민들레국수집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섬김, 봉사, 나눔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하는 봉사자들이 많이 찾아옵니다.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위해 귀한 시간을 내고, 그들을 위해 아낌없이 정성으로 모으고, 그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는 섬김의 나눔의 달인과 같은 봉사자들입니다. 자신과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면서도 사회에 봉사하고 보잘것없는 가난한 이들을 섬기는 삶을 사는 봉사자들의 모습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민들레국수집의 많은 봉사자 중에 우체국 집배원이신 최신호 씨가 계십니다. 촛불처럼 아름답습니다.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나눕니다. 자기 먹을 것을 반으로 나눠 먹습니다. 나의 배부름을 이웃과 나누고 동시에 이웃의 배고픔을 나누어 받는 나눔을 할 줄 아는 분입니다. 삼년 전부터 매주 월요일마다 달걀 두 판을 살짝 내려놓고 가셨습니다. 월요일마다 일주일치 용돈으로 2만원을 받으면 제일 먼저 달걀 두 판을 사서 국수집으로 가져오십니다. 민들레국수집 주변이 배달하시는 지역이 아닌데도 월요일마다 오십니다. 그리고 노동 강도가 센 집배원 생활인데도 월요일마다 점심을 굶습니다. 돈을 아끼려고 굶는 것이 아니라 배고픈 이들과 배고픈 마음을 나누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배고파 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심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랍니다. 지난해부터는 경기도 광주 근처로 근무지가 바뀌었습니다. 그때부터는 월요일이 아니라 일요일 오후에는 민들레국수집에 오셔서 설거지를 도와주십니다. 슬쩍 한 주간 동안 절약한 돈을 내어 놓습니다.

얼마 전에는 최신호 씨의 부인이 민들레국수집에 찾아오셨습니다. 봉사하러 간 남편의 손톱이 긴 것 같아서 손톱을 다듬어주시기 위해서 식당에 아르바이트를 가는 길에 들렸다고 합니다. 부부가 세상을 밝히는 촛불처럼 닮았습니다. 남의 몫을 탐내지도 않습니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말라 합니다. 자기의 몫을 줄여 이웃과 나누는 자비를 베풀 줄 압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고 따뜻하게 보듬어 섬길 줄 압니다. 별이 어디 따로 있겠습니까? 더 갖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이 아니라 최신호 씨 부부처럼 나누고 섬기는 삶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별이고 촛불입니다.

/서영남 2008-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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