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는 이야기-심명희]

“니 얼굴이 와 이렇노? 야가 눈도 노랗고 머리밑도 노랗고 손도 노랗고...” 초등학교 3학년 봄방학, 현주의 얼굴을 살피던 이모는 깜짝 놀랐다. 옆집 할머니는 “귤을 마이 미기싸서 저래 안됐나...”한다. 이모는 광으로 달려가 감춰둔 귤을 몽땅 내다 버렸다. 나중에 알았지만 A형간염으로 인한 황달증상이었다.

공부방에서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현주는 시각장애인이지만 글쓰기 재능을 가진 쾌활한 고등학교 3학년 여학생이다.

현주가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엄마는 현주를 외갓집에 맡기고 재혼했다. 첫돌도 안 지난 현주를 맡아 기른 사람은 열일곱 살의 막내이모였다.

ⓒ박홍기 신부

수재라고 불리며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을 다니는 다른 형제들과는 달리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구구단과 한글도 못 깨친 지적장애를 가진 현주의 이모는 자존심 강한 부모님에게는 천덕꾸러기였다. 초등학교만 겨우 졸업한 후 남의 이목이 껄끄럽다고 집안에만 갇혀 살던 이모는 집안에서 외로운 섬과 같은 처지였다. 식구들에게는 이방인이요 동네사람들에게는 ‘바보’인 이모는 졸지에 혹처럼 외갓집에 얹혀 살게 된 어린 현주에게는 수호천사요 엄마였다.

이모에게 현주는 반가운 가족이 되어주었고, 현주에게 이모는 엄마였으니 둘은 자웅동체였다. 이모의 작은 등에 업혀 현주는 구김살 없이 자랐다. 현주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외할아버지는 경남 하동의 첩첩산골로 골칫덩어리 막내딸을 치우기로 했다.

어느 날 낯선 남자를 따라 대문을 나서는 이모를 따라가겠다고 몇날 며칠을 울었던 기억이 현주는 아직도 생생하다. 엄마가 아니라 이모라는 가족들의 해명과 설득은 현주에게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후 현주는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혼자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하동의 이모를 찾아갔다.

구차한 살림에 시댁식구들의 눈치를 보면서 이모는 현주를 반겼고, 퀴퀴한 거름냄새가 코를 찌르는 누추한 시골집도 현주에게는 엄마곁이었으니 마냥 좋기만했다. 간염에 걸린 그해 봄방학 때도 유독 귤을 좋아하는 현주를 위해 이모는 식구들 몰래 읍내에 나가 귤 한 박스를 사서 꽁꽁 숨겨두고 먹였다. 그리고 그 귤 때문에 황달이 왔다고 굳게 믿었다.

현주의 황달을 고치겠다며 이모는 어디서 들었는지 간에 좋다는 인진쑥과 재첩국을 날마다 끓여서 한 사발씩 현주를 먹이기 시작했다. 인진쑥은 말도 못하게 썼다. 입에 갖다 대기만 해도 구역질이났다. 인진쑥보다 더 지독한 건 재첩국이었다. 비릿한 특유의 맛 때문에 먹기가 보통 곤욕이 아니었다. 시댁식구들은 외갓집에 보내라고 타박을 했지만 이모는 매일 인진쑥즙을 갈고 재첩국을 끓였다. 얼마나 지났을까? 신기하게도 몸이 점점 회복됐다. 방바닥에만 붙어있던 머리가 서서히 떨어졌고 나른한 몸도 기운을 얻고 메슥거리는 증상도 사라졌다. 드디어 현주는 한달 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문제는 그 뒤였다. 간염이 낫기는 했지만 독성이 강한 인진쑥을 몸이 약한 어린아이에게 너무 오랫동안 먹인 게 화근이었다. 부작용이 난 것이다. 시력이 급격하게 떨어져 앞이 보이지 않았다. 멀쩡했던 외손녀가 장님이 돼서 돌아오자 외갓집은 발칵 뒤집혔다. 병원에 입원을 해서 레이저시술이다 시력교정이다 해봤지만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고 시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진단이 내렸다.

“무식한 게 죄라꼬, 니가 하는 짓이 다 그렇제! 우짤끼고 니가 다 책임져라!” 외할아버지의 이모를 향해 책망과 비난, 가족들의 원망은 지적 장애를 가진 이모가 감당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 무엇보다 앞을 못 보는 현주를 보자 이모는 정신 줄을 놨다.

“그날부터 엄마는 좋은 인진쑥과 알 굵은 재첩을 구하기 위해 겨울이 채 물러가지 않은 언 들판을 헤매며 쑥을 캐고 살얼음이 녹지 않은 강물에 들어가 재첩을 주웠다. 꽁꽁 언 이모의 손과 발, 동상에 걸려 붉게 부어오른 손으로 쑥을 달이고 재첩국을 끓이다가 부뚜막에 머리를 기대고 졸던 이모의 초췌한 얼굴, 저는 ‘무지’와 ‘무식’조차도 ‘엄마’라는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현주가 이모에게 쓴 편지다. 시력장애인 현주는 지금 정신요양원에서 나온 지적장애인 이모와 같이 산다. 알콩달콩에다 씩씩하기까지한 이 단란한 가족을 만날 때 마다 “독버섯이야!” 혹은 “멍에야!”라고 장애를 평가하는 누군가의 논리에 개의치 않고 오직 ‘자기’를 삶의 ‘이유’로 삼고 흔들리지 않고 걸어가는 진정한 자유인의 향기를 느낄 수 있으니, 그들이 사는 반지하 단칸방에 들어설 때 마다 나는 그 누구 그 무엇도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영혼의 내적 지성소에 들어가는 축복을 누린다.

심명희 (마리아. 약사. 선우경식기념자활터의 봉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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