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책] 최광현, <가족의 두 얼굴>(부키, 2012)

“가족은 우리가 태어나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 곳이다. 우리가 가족 안에서 어떤 관계를 맺고 어떤 감정을 경험하였는가는 평생 동안 간직될 감정의 채널을 고정시키게 만든다. 어린 시절 경험한 외로움이 평생 지속되는 이유이다. 우리는 가족관계를 통해 인생을 살면서 수없이 형성하게 될 대인관계에 대한 기본적 믿음과 기대를 갖게 되며 이것은 친구, 연인, 부부, 자녀 등 여러 관계 속에서 많은 영향을 미친다. 가족관계는 우리의 인간관계를 찍어 내는 붕어빵 틀이라 할 수 있다.”

마음속 깊은 지층을 찾아서

아무 탈 없이 잘살아왔던 자신이 어느 날 낯설다. ‘나는 늘 왜 이따위지?’라며 자학하고 늘 마음에 농간 당하고 마음 때문에 괴롭게 지내다가 또 시간이라는 약에 의지해 겨우 벗어나고, 벗어났다 싶었다가 또 그럴지 모른다. 마음은 정말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생각만 깊어간다. 하여 우리 각자는 자신이 왜 이렇게밖에 못할까를 전전긍긍한다.

마음은 어떠한 면에서 아주 오랫동안 땅속 깊이 묻혀 있던 유물과도 같다. 한 시대에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물건들이 땅속 깊이 묻혀버린다. 수백, 수천, 수만 년이 지나 한 농부가 밭을 갈다가, 목수가 집을 짓다가 땅속에서 심상치 않은 것을 발견한다. 그렇게 갇혀 있다가 불현듯 다시 세상에 드러난 유물을 보며 사람들은 그게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한 맥락을 탐구한다.

그런 맥락을 연구하는 학문이 고고학이다. 고고학은 유적 · 유물과 같은 물질 증거와 그 상관관계를 통해 과거의 문화와 역사 및 생활방법을 연구한다. 그런데 고고학은 그저 유물만 파내는 데 치중해서는 안 된다. 그 유물의 맥락을 찾아 발굴해야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한 시대의 삶을 온전하게 그려낼 수 있다. 그것이 고고학에 최상의 존재 이유다. 유물의 가치만 생각해 작정하고 몰래 파가는 도굴범이 있는데, 아무리 합법적으로 발굴했다 하여도 그 맥락을 무시하면 방법에서는 도굴과 차이가 없다.

심리학자와 정신분석학자들은 우리 마음속 깊은 심층을 탐험하는 사람들이다. 한 사람을 결정적으로 장악하는 트라우마, 성장기에 영향을 준 여러 것들을 하나씩 켜켜이 파헤쳐간다. 맥락을 찾아 층을 벗겨간다는 측면에서 마음을 다루는 것과 발굴의 태도는 많은 유사점을 보여준다. 마음을 치유하는 과정은 먼저 우리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들여다봐야 하기에 ‘마음의 고고학’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상처의 큰 부분이 가족에서 온다

<가족의 두 얼굴>에서 저자는 이 마음의 기저에 놓인 아주 두터운 지층을 ‘가족’으로 본다. 우리는 흔히 가족을 이야기할 때 따뜻한 보금자리로, 우리 자신에게 무언가를 무한정 제공해주는 장으로 여기고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잘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맞는 말이다. 가족이라는 틀 속에서 우리는 분명 탈 없이 잘 지내왔을 것이다.

그런데 가족은 우리에게 알게 모르게 크고 작은 상처도 줄 수 있다는 점이 가끔 간과되기도 했다. 저자의 말대로 가족은 따뜻한 온상이지만, ‘불행의 싹을 자라게 하는 인큐베이터’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어쩌면 가정 안에서 알게 모르게 가족에게 상처를 받고 또 가족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아가는지 모른다. 유명한 한국계 일본인 감독 기타노 다케시는 “가족이란 누가 보지만 않는다면 어딘가로 내다 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말했다. 우리가 신성하다고 믿던 가족이 때로는 우리에게 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점을 짚는 말이다.

<가족의 두 얼굴>은 우리 마음을 지배하는 두터운 지층, 가족을 돌아봄으로써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우리 자신의 밑바탕을 찾아간다. 저자는 독일에서 트라우마를 통한 가족치료를 공부한 후 현지에서 가족치료사로 유럽 여러 나라의 상처 입은 가족들을 만나 왔다. 국내에 돌아와서도 트라우마가족치료연구소 소장으로, 한세대 상담대학원 교수로 여러 가족을 상담해왔다. 이 책은 오랜 상담 경험과 심리학 이론을 토대로 우리 자신과 가족을 돌아보게 하고 가족 간 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가족치료의 선구자 보스조르메니 나지는 새로 탄생한 가족은 백지상태에서 시작하지 않는다고 한다. 부부는 자신이 근본적으로 뿌리를 둔 가족 전통과 문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각 배우자는 이전 세대의 가족 문화와 전통을 새로 시작하는 결혼생활로 가져온다. 우리에게는 모두 자신이 성장한 가족으로 회귀하려는 속성이 있다는 것이다. 설령 그 가족이 비참했고 늘 외로웠으며 불안했을지라도. 그곳은 너무나 익숙한 곳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족은 어떤 헤어나기 어려운 굴레처럼 작용하여 우리를 엉뚱한 방향으로 이끌기도 한다. 이 지점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

<가족의 두 얼굴>에는 어느 곳을 펼치든 우리네 가족과 비슷한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다양한 가족들의 사례와 더불어 저자가 겪은 솔직한 상처 고백이 펼쳐진다. 저자는 독일서 만난 이사벨의 예를 든다. 열렬한 나치 일원이던 할머니가 독일 패망과 함께 자식들과 자살을 시도하는데, 유일하게 이사벨의 아버지만 살아남았다. 아버지는 그 비밀을 마음에 묻은 채 살아간다. 뭔가 불안한 평화가 지속하던 어느 날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이사벨은 그때야 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가족의 비밀을 인정하는 순간 갈등의 매듭은 풀어진다.

저자는 이사벨의 예 외에도 수많은 상처의 유형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과 가족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해주며, 내 안의 상처를 다독이고 위로해주는 실마리를 발견하게 해준다. 물론 상처 치유가 그리 손쉬울 리 없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테고, 쉽지 않은 과정을 밟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결정적인 것은 자기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고 바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 저자가 강조하는 지점이다.

자신을 우뚝 세워야 한다

가족과 깊게 얽히고설켜 있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것은 무척 불편한 일이다. 애써 외면했던 것과 마주해야 하는 것은 사람에 따라서는 아주 튼튼한 심장을 요구하는 일일지 모른다. 어쨌든 피하고 보는 게 상책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이렇게 계속해서 피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일 테지만, 문제는 불쑥불쑥 삐져나오고 자신만 상처 입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런 좋지 못한 고리를 끊어내는 아픈 과정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행복이나 안정감은 언제나 늘 곁에 머물러 있지 않다. 인간적 속성은 끊임없이 갈망하고 힘들어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유 없이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최소화하려는 노력, 상처의 대물림이 이어지는 것을 막으려는 노력은 소중하다. 그런 노력의 실마리가 우리 마음의 최종심급인 가족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책을 읽다가 나르시시즘과 관련해 드러난 내 마음속의 어떤 결절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많은 것을 빗대어 내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무리였지만, 몇몇 부분에서 내게 걸리는 것은 섬뜩한 느낌을 전해주기도 했다. 이 책에서 전하는 자기를 내팽개치거나 학대하지 말라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게 된다. 세상 모두가 나를 버린다 하여도 끝까지 나를 지켜야 한다는 점, 그것이 처음부터 끝일지 모른다.

인생사 시원한 답은 없다. 온갖 번뇌와 갈등이 도둑놈처럼 기습해 들어와 우리 마음에 분탕질을 한 대도 그것을 고요히 응시하고 때로는 고요히 흘려보내야 한다. 우리 자신의 깊은 심층인 가족을 들여다보면서 한 번뿐인 우리의 소중한 삶을 키워갈 자기 사랑의 실마리를 찾게 해주는 것이 이 책의 궁극적 메시지겠다.

가정의 달 오월 더 행복한 가족을 가꾸기 위해 불편함을 감내하고 우리 가족의 맨얼굴을 들여다보게 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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